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50 탄소중립 달성을 위한 ‘친환경 연료’로 각광받아 온 바이오연료가 사실상 환경 파괴와 온실가스 배출의 새로운 경로로 기능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왔다. (사)기후해양정책연구소 코리에서는『녹색 허상, 붉은 현실: 한국 바이오연료 정책의 지속가능성 평가와 개선 과제』를 주제로 한국 바이오연료 정책의 지속가능성 평가와 개선 과제 브리프 발표를 했다.
국내 정책의 ‘지속가능성 기준 부재’와 ‘수입 팜유 의존 구조’가 겹치며, 탄소중립이라는 목표가 자칫 허상에 그칠 수 있다는 경고다.
바이오연료는 탄소중립? “조건부일 뿐”
한국 정부는 발전과 수송, 항공·해운 등 전 분야에서 바이오연료 보급을 확대하고 있다. 산업계와 정부는 바이오연료가 광합성 기반의 ‘탄소 순환’ 논리에 따라 탄소중립적이라고 주장해 왔다. 하지만 보고서는 IPCC와 IEA 등의 국제기구도 “모든 바이오연료가 탄소중립은 아니며, 전과정 평가(LCA)가 필수”라고 지적한 점을 강조했다.
특히 곡물 및 식용유 기반의 바이오연료는 산림 파괴, 간접 토지이용변화(ILUC), 수송·가공 과정에서의 화석연료 투입 등으로 오히려 탄소 배출을 유발할 수 있다는 것이다.
팜유 의존 74%… '녹색연료'의 이면
보고서에 따르면 국내 바이오연료의 원료 수입의 74%가 팜유계다. 문제는 이 팜유가 인도네시아·말레이시아 등에서 산림 파괴와 이탄지 개발을 통해 생산된다는 점이다. 2001~2015년 사이 팜유 플랜테이션 개발로 훼손된 산림 면적은 대한민국 국토보다 넓은 1,050만 헥타르에 달한다.
특히 이탄지 개간으로 인한 온실가스 배출은 팜유 1톤당 약 13톤의 CO₂e를 유발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대해 EU는 팜유 기반 바이오연료를 ‘고위험 원료’로 분류하며 2030년부터 수송 부문에서 퇴출할 방침이다.
한국은 여전히 ‘보급 중심’ 정책
한국은 수송용 경유에 바이오디젤 혼합을 의무화(RFS)하고, 대형 발전사에 신재생 비중을 강제(RPS)하고 있다. 그러나 이 제도들은 보급 확대에는 집중하면서도, 원료의 지속가능성과 감축 효과에 대한 기준은 전무한 실정이다. EU나 미국처럼 연료별 감축 기준이나 로드맵이 없어, ‘탈탄소’ 수단으로서 바이오연료의 신뢰성이 흔들리고 있다.
특히 제주도의 바이오중유 발전소는 바이오중유를 발전용 연료로 쓰며 매년 수천 톤의 메탄과 아산화질소를 배출하고 있으나, 이에 대한 정책적 대응은 전무하다.
인증제도의 ‘그린워싱’ 문제
환경 인증의 상징처럼 여겨지는 RSPO(지속가능한 팜유 원탁회의)와 ISCC(국제지속가능성탄소인증)도 독립성 부족, 형식적 심사, 추적 불가 등으로 인해 실제 환경·인권 침해를 막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잇따르고 있다. 보고서는 팜유가 폐식용유로 둔갑해 수입된 사례를 언급하며, 그린워싱 우려를 경고했다.
“감축 효과 중심으로 정책 전환해야”
보고서는 바이오연료 정책의 지속가능성을 확보하기 위한 주요 과제로 다음을 제시했다.
고위험 원료(팜유 등)의 단계적 감축 및 사용 제한
LCA 기반의 전과정 온실가스 평가 도입
환경·사회 기준을 갖춘 연료별 감축 로드맵 수립
자발적 인증 대신 국가 차원의 규제 기반 강화
탄소중립은 수단이 아닌 결과여야 한다. ‘바이오연료=친환경’이라는 단순한 등식에서 벗어나야 할 때다. 탄소 감축을 명분 삼아 타국의 산림을 파괴하고, 수입 연료로 ‘국내 감축 실적’을 포장하는 구조는 더 이상 용납되기 어렵다. ‘녹색 허상’에서 벗어나기 위한 정치적 결단이 필요한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