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만 명.
2025년 5월 3일 시작한지 단 이틀 만에 쏟아진 국민의 서명이다. 그 대상은 다름 아닌 대한민국 최고 사법기관, 대법원이다.
이른바 ‘조희대 대법원장 사법농단 규탄 백만인 서명운동’은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에 대한 대법원 판결을 둘러싸고 폭발한 사법 불신의 상징적 분기점이 됐다. 국민은 지금 묻고 있다. “누구를 위한 대법원이었나?”
이번 사태는 단순한 재판 결과에 대한 반발이 아니다. 문제의 본질은 절차에 있다.
이 사건은 6만 쪽이 넘는 소송기록을 단 9일 만에 검토, 이틀 간의 전원합의체 회의 후 무죄 판결을 파기환송한 전례 없는 속도로 처리됐다. 그 배경과 경위가 충분히 설명되지 못한 채 결론만 던져졌다.
그 결과는, 사법의 ‘정치화’라는 심각한 의혹과 함께 국민적 신뢰 붕괴다.
"정치개입이자 사법농단"…국민, 절차를 문제 삼다
서명운동을 주도한 ‘검사를 검사하는 변호사모임’의 오동현 상임대표는 “이것은 단순한 부실심리가 아니라 정치개입이자 사법농단”이라고 단언했다. 그들이 요구한 것은 단순하다.
소송기록 열람방식, 열람시간 등 대법관들의 열람 로그 전체 공개
전원합의체 회부 과정, 회의록, 합의 형성 전 관정의 국민대상 공개
국회 차원의 청문회 개최와 사법농단 진상규명
이 요구들은 모두 하나의 질문으로 수렴된다. “당신들은 정말 제대로 심리했는가?”
이는 판결의 결과보다도 더 본질적인 신뢰의 문제다.
법원 내부에서도 불만은 이미 터져나오고 있다. 일부 현직 판사들이 실명으로 “30년 사법생활 중 이런 속도는 처음 본다”고 말할 정도로, 내부의 균열은 표면화되고 있다. 현직 판사가 사법부 수장의 사퇴를 사실상 촉구하는 글을 올리는 것 자체가 과거에는 상상하기 어려운 풍경이었다.
대법원, 정치가 된 순간 헌정 질서는 흔들린다
사법부가 정치화되는 순간, 민주주의의 세 기둥은 균형을 잃는다.
입법은 갈등을 조정하고, 행정은 실행하며, 사법은 그 둘 사이의 규칙을 해석하고 지킨다. 그러나 이번 사건은 그 해석자가 스스로 ‘정치 플레이어’로 뛰어든 것 아니냐는 의심을 낳고 있다.
문제는 시점이다. 이재명 후보는 야권의 유력 대선 주자다. 대선을 불과 한 달 앞둔 시점에서, 법원은 사실상 ‘후보자 교체’라는 중대한 정치적 파장을 불러올 수 있는 결정을 내렸다. 국민이 “정권에 유리한 시점에 판결을 내렸다”고 인식하게 되면, 그것은 이미 정치다. 판결이 정치를 바꾸는 것이 아니라, 정치가 판결을 만든다는 인식이 자리잡는 순간, 사법부는 그 기능을 상실한다.
사법부, 국민 앞에 침묵할 것인가
100만 명의 서명은 단지 수치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그것은 법원의 독립성과 중립성이 도전을 받고 있다는 국민적 경고이자, 사법제도에 대한 헌정 질서의 마지막 요청일 수 있다. 조희대 대법원장과 대법원은 이 경고를 무시할 수 없다.
설득력 있는 해명 없이 "판결은 확정됐다"고 말하는 순간, 대법원은 더 이상 헌법기관으로서가 아니라 정파적 도구로 낙인찍힐 수 있다.
사법부가 지금 택해야 할 길은 명확하다.
정치가 아닌, 절차의 정당성과 설명 책임의 회복이다.
그렇지 않다면 국민은 더 이상 판결문이 아닌 광장에서 정의를 구하려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