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대통령이 공약으로 내세운 ‘에너지 고속도로’ 구상이 본격화되면서, 중앙정부의 전력망 재편 방향과 지역의 ‘에너지 자치’ 요구가 교차하고 있다. 대통령은 7월 31일 수석보좌관회의에서 “에너지 고속도로가 수도권 집중 전략이 아니라 전국 지능형 전력망을 구축하려는 것”이라며 오해 차단에 나섰다. 같은 날, 국회에서는 전남 주도로 ‘에너지 분권’ 전략 포럼이 열려 지역 중심의 RE100 산업단지 모델이 공개됐다.
에너지 패러다임 전환이 거대한 축의 이동을 예고하는 가운데, 중앙정부와 지방정부의 역할 분담이 새로운 과제로 떠오르고 있다.
대통령의 구상 “AI 전환, 재생 중심 전력망 필수”
이재명 대통령은 회의 모두발언에서 기후위기 대응과 AI 시대 도래에 따른 ‘재생에너지 중심 전력망’ 구축 필요성을 강조했다. 그는 “기후위기는 더 이상 피할 수 없는 현실이고, 에너지 전환은 선택이 아닌 필수”라며 “AI 기술을 활용해 장거리 송전의 비효율을 줄이고, 전국을 촘촘히 연결하는 차세대 전력망을 구축하겠다”고 밝혔다.
‘에너지 고속도로’라는 표현에 대해 대통령은 “서울 집중이라는 오해가 있지만, 이는 전국의 재생에너지를 유기적으로 연계하는 지능형 전력망을 의미한다”며 ‘전국망 구축’이 본질임을 재차 설명했다.
전남은 ‘에너지 자치’ 선포…RE100 산단, 지방 주도형 전략 눈길
같은 날 국회에서는 ‘에너지의 흐름을 바꾸다’라는 주제로 전남 RE100 산업단지 정책포럼이 열렸다. 이 자리에는 산업통상자원부, 한전 등 전력공기업, 학계 및 유관기관 관계자 400여 명이 참석해 에너지 지방분권 실현 방안을 집중 논의했다.
기조 강연에 나선 이순형 동신대 교수는 “수도권은 송전망 제약으로 인해 더 이상 첨단산업을 수용하기 어렵다”며 “산업 자체를 재생에너지 중심 지역으로 이동시켜야 지속 가능한 성장 기반이 마련된다”고 강조했다.
전남도는 이미 서남권 에너지 혁신벨트를 중심으로 RE100 산단과 미래 에너지 신도시 조성을 추진 중이다. 김영록 전남지사는 “전남이 에너지 중심지로 전환될 수 있도록 정부·공공기관과 긴밀히 협력하겠다”고 밝혔다.
이날 행사에서는 한국전력공사, RE100 협의체 등 17개 기관이 참여한 업무협약식도 진행돼 RE100 기반 기업 유치 및 지원에 협력하기로 했다.
‘지능형 전력망’과 ‘에너지 자치’…중앙과 지방의 조율 필요
중앙정부는 전국 단위의 스마트 전력망 구축을 통해 에너지 균형과 효율성 제고를 목표로 하고 있고, 지방정부는 재생에너지 자원을 기반으로 한 에너지 자립과 산업 유치를 지향한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지방은 생산지, 수도권은 소비지’라는 구도가 반복될 수 있다는 점이다. 대통령이 "에너지 고속도로는 서울로 가는 길이 아니다"라고 수차례 강조한 것도, 이러한 오해와 갈등을 인지하고 있음을 방증한다.
그러나 정책 실현 과정에서 지방의 참여와 이익 공유가 구체화되지 않는다면, ‘전력망 강화’라는 이름으로 에너지 수도권 집중이 재현될 수 있다는 우려는 여전히 유효하다.
산업부 역할 커진다…“에너지 분권, 설계단계부터 함께 가야”
산업통상자원부는 향후 RE100 산업단지 정책과 전력계통 혁신 전략을 조율하며 중앙-지방 간 에너지 균형 정책 설계자로서 중요한 역할을 맡게 된다.
정택중 한국RE100협의체 의장은 “개별 기업이 아닌 산업단지 단위의 공급 전략과 거래 가격 체계 구축이 필요하다”고 제안했고, 한전 역시 “지산지소 전략과 계통 혁신은 병행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결국 정부가 추진하는 ‘에너지 고속도로’와 지역이 요구하는 ‘에너지 자치’는 충돌보다는 조율과 병행 설계가 필요한 사안이다. 에너지 인프라의 대전환기, 중앙집중이냐 분산형이냐가 아닌 공존과 협력 모델이 관건이 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