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심 곳곳에서 반복되는 지반침하(싱크홀) 사고에 대한 국민 불안이 커지는 가운데, 이를 근본적으로 막기 위한 정책 논의가 국회에서 본격화됐다.
국회 재난안전정책포럼(공동대표 이종배·민홍철, 연구책임 정희용 의원)은 지난 7월 21일 국회의원회관에서 국토교통부, 행정안전부 후원으로 ‘싱크홀 사고, 어떻게 막을 것인가’를 주제로 지반침하 방지를 위한 제도개선 토론회를 열었다. 이번 토론회는 단순한 사고 대응을 넘어, 구조적 원인 진단과 예방 중심 정책 전환의 필요성을 공론화하는 계기가 됐다.
63.4%가 인재(人災)…노후 인프라가 주범
이종섭 고려대 토목환경공학과 교수는 “지반침하 사고의 63.4%는 상·하수도관 등 지하 매설 기반시설의 손상에서 비롯된다”며, “싱크홀은 자연재해가 아니라 명백한 인재”라고 지적했다.
이 교수는 특히, 지표투과레이더(GPR) 등 첨단 지하탐사기술을 활용한 사전 탐지체계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과학기술 투자 없이 지반 안전 확보는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지하안전관리법에도 불구, 사고 다시 증가세
국토교통부 지하안전관리실장 허춘근에 따르면, 2018년 지하안전관리법 시행 이후 지반침하 사고는 한때 감소세를 보였지만, 2021년부터 다시 증가하고 있다.
2024년 기준 전국 지반침하 사고는 169건, 이 중 17건은 서울에서 발생했다.
허 실장은 “2025년 예산 527억원을 확보해 노후관 탐사·정비사업을 강화하고, 전문 인력을 13명에서 31명으로 늘리고, 고해상도 탐사장비도 22대 추가 배치 중”이라고 밝혔다.
“서울은 상시 위험지역”…민관 통합안전관리 시급
서울시 지하안전과장 한휘진은 “복잡한 지하 구조와 고밀도 인구로 인해 서울은 상시 지반침하 위험이 존재한다”고 설명했다.
서울시는 자체 GPR 탐지 장비를 활용해 정기 점검을 실시 중이며, 시민 체감형 조기경보시스템도 개발 중이다.
행정안전부 재난안전관리센터장 박덕근은 “구조물 붕괴 등 2차 피해로 이어질 수 있는 중대 재난”이라며, “지자체, 공공기관, 민간시공사 등이 함께 참여하는 통합 안전관리체계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지하안전은 기술이 아닌 시스템 문제”…입법과 예산 시급
김용수 대한지반공학회 연구위원은 “공사 단가가 비현실적으로 낮게 책정되는 관행도 지하안전을 위협하는 요소”라며, “예방 중심의 정책기조로 전환하지 않으면 사고는 반복될 수밖에 없다”고 경고했다.
강동소방서 이영한 대응팀장은 사고 이후 책임소재가 불분명하고 복구가 지연되는 현실을 지적하며, “명확한 책임주체 설정과 공공기관 간 협조체계 강화가 시급하다”고 제언했다.
제도·기술·예산을 묶는 종합대책 요구
토론자들은 ▷지하시설물 전수조사 및 정비체계 구축 ▷노후관 조기 교체 ▷지하정보 통합관리 시스템(GIS 기반) 구축 ▷첨단탐사기술 전국 확대 ▷민관 기술개발 지원 및 데이터 공공화 등을 구조적 개선과제로 제시했다.
정희용 의원은 “지하안전은 국민의 삶과 직결되는 만큼 실효성 있는 제도 마련과 예산 확보가 절실하다”고 강조했다.
공동주최자인 이종배·민홍철 의원도 “재난은 예방이 최선”이라며 “국회가 지반침하 대응체계 개선의 전환점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지하 공간은 더 이상 ‘보이지 않는 영역’이 아니다. 싱크홀은 땅속에서 벌어지는 도시의 노후와 관리 실패의 신호탄이다. 지반침하는 단지 서울의 문제가 아니라 전국적 재난관리 체계의 빈틈을 드러내고 있다. 예방 중심의 안전 패러다임 전환, 현장 중심 기술 보급, 제도와 예산의 총체적 정비가 함께 추진돼야 한다. ‘발밑의 안전’을 지키는 일이, 곧 미래 도시의 지속가능성을 지키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