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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갛게 칠했지만, 안전은 그대로” 마포구 ‘레드로드’가 보여준 보행자 중심 설계의 한계

서울 마포구가 홍대입구 일대에 조성한 ‘레드로드’는 도로 전체를 붉은 색으로 칠해 보행자 우선구역임을 알리는 사업이다. 구청은 이를 ‘차보다 사람이 주인공인 거리’로 홍보하며, 보행 안전과 관광 활성화를 동시에 노린다고 밝혔다. 하지만 현장을 보면, 색은 바뀌었어도 교통 행태와 안전 수준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출처 - 레드로드 홈페이지
         
색보다 구조가 먼저다
유럽에서 확산된 ‘정온화(traffic calming)’는 차량 속도를 자연스럽게 줄이게 만드는 물리적 설계가 핵심이다. 차로 폭 축소, 고원식 횡단보도, 과속 방지턱, 시야 차단물 등 운전자가 감속하지 않으면 통과하기 힘든 구조다. 반면 홍대 레드로드는 차로와 폭, 주차 규제, 차량 유입 구조가 거의 바뀌지 않았다. 도색 외의 물리적 저감 장치는 부재하다. 운전자가 시속 40km 이상으로 질주하는 것도 흔한 풍경이다.

미끄럼·혼란·유지관리 문제
도로를 페인트로 덮으면 마찰계수가 낮아져 특히 비 오는 날 미끄럼 위험이 커진다. 이륜차·전동킥보드 운전자뿐 아니라 보행자도 낙상 위험에 노출된다.
또한 지나치게 강한 색상 변화는 시각적 혼란을 유발할 수 있다. 시간이 지나 일부 구간이 벗겨지거나 오염되면, 오히려 차선과 표지가 잘 보이지 않아 안전성이 떨어진다. 마모·재도색에 드는 예산 부담도 무시할 수 없다.

‘안전하다’는 착시효과
페인트칠만으로 안전하다고 믿는 건 위험하다. 주민과 보행자가 색칠된 도로를 ‘보행자 보호구역’으로 오인하면, 실제 차량 속도와 통행 패턴을 과소평가할 수 있다. 물리적 저감시설 없이 색만 바꾸면, 보행자와 차량 모두 방심하게 만드는 ‘위험한 안심 구역’이 된다.

마포구 레드로드는 도시 미관 개선과 관광 홍보에는 일정한 효과를 낼 수 있다. 그러나 ‘사람 중심 거리’라는 목표를 실현하려면, 단순 도색이 아니라 물리적 속도 저감 시설, 주차 규제 강화, 차량 통행량 조절 같은 구조적 대책이 병행돼야 한다.
지금처럼 색으로만 정책 성과를 포장한다면, ‘보행자 우선도로’는 명패만 그럴싸한 안전 사각지대가 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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