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적으로 의료폐기물 처리 문제가 다시금 수면 위로 떠오르고 있다. 의료폐기물 소각장 증설 또는 신설 시도는 곳곳에서 주민 반발에 부딪히며 번번이 좌절되고 있으며, 최근 전남 목포시도 대양산단 인근에 추진되던 하루 48톤 규모의 의료폐기물 소각장 건립을 공식 반려했다. 반면, 의료기관들은 늘어나는 폐기물 처리 부담과 비용 상승에 비명을 지르고 있다.
의료폐기물 문제는 지금처럼 갈등으로만 접근할 사안이 아니다. 감염성 폐기물이라는 위험성도 크지만, 국민 보건의 필수 조건인 ‘1회용 의료기기’ 사용을 법으로 강제한 제도적 기반 아래에서는 합리적이고 안전한 처리 인프라 구축이 반드시 병행되어야 한다.
소각장이 필요한데, 아무도 원하지 않는 역설
의료폐기물은 병원, 동물병원, 검사기관 등에서 배출되는 폐기물 중 감염 우려가 있는 주사기, 혈액 오염 거즈, 병리조직 등으로 분류된다. 환경부 통계에 따르면 의료폐기물 발생량은 2020년 19만5천 톤에서 2022년 22만9천 톤으로 2년 만에 약 18% 증가했다. 반면 이를 처리할 전국 의료폐기물 전용 소각장은 단 13곳에 불과하다.
그나마 이 중 상당수가 지역사회 반발로 인해 증설이나 운영에 제약을 받고 있다. 부산 기장군, 경기 안성시, 포천시, 그리고 최근의 목포시까지 의료폐기물 소각시설 추진이 주민 반대에 막혀 무산되었다. “환경오염 우려”, “타지역 폐기물 반입에 대한 불신”, “지역 이미지 실추” 등이 이유다.
주민 반대는 당연하다. 의료폐기물은 이름 자체가 주는 거부감도 크며, 실제로 감염성과 독성이 있는 고위험 물질인 만큼, 처리상의 안전성과 투명성 확보 없이는 지역 수용이 어렵다. 그러나 이대로라면 의료현장은 점점 더 높은 비용과 불안정한 처리 구조에 시달릴 수밖에 없다.
비용의 벽…84배 차이 나는 의료폐기물
처리비용 역시 의료현장의 부담으로 작용한다. 서울 강서구 기준, 10L짜리 생활폐기물 봉투 한 장은 250원. 일반 쓰레기 1kg 처리에 71.4원이 든다. 반면 의료폐기물은 5kg에 3만 원, 1kg당 무려 6천 원이 든다. 무려 84배 차이다.
이처럼 높은 비용의 배경에는 의료폐기물의 철저한 분류, 보관, 이송, 소각 규정이 자리잡고 있다. 무허가 장소에 일시 보관만 해도 해당 의료기관이 처벌을 받는 현실은 폐기물 처리 지연이 곧 범죄로 이어지는 구조를 뜻한다.
병원 내 자체 처리 기술이 해법 될까?
이런 상황에서 의료폐기물을 직접 병원 내에서 처리할 수 있는 기술 개발은 주목할 만한 대안이다. 한국기계연구원은 충남대병원 등과 함께 고온·고압 멸균 장치를 개발했다. 이 장치는 의료폐기물을 병원 현장에서 멸균해 일반폐기물로 전환할 수 있다. 일반폐기물 처리 단가의 21% 수준으로, 연간 718억 원 규모의 처리비용 절감 효과가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이 기술은 산업부로부터 신기술 인증까지 받았고, 실제 설치도 가능하다. 특히 제주도처럼 소각장이 없는 지역이나, 감염병 발생 시 긴급 대처가 필요한 병원 환경에서는 큰 장점이 될 수 있다.
제도적 정비가 우선이다
의료폐기물 처리에 있어 가장 시급한 것은 제도의 정비다. 현재 ‘일일 처리 용량 100톤 미만’ 소각장은 환경영향평가 대상에서 제외돼 주민 의견 수렴도 거치지 않고 설치가 가능하다. 이번 목포 사례처럼 하루 48톤 규모 소각장이 목포시 일일 발생량의 10배를 처리하는 대규모 시설임에도, 제도적 허점으로 주민 동의 절차 없이 추진될 수 있었다.
의료폐기물의 특수성과 감염성, 지역 수용성 등을 고려할 때, 단순 처리 용량이 아닌 위해성과 유입량, 지역 환경 적정성 등을 종합적으로 판단하는 기준이 마련되어야 한다. 주민 의견 수렴 절차의 의무화, 거버넌스 확대, 지역 지원책 병행 등 사회적 설득을 위한 절차도 법제화가 필요하다.
비용은 누가 감당할 것인가?
하나 더 고려해야 할 점은 의료폐기물 처리비용의 건강보험 수가 반영 문제다. 의료기관은 건강보험 제도의 엄격한 수가 통제 아래 움직이며, 감염 예방을 위한 1회용 의료기기 사용도 법으로 강제돼 있다. 의료폐기물은 결국 국민 건강을 지키는 데 따르는 불가피한 부산물이다. 그렇다면 이 비용 또한 일정 부분 국가가 보전하는 방식의 수가 반영이 필요하다.
“더 늦기 전에 공론화와 대책 필요”
의료폐기물 문제는 단지 소각장 하나의 건립 여부로 국한할 사안이 아니다. 감염병 시대를 거치며 폐기물 양은 급증하고 있고, 국민 건강 보호와 직결된 처리 시스템의 안전성·지속 가능성을 확보하는 것이 시급하다.
전국 지자체와 정부, 의료계, 시민사회가 함께 현실적이고 지속 가능한 대안을 마련해야 할 때다. 소각시설에 대한 지역 수용성을 높이기 위한 법·제도 개편과, 멸균기술 확대 보급, 수가 반영 등 다방면에서 접근이 필요하다. 지금은 묻어둘 때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