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바닷속에 넣어야 하나.”
폭증하는 AI 연산과 데이터 저장의 열기를 식히기 위해 세계는 극단의 해답을 모색 중이다. 사방이 고요한 수심 30m 바닷속, 전자기기와 서버가 밀집된 공간이 설치된다. 그것도 단순한 실험이 아닌, 본격적인 ‘수중 데이터센터’ 단지다.
한국해양과학기술원(KIOST)과 울산광역시, GS건설, 포스코가 손잡고 ‘해저 도시’의 서막을 열었다. 2035년까지 울산 앞바다에 최대 10만 대 이상의 고성능 서버를 수용하는 수중 데이터센터 단지를 구축하겠다는 계획은, 그 자체로 세계 과학기술사에 남을 사건이다. KIOST는 현대건설, SK텔레콤, 한국항공우주연구원 등 23개 기업, 기관과 함께 금년 5월에 '해저기지'설계를 완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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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저공간 플랫폼과 수중 데이터센터 단지 구축(안)-KIOST |
하지만 이 실험은 단순한 기술 진보가 아니다. 지금 우리가 감당해야 할 지구적 책임과 기술 윤리, 그리고 미래세대에 대한 부채의식이 결합된 복합적 도전이다.
▍냉각의 전쟁, 그리고 지구
AI와 데이터 산업의 성장 곡선은 가파르다. 그런데 이 산업의 가장 큰 병목은 '열'이다. 서버를 식히기 위해 필요한 에너지가 전체 데이터센터 운영비의 40%를 넘긴 지 오래다. 이 열을 줄이기 위해 인간은 북극으로, 우주로, 그리고 이제는 바다로 향한다.
전통적인 공랭식 방식은 이제 한계다. 공기로는 감당할 수 없는 고밀도 GPU를 위한 해법으로 수랭식 기술이 주목받고 있으며, ‘직접 액체 냉각(DLC)’이나 ‘액침 냉각’ 같은 최신 기술도 속속 등장하고 있다. 그러나 기술에는 늘 비용과 에너지의 그림자가 따라붙는다.
해저 데이터센터는 이러한 전력 문제의 ‘궁극의 차선책’이다. 자연의 찬 바닷물로 서버를 식히면 냉각 전력의 최대 70%까지 줄일 수 있고, 이를 통해 탄소 배출도 크게 감축된다. 울산 앞바다에 설치될 KIOST의 수중 데이터센터는 외부 해수를 직접 끌어들이지 않는 ‘폐쇄형 냉각 시스템’이다. 이는 해양 생태계를 훼손하지 않기 위한 의도된 설계다.
하지만 정말 이것이 정답일까?
▍기술 선진국의 윤리: 우리는 미안해해야 한다
이 프로젝트가 가진 무게감은 단순한 기술 실험을 넘어선다. 세계적으로 AI·데이터산업을 주도하는 ‘기술 선진국’들은 막대한 연산을 처리하기 위해 어마어마한 전력을 소모하고 있다. 선진국이 만든 디지털 세상은 이제 물리적 지구의 한계를 시험하고 있다.
이는 ‘기술 후진국’과의 형평성 문제를 불러온다. 많은 개발도상국은 여전히 전력 부족과 인터넷 접근조차 어려운 상황이다. 반면 선진국은 서버를 위해 바다까지 점유하며 환경을 소비한다. 기술 발전의 대가는 과연 공정하게 나뉘고 있는가?
게다가 해저 데이터센터는 유지보수 측면에서 일반 데이터센터보다 훨씬 비효율적이다. 이는 자원 낭비의 가능성을 내포한다. 비용 절감과 냉각 효율이라는 단기 성과보다, 장기적으로 해양 생태계에 미치는 영향과 ‘그 공간을 사용해야만 했던 이유’를 다음 세대에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책임 있는 기술’이란 무엇인가
지금 기술 선진국에게 필요한 것은 ‘더 많은 기술’이 아니다. 그것은 ‘더 윤리적인 기술’, ‘더 책임 있는 인프라’다.
수중 데이터센터는 단지 냉각의 공간 확보가 아니라, 우리가 지구라는 유한한 공간에서 기술을 어떻게 공정하게 사용할 것인가를 묻는 시금석이다. ‘기술의 진보’가 ‘지속 가능한 발전’을 위해 움직이도록 방향을 튼다면, 이 프로젝트는 하나의 전환점이 될 수 있다.
KIOST는 "해저 탐험은 우주 탐사처럼 인류의 영역을 확장하는 일"이라고 밝혔다. 맞다. 그러나 우리는 그 확장을 통해 누구를 이롭게 할 것인가, 또 누구에게 희생을 요구하는지를 분명히 인식해야 한다.
▍미래 세대를 위한 전언
해저 데이터센터가 구축될 때, 우리가 그 내부에 함께 저장해야 할 것은 단지 데이터가 아니다. 그것은 미래 세대에게 남길 수 있는 메시지다:
“우리는 우리가 저지른 탄소와 열기를 되돌리기 위해 바다를 선택했다. 단지 기술 때문이 아니라, 지구를 되살릴 의무가 있었기 때문이다.”
기술 선진국은 그 무게를 안고 있어야 한다. 효율의 환호 뒤에 가려진 침묵의 바다에, 우리 모두의 책임이 담겨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