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성형 AI, 초거대 언어모델, 디지털 전환… AI 기술의 비약적 발전을 가능케 하는 ‘보이지 않는 인프라’는 다름 아닌 데이터센터다. 챗GPT의 등장 이후 각국은 AI 기술 주도권을 확보하기 위해 데이터센터 구축 경쟁에 돌입했고, 국내 지자체들 역시 ‘기회발전특구’ 유치를 발판 삼아 속속들이 유치전에 뛰어들고 있다.
울산시는 지난 7월, 미포국가산단 내 100MW급 AI 데이터센터 투자를 유치하며 ‘AI 수도’를 표방했다. SK브로드밴드가 주체가 된 이번 사업은 총 1조5천억 원의 투자가 투입되며, 울산시는 생산·부가가치·고용 측면에서 수조 원대의 파급효과를 기대하고 있다.
그러나 데이터센터 유치에 내포된 전력 소비 폭증과 전력망 부담은 간과할 수 없는 그림자다.
데이터센터, 도시 하나 전기를 삼킨다
국제에너지기구(IEA)에 따르면, 전 세계 데이터센터 전력 소비는 2022년 460TWh에서 2026년 1,000TWh로 두 배 이상 증가할 전망이다. 미국 로렌스 버클리 국립연구소는 “AI 기반 데이터센터는 기존 대비 3배의 전력을 소모할 것”이라 경고했고, 한국 역시 예외가 아니다.
실제 국내 한 포털 기업이 운영 중인 데이터센터는 최대 270MW의 전력을 소비한다. 이는 경기도 고양시 전체 가정용 전력 소비량과 맞먹는 수치다. 전라남도가 추진 중인 3GW 규모 데이터센터는 서울시 전체 주택용 전력량에 버금가는 수준으로, 현실화된다면 국가 전력 체계 전체를 흔들 수 있는 위력을 지닌다.
한국 전력망, AI의 속도 못 따라간다
국회입법조사처는 2024년 보고서에서 “2029년까지 732개 신규 데이터센터가 들어설 경우, 국내 전력 수요는 원전 53기 분량에 달한다”고 경고했다. 그중 상당수는 아직 실질적 가동 계획이 없음에도 토지 확보를 위한 전력 용량만 선점한 상태로, 이른바 ‘전력 땅장사’ 논란도 피할 수 없게 됐다.
AI 기술의 급속한 확산에 따른 과도한 전력 수요 선점과 불균형한 전력 사용은 다른 산업은 물론 주거, 생활용 전력에도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
세계는 지금 ‘AI 전력전쟁’
이미 해외에서는 경고등이 켜졌다. 아일랜드에선 데이터센터 전력 소비가 국가 전체 사용량의 20%를 넘어서며, 더블린 일부 지역에서 신규 주택 공급이 중단되는 사태가 벌어졌다. 독일과 미국 버지니아주는 주거 지역 내 데이터센터 허가를 제한하고, 재생에너지 기반 설비와 폐열 재활용 시스템 도입을 의무화했다.
국내 역시 이런 흐름을 무시하기 어렵다. 데이터센터의 에너지 효율화(PUE 개선), 재생에너지 연계, 스마트 전력망 도입 등 기술적 해결책 마련이 시급하다.
AI는 멈출 수 없다…그렇다면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
현재 상황을 “브레이크 없는 자전거”로 비유한다. AI 경쟁에서 뒤처지지 않기 위해선 데이터센터 확충은 불가피하지만, 그렇다고 전력 시스템의 한계와 환경 부담을 외면할 수도 없다.
이는 기술 경쟁의 논리와 지속가능성의 딜레마가 정면 충돌하는 지점이다. 문제는 ‘어떻게 잘 유치하고, 어떻게 잘 분산·관리할 것인가’다.
AI 시대의 인프라 전략, ‘유치’에서 ‘관리’로
AI 기술의 발전이 국가 경쟁력의 핵심임은 분명하다. 그러나 데이터센터 유치는 단순한 경제 유치가 아닌 에너지·환경·공공정책의 복합 전략으로 접근해야 한다. 울산처럼 기회발전특구와 분산에너지 특화정책을 결합한 지자체의 선례는 주목할 만하지만, 지속 가능성을 담보하지 못한다면 ‘기회의 땅’은 ‘위기의 땅’으로 바뀔 수 있다.
AI는 더 이상 선택이 아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더 철저한 설계와 준비가 필요하다. 데이터센터가 국가의 엔진이 될 것인가, 짐이 될 것인가는 지금의 정책 선택과 기술 대응에 달려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