광복절 80주년을 앞두고도 독립기념관의 수장은 요지부동이다. 윤석열 정권 시절 임명된 김형석 관장이 친일 미화 논란, 기념행사 파행, 시민사회 반발 속에서도 “퇴진 의사 없다”는 입장을 고수하면서 논란이 확산되고 있다. 특히 역사를 왜곡하거나 정치적으로 이용하려는 세력에 맞서야 할 독립기념관장이 오히려 역사 갈등의 중심에 서 있다는 점에서 역사계와 시민사회는 깊은 우려를 표하고 있다.
김형석 관장은 최근 와의 서면 질의에서 “공공기관장은 ‘공공기관의 운영에 관한 법률’에 따라 임기 동안 최선을 다해 근무하는 것이 공직자의 올바른 자세”라며 거취 논란에 대해 선을 그었다. 사실상 퇴진 요구를 일축한 것이다. 그의 임기는 2027년 8월까지다.
김 관장은 뉴라이트 계열 인사로 분류되며, 과거 친일 인물들의 명예 회복에 앞장섰다는 평가를 받아 왔다. 이 같은 이력은 독립운동 정신을 기리는 독립기념관장으로서 부적절하다는 비판으로 이어졌다. 지난해 광복절을 맞아 독립기념관에서 열린 행사가 취소되자, 김 관장을 향한 비판은 절정에 달했다. 당시 독립기념관은 행사 주최권을 천안시에 넘겼고, 김 관장은 윤석열 정부가 주최한 중앙행사에 참석했다. 이에 시민사회는 “정권 편향적 행보”라고 성토했다.
독립기념관은 이후 “지자체와 함께 행사를 진행하기 위해 계획을 변경했다”고 해명했지만, 독립기념관 본연의 위상을 스스로 깎아내렸다는 지적은 여전히 유효하다. 당시 ‘반쪽짜리 행사’ 논란은 기관의 정체성과 운영 독립성에 근본적인 의문을 제기하게 만들었다.
더 큰 문제는 올해 광복 80주년이라는 상징적인 시점을 앞두고도 김 관장의 ‘친정부적’ 이미지가 여전히 기념관 운영에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다는 점이다. 광복절을 정치적 중립 없이 특정 정권에 경도된 방식으로 기획하거나, 역사적 해석을 왜곡하는 시도가 반복된다면, 독립기념관의 존재 의미 자체가 훼손될 수 있다.
실제로 천안 시민사회단체들은 연일 독립기념관과 시내 곳곳에서 김 관장의 사퇴를 촉구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다. 이들은 "독립운동 정신을 계승하는 기관에 극우 인사는 맞지 않다", "광복절의 정신을 기념할 자격이 없다"며 임명 철회 및 자진사퇴를 요구하고 있다.
김 관장은 이에 대해 “독립기념관이 주관하는 문화행사를 통해 시민과 함께하는 광복절을 만들겠다”고 해명했지만, 역사 전문기관으로서의 정체성 회복 없이 이미지 개선을 시도하는 것은 본말이 전도된 접근이라는 비판이 나온다.
정치권에서도 논란은 확산되고 있다. 일부 여당 인사들은 "임기는 보장돼야 한다"는 원칙론을 펼치지만, 야당과 시민사회는 "윤석열 정권의 '알박기 인사'"라며 공공기관장의 정치적 책임을 강조하고 있다.
역사는 정치의 도구가 아니다. 독립기념관은 특정 정권의 홍보 기관이 아닌, 민족의 고통과 투쟁의 역사를 보존하고 계승하는 기관이다. 해방 80주년을 맞는 올해, 독립기념관은 그 본래 사명을 되찾아야 할 기로에 서 있다. 김형석 관장의 퇴진 여부는 단지 한 공공기관장의 거취 문제가 아니라, 대한민국이 역사 앞에 어떤 태도를 취할 것인지에 대한 중대한 시험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