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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도인가, 기록자인가” — 법정에 선 다큐 감독 정윤석의 딜레마

지난 4월 중순 경 온라인에는 작은 소동이 있었다. 어떤 감독이 서울서부지방법원 건으로 기소위기에 있으니 무죄탄원하자는 온라인 서명 운동이었다. 사건의 내막을 잘 모르는 사람들은 중한 처벌을 피할려고 저러는구나하는 의혹의 시선을 보냈다. 이 소동은 일개 개인의 일탈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표현의 자유와 국가권력의 충돌문제로 볼 수 있다.
 
예술인가, 선동인가… '서부지법 점거 사건'에 휘말린 독립 다큐멘터리 감독

2025년 1월 19일 새벽, 서울서부지방법원에서 벌어진 이례적인 사건은 단지 극우 시위대의 불법 점거만이 아니었다. 그 속엔 ‘기록자’와 ‘피의자’라는 두 얼굴 사이에서 방황하는 한 감독의 존재가 있었다. 독립 다큐멘터리 감독 정윤석이 그 주인공이다. 검찰은 그를 ‘폭도’로, 정 감독은 자신을 ‘기록자’로 정의한다. 이 둘 사이의 거리는 단지 법적 판단의 문제가 아니라, 표현의 자유와 국가 권력 간의 경계선 그 자체를 가늠하는 리트머스 시험지로 읽힌다.

 "기록자"인가 "폭도"인가: 기소의 핵심 쟁점

검찰은 정윤석 감독을 특수건조물침입죄로 기소했다. 이는 단체 또는 다중이 위력을 행사해 건조물에 불법 침입했을 때 적용되는 중범죄다. 공소장에 따르면 정 감독은 시위대를 따라 법원 후문을 통해 무단 침입했으며, 그 행위 자체가 시위대의 불법행위에 ‘동조’한 증거라고 본다.

하지만 정 감독의 진술은 전혀 다르다. 그는 폭동이 벌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한 뒤 촬영을 위해 현장에 도착했다고 말한다. 택시 영수증에는 그가 새벽 3시43분 현장에 도착한 시간이 명확히 남아 있다. 경찰이 기술한 ‘오전 3시경부터 시위에 가담했다’는 공소장 서술과는 시간상 어긋난다.

더구나 정 감독은 경찰 조사에서 “불법행위가 자행되는 걸 알면서도 이를 기록하기 위해 카메라를 들었다”고 명시했다. 심지어 촬영한 영상도 자발적으로 제출했다. 그는 “내 영상은 폭도를 찍은 것이지, 내가 폭도였다는 증거는 아니다”라고 말한다.

JTBC 기자는 기자상, 다큐 감독은 기소?… ‘표현의 자유’ 이중잣대 논란

이번 사건이 단순한 불법침입 논란을 넘어서 파장을 일으킨 이유는, 바로 표현의 자유의 이중 기준 때문이다. 같은 시간대, 같은 장소에서 JTBC 취재팀은 서부지법 건물 내부에 진입해 시위대의 행태를 촬영·보도했다. 그러나 JTBC 기자는 기소는커녕 한국기자협회의 이달의 기자상을 수상했다.

반면 독립 다큐멘터리 감독인 정윤석은 구속 없이도 수사를 받았으며, 수사 과정에서 경찰과 검찰은 그를 폭동 가담자로 간주했다. 정 감독은 이에 대해 “왜 언론인은 취재고, 예술가는 선동이냐”며 문제를 제기한다. 같은 표현 행위가 신분이나 직업에 따라 다르게 해석되는 것, 그 자체가 표현의 자유를 위협한다고 본다.

이 사건은 한국 사회가 여전히 예술과 언론, 표현과 선동 사이의 경계를 어떻게 구분하고 있는지를 여실히 보여준다. 정 감독은 “이 사건은 단지 내 유무죄 문제가 아니라, 앞으로 예술가들이 어떤 경계 안에서 움직일 수 있는지 판례로 남게 될 것”이라고 말한다.

수사의 정당성은? “진술 묵살, 혐의 바꿔치기” 주장도

정 감독은 수사 과정에서 진술이 묵살됐다고 주장한다. 경찰 조사 초기까지만 해도 분위기는 “호의적”이었다. 그러나 메모리카드 제출 이후, 경찰은 그의 혐의를 ‘일반주거침입’에서 ‘특수건조물침입’으로 변경했고, 정 감독은 이에 항의했다.

그는 “경찰이 영상을 보고도 오히려 내게 불리한 방향으로 사건을 끌고 갔다”며, 이는 수사기관이 사건을 일괄적으로 폭동 프레임으로 묶기 위한 '정치적 판단'이라고 본다. 검찰은 그를 별도의 조사 없이 그대로 기소했다.

더욱이 그는 법정에서 수사 절차의 하자를 크게 다투지 않았다. 이유는 이례적이다. “내가 나서서 수사기관을 비판하면, 진짜 폭도들에게도 빠져나갈 구멍을 주게 될까 봐 조심했다”는 것이다. 오히려 그는 검찰이 먼저 공소를 취소함으로써 ‘제대로 된 판결’의 명분을 쌓을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예술가의 권리’와 ‘헌법적 가치’가 충돌하는 자리

정윤석 감독은 지난 10여 년 간 한국 사회의 비극적 사건들을 카메라에 담아왔다. 〈논픽션 다이어리〉, 〈밤섬해적단 서울불바다〉는 각각 1990년대 자본주의의 붕괴와 국가보안법의 실체를 조명하며 국내외 영화제에서 주목을 받았다. 그는 자신을 “기록자이자 시대를 증언하는 사람”이라고 규정한다.

이번 사건을 계기로 정 감독은 예술인권리보장법에 따른 법적 판결을 받아내겠다는 입장이다. 이는 한국 사회에서 예술가가 단순히 ‘비정규 언론인’ 취급을 받는 현실에서 벗어나, 표현 주체로서의 독립성을 인정받는 판례를 만들겠다는 의미다.

그는 “내가 만드는 영화보다도, 이번 재판이 더 중요한 기록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1만5천 명 탄원, 박찬욱·변영주 감독도 지지 나서

정윤석 감독의 사건은 영화계 안팎에서도 뜨거운 반향을 일으켰다. 박찬욱, 변영주 감독을 비롯한 다수의 영화인들이 무죄 촉구 탄원에 이름을 올렸고, 시민 1만5천여 명이 재판부에 탄원서를 제출했다. 이는 단순한 ‘동정’이 아니라, 예술 활동의 공적 성격을 인정하라는 사회적 압박이기도 하다.

표현의 자유를 묻는 시금석

정윤석 감독 사건은 한국 사회의 표현의 자유가 어느 수준에 와 있는지를 점검하게 한다. 이는 단지 법원의 판단만으로 끝날 일이 아니다. 예술, 언론, 시위, 표현을 둘러싼 모든 경계가 겹쳐진 이 사건은 2025년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내공을 시험하는 결정적 분기점이다.

정 감독이 구속되거나 처벌받는다면, 이는 단지 한 사람의 기소가 아니라, 앞으로 표현자 모두에게 적용될 새로운 경계선을 그리는 일이 될 것이다. 반대로, 무죄 판결이 내려진다면, 이는 한국 표현의 자유가 여전히 숨을 쉬고 있다는 상징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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