확대 l 축소

"세웠다 치우고 또 짓고"…조형물에 빠진 지자체, 치적은 남고 세금은 사라졌다

창원·대구·거제 등 전국 곳곳에서 공공조형물 철거 사례 잇따라…최대 80억 들인 사업도 7년 만에 폐기
공공조형물은 도시의 얼굴이자 공동체의 상징이지만, 최근 일부 지자체에서 벌어지는 조형물 설치와 철거의 반복은 '시민 무시 행정'과 '치적용 전시행정'이라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수억 원의 예산이 투입된 조형물이 시민의 외면 속에 ‘흉물’로 낙인찍히고, 단 몇 년 만에 철거되는 사례가 전국 곳곳에서 반복되고 있다.

창원 ‘빅트리’, 시민 반응은 싸늘…“차라리 맨땅이 낫겠다”
4일 임시 개방된 창원 대상공원의 ‘빅트리’ 현장은 단체 관람객들로 붐볐지만, 반응은 냉담했다. 전망대에서 마주한 인공나무 16그루에 대해 시민들은 “가짜 티가 난다”, “빛 바래면 더 흉물될 것”이라며 세금 낭비에 대한 분노를 드러냈다. 창원시는 4~17일 시민 의견을 수렴해 개선안을 내놓겠다고 했지만, “이미 다 만들어놓고 의견을 듣는 건 요식행위”라는 회의적 목소리도 이어졌다.

창원시 빅트리 - 출처 창원시청 홈페이지
80억 순종 조각상, 7년 만에 철거…‘역사왜곡’·‘민원’ 끝에 사라져

대구 중구가 지난 2015년부터 조성한 ‘순종황제 어가길’ 사업은 총 70억 원의 예산이 투입됐지만, 역사왜곡 논란과 주민 민원에 밀려 올해 철거에 들어갔다. 대구 달성공원 앞에 세워진 5.4m 크기의 순종 조각상과 주변 조형물 6개는 “친일 이미지 미화”와 “교통 혼잡 유발” 등의 이유로 시민의 외면을 받았다. 조형물 설치에만 10억 원 이상이 들었지만, 철거에 다시 4억 원이 소요될 예정이다.

2017년 8월 29일 국치일을 맞아 대구 시민들이 달성 앞에 세워져 있는 순종 동상을 
무너뜨리는 동작의 시위를 하고 있다 - 출처 민족문제연구소 홈페이지

16억 ‘짝퉁 거북선’, 3억 ‘꽁치 꼬리’도 결국 폐기

경남 거제시의 16억 원짜리 거북선 조형물은 건조 직후부터 ‘가짜 목재 사용’과 ‘물 새는 선체’ 문제로 논란이었으며, 결국 전시용으로 옮긴 뒤 13년 만인 2023년 폐기됐다.
포항의 3억 원짜리 ‘꽁치 꼬리’ 조형물은 “비행기 추락을 연상시킨다”는 민원 끝에 철거됐고, 인천 송도의 15억 원 조명시설물, 서울 한강의 1억8000만 원짜리 ‘괴물’ 조형물도 마찬가지로 시민 외면을 받으며 철거 대상에 올랐다.

조형물도 ‘정치’의 도구…단체장 바뀌면 철거, 다시 설치

문제는 이러한 사업 대부분이 단체장의 재임 시절 치적 쌓기와 단기적 홍보에 초점이 맞춰졌다는 점이다. 임기 초반에 급히 기획되고 시민 참여 없이 밀어붙인 결과, 후임 시장이나 군수가 철거 결정을 내리면서 “전임 단체장의 흔적 지우기” 논란까지 겹치고 있다.

“공공성·지속성 검증 없이 졸속 추진”…책임 소재도 불분명

전문가들은 이러한 사태를 두고 “장소와 맥락을 고려하지 않은 전시행정의 결과”라고 지적한다. 배재대 최호택 행정학과 교수는 “조형물은 도시의 정체성과 결을 같이 해야 한다”며 “설치 이전에 충분한 시민 소통과 전문가 검증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말했다.

또한 단기간 철거된 조형물에 대해서는 설계자, 추진 공무원, 단체장의 책임 소재를 명확히 하고 행정상 제재가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조형물은 권력의 상징물이 아니다

지자체의 공공조형물 사업은 문화와 공동체를 위한 공공예산이지, 단체장의 이름을 남기기 위한 정치적 도구가 되어서는 안 된다. 설치보다 어려운 건 유지와 존중, 그보다 더 중요한 건 시민 공감과 참여다. ‘치적’은 남았을지 몰라도, 남은 시민의 반감과 사라진 세금은 누가 책임질 것인가.

이전화면맨위로

확대 l 축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