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강원·경북 일대를 휩쓴 연이은 산불은 우리 산림의 취약성을 여실히 드러냈다. 그런데 같은 시기, 정부는 ‘미이용 산림자원’을 에너지원으로 삼는 바이오매스 발전 확대 정책을 추진 중이다.
겉으로는 “기후위기 대응형 재생에너지”지만, 실상은 “산림 파괴형 화력발전”이라는 비판이 거세다. 산불이 잦아드는 계절조차, 우리의 숲은 여전히 불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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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생에너지의 탈을 쓴 화력발전” — 바이오매스란 무엇인가
바이오매스(Biomass)는 말 그대로 생물 유래 자원을 태우거나 분해해 에너지를 얻는 기술이다.
나무, 농작물, 음식물 쓰레기, 가축 분뇨 등에서 얻은 유기물질을 연료로 활용한다.
정부와 산업계는 이를 탄소중립형 재생에너지로 분류해왔다. 나무가 자라는 동안 이산화탄소를 흡수하므로, 이를 태워 배출해도 ‘총합은 0’이라는 논리다.
그러나 현실은 다르다.
한 번 베인 나무가 그만큼의 탄소를 다시 흡수하려면 최소 수십 년이 걸린다.
결국 지금 당장 나무를 태우는 건, 수십 년 후의 흡수를 ‘선불’로 끌어다 쓰는 것과 같다.
기후위기가 가속화되는 이 시점에, 그 시간 차는 치명적이다.
정책의 시작 — “석탄을 줄이겠다”던 약속
한국의 바이오매스 발전은 2012년 신재생에너지공급의무제도(RPS) 시행으로 본격화됐다.
발전사업자는 의무적으로 일정 비율의 전력을 재생에너지로 공급해야 했고, 정부는 여기에 신재생에너지공급인증서(REC) 가중치를 부여했다.
바이오매스는 초기에는 손쉬운 대체수단으로 각광받았다. 석탄발전소의 보일러에 목재펠릿을 혼합(혼소) 하면 별도 설비 없이 ‘재생에너지 비율’을 충족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문제는 그 연료가 대부분 수입 목재펠릿이었다는 점이다.
베트남, 인도네시아 등지에서 대규모 벌목을 통해 만들어진 펠릿은, 운송 과정에서 막대한 탄소를 배출했다. 이후 국제 비판이 거세지자 정부는 “국내 미이용 산림자원 활용”으로 정책 방향을 틀었다.
“미이용 자원”의 함정 — 건강한 숲까지 베어낸다
산림청은 “간벌 과정에서 버려지는 가지나 쓰러진 나무를 활용한다”고 설명했지만, 실제 현장은 다르다. 바이오매스 원료 확보를 위한 대규모 상업적 벌목이 늘고 있다는 것이 환경단체들의 공통된 증언이다. 강원·충청 지역에서는 벌목이 끝난 산비탈이 그대로 노출돼 토사 유출과 산사태 위험이 높아졌다.
‘산림정비’라는 이름 아래, 정작 기후 완충 역할을 하던 성숙한 숲이 사라지고 있는 것이다.
산불과 벌목, 기후위기의 이중주
기후 전문가들은 최근의 산불 급증이 단순한 ‘기상 악화’ 때문만은 아니라고 지적한다.
벌목과 산림 도로 개설이 불길의 확산 통로로 작용한다는 것이다.
특히 바이오매스 연료 채취를 위한 산림 접근로는 산불의 인화 가능성을 높인다.
지난해 강원 동해안 산불 당시, 벌목지 인근에서 확산된 화선(火線)이 확인됐다.
그럼에도 정부는 ‘간벌재 활용이 산불 예방에 도움이 된다’는 기존 논리를 고수하고 있다.
2050년까지 REC 보조? “탄소중립을 빌미로 한 산업특혜”
최근 이 문제는 주무부처가 이관했고 ‘바이오매스 REC 가중치 유지·확대’를 검토 중이다.
미이용 산림바이오매스를 일정 비율 이상 사용하면 수입산 목재펠릿까지 동일한 혜택을 주는 특례조항이 포함됐다. 이에 따라 일부 발전소는 2050년까지 보조금을 받을 수 있게 된다.
환경단체들은 “광양 등 신규 바이오매스 발전소를 겨냥한 정책적 특혜”라며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기후위기 시대에 화력발전소의 수명을 25년 이상 연장해주는 역행적 조치라는 것이다.
“기후위기 대응”이란 이름의 착시
바이오매스는 표면적으로 ‘재생에너지’다. 그러나 실제 효과를 보면, 기후위기 대응의 실질적 성과는 미미하다. 한국의 재생에너지 통계에서 바이오매스는 전체의 절반 가까이를 차지하지만,
이산화탄소 배출량은 석탄 수준에 근접한다.
해외는 “바이오매스 축소”로 선회
영국·독일·덴마크 등 유럽 주요국은 2020년대 중반부터 바이오매스 보조금 축소에 들어갔다.
유럽의회는 “산림을 직접 벌목해 만든 연료는 재생에너지로 보지 않는다”는 결의를 채택했다.
반면 한국은 여전히 바이오매스에 REC 가중치를 최고 수준으로 유지하고 있다.
숲을 태우는 탄소중립의 아이러니
나무는 지구의 허파이자, 가장 오래된 탄소 흡수원이다.
그 숲을 베고 불태워 ‘탄소중립’을 말하는 건, 마치 물을 데우기 위해 얼음을 태우는 일처럼 모순적이다.
산불로 사라진 숲, 벌목으로 사라지는 숲.
기후위기의 시대에 남은 질문은 하나다.
“우리가 지켜야 할 것은 에너지인가, 숲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