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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실은 실험장이 아니다"…AI 교과서, '교육자료'로 격하에 안도

AI 디지털교과서가 정식 교과서가 아닌 단순 교육자료로 분류됐다. 무리한 기술 중심 교육정책에 제동이 걸리며, 교육계 일각에서는 “교실은 실험장이 아니다”라는 현실론이 반영된 결과라며 환영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AI 교과서, 법적 교과서 아니다…국회, 교육자료로 최종 규정

국회는 4일 본회의에서 초·중등교육법 개정안을 통과시키며 AI 디지털교과서를 '교과서'가 아닌 '교육자료'로 분류하기로 했다. 개정안은 교과서의 법적 정의를 '도서 및 전자책'으로 제한하고, AI 기반 소프트웨어 콘텐츠는 그 범주에서 제외했다.

이에 따라, 윤석열 정부가 미래형 교육의 핵심으로 추진했던 AI 교과서는 더 이상 정규 교과서로 인정받지 않게 됐다. 일선 학교에서는 AI 콘텐츠를 참고자료 수준으로 자율 활용할 수는 있지만, 국정 또는 검정 교과서와 같은 법적 지위를 가질 수 없다.

"기술 앞선 교육정책, 현장엔 부담"…교육계 '안도'

이 같은 결정은 그간 AI 교과서의 무리한 도입에 우려를 제기해온 교사 단체와 교육전문가들에겐 “현장 존중의 신호”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일선 교사들은 AI 교과서가 도입될 경우, ▲교육과정의 일관성이 무너지고 ▲학생 간 디지털 격차가 심화되며 ▲검증되지 않은 기술에 교육 주권이 휘둘릴 수 있다는 점을 지속적으로 지적해 왔다.

서울의 한 중학교 교사는 “AI 기술이 교육 현장에 무비판적으로 투입되면서 교사는 관리자, 학생은 실험대상이 되는 구조였다”며 “이번 법 개정은 현장의 목소리가 처음으로 반영된 결과”라고 말했다.

검증 부족·책무 불명확…“책상 위 구상으론 교실 못 바꾼다”

AI 교과서를 정식 교과서로 인정할 경우, ▲콘텐츠 공정성과 검증 체계 ▲저작권 문제 ▲기술 제공 기업의 책임소재 ▲개인정보 보호 등 복잡한 쟁점이 뒤따른다. 그럼에도 교육부는 시범사업과 연구를 병행하며 빠른 전면 도입을 시도해 왔다.

이에 대해 한 교육정책 연구자는 “기술의 진보가 교육개혁을 이끄는 것은 맞지만, 검증되지 않은 민간 콘텐츠에 교과서 지위를 부여한다는 건 국가 교육체계에 있어 전례 없는 모험이었다”며 “이번 법 통과는 교실을 기술 실험장이 아닌 교육의 공간으로 지키는 최소한의 조치”라고 평가했다.

교사 자율성과 지역 격차…AI 교과서의 그림자

AI 교과서가 기술적으로 진보한 형태라 해도, 교육현장의 현실은 따라가지 못했다. 특히 지역 간 디지털 인프라 격차로 인해 농어촌이나 중소도시 학교들은 관련 장비조차 갖추지 못한 경우가 많다. 또 교사의 역량과 자율성에 따라 수업의 질이 달라질 수 있어 형평성 논란도 지속됐다.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 관계자는 “AI 교과서의 자율적 활용은 필요하지만, 이를 정식 교과서로 지정해 전국적으로 일괄 도입한다면 오히려 교육격차가 커질 수 있다”며 “교육자료 수준에서 충분히 단계적 접근이 가능하다”고 밝혔다.

AI 교육은 필요…그러나 수단이지 목표는 아니다

교육계는 AI 자체를 부정하지는 않는다. 다만 AI는 교육의 '도구'이지, 그 자체가 교육의 '목표'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한 교사노조 관계자는 “기술이 교육을 보완하는 수단이 돼야지, 기술이 교육을 주도하는 시대가 와서는 안 된다”며 “이번 결정이 AI 교육을 재정비하고 균형 잡힌 교육정책으로 나아가는 전환점이 되길 바란다”고 밝혔다.

AI 교과서를 교실에 도입하는 것을 무조건 반대하는 것이 아니다. 다만, 그 도입이 ‘기술의 속도’가 아니라 ‘교육의 속도’에 맞춰져야 한다는 것이 현장 교사들과 교육 전문가들의 공통된 목소리다. 이번 법 개정은 교육이 기술보다 먼저 고려돼야 한다는 상식적 원칙을 재확인한 사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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