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 변화와 유통 구조 재편이라는 거대한 흐름 속에서, 노동은 더 이상 개별 사업장이나 중앙정부 정책만으로 보호되기 어려운 영역이 됐다. 특히 서울시는 인공지능(AI) 활용 확산, 생활물류 노동의 일상화, 온라인 플랫폼 중심 유통구조 재편이라는 변화의 최전선에 서 있다. 그만큼 서울시장에게 요구되는 노동정책의 책임 또한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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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보다 AI의 급속한 도입은 노동의 내용을 근본적으로 바꾸고 있다.
이미 콜센터, 물류 오더, 인사평가, 업무 배분 등 다양한 영역에서 알고리즘과 자동화 시스템이 노동을 통제하고 있다. 문제는 이러한 변화가 노동시간의 유연화라는 이름으로 장시간, 심야 노동을 고착화하거나, 성과 평가의 불투명성을 키우고, 고용 불안을 비롯한 과로를 확대하는 방향으로 작동하고 있다는 점이다. 노동자는 시스템의 결정에 이의를 제기하기 어렵고, 책임의 주체는 점점 모호해지고 있다.
서울시는 「서울특별시 노동 기본 조례」를 통해 노동정책 수립과 시행, 노동자권익보호위원회 운영 권한을 명시하고 있다. 그러나 AI 시대의 노동 현실을 충분히 반영하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의문이 남는다. 알고리즘에 의한 평가와 배제, 자동화로 인한 직무 전환과 해고 위험, 데이터 기반 관리가 초래하는 감시 노동 문제에 대해 서울시 차원의 원칙과 기준은 여전히 부재하다. 서울시가 노동 기본 조례를 통해 ‘AI 시대의 노동권 보호’라는 새로운 공공 기준을 제시하지 못한다면, 기술 변화의 비용은 고스란히 노동자에게 전가될 수밖에 없다.
생활물류 노동 문제 역시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는 과제다.
택배기사, 소화물배송대행 노동자 등 생활물류서비스 종사자들은 서울시민의 일상을 지탱하는 필수 노동자다. 하지만 이들은 여전히 개인사업자라는 이름 아래 산업재해와 안전 문제에서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 「생활물류서비스산업발전법」은 지방자치단체의 역할과 책임을 분명히 규정하고 있지만, 실제 현장에서 체감되는 변화는 크지 않다.
서울시는 생활물류 노동을 단순한 ‘산업 지원’의 문제가 아니라 ‘노동 안전과 권리 보호’의 관점에서 접근해야 한다. 과로사와 교통사고 위험, 분류작업과 배송 과정에서 발생하는 산재 문제는 구조적 문제다. 산재 예방을 위한 공공 인프라 구축, 안전 기준 강화, 실질적인 보상 체계 마련은 지방정부가 산업안전보건법 제4조2, 제4조3에 의해 충분히 개입할 수 있는 영역이다. 서울시가 이를 외면한다면, 법이 부여한 책무를 방기하는 셈이다.
유통 구조 변화 속 노동 문제는 더욱 복합적이다.
2013년 「유통산업발전법」은 대형마트 출점 제한과 의무휴업 제도를 통해 자영업자 보호를 시도했지만, 코로나19 이후 유통의 중심은 온라인 플랫폼으로 급속히 이동했다. 쿠팡의 독점적 성장과 홈플러스의 기업회생 절차는 기존 유통 규제가 더 이상 현실을 충분히 반영하지 못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 변화의 충격은 대형마트 노동자, 자영업자와 노동자, 협력업체 노동자 등 우리 시대에 그림자처럼 드리워진 보이지 않는 노동자(혹은 Melting Labour)에게 집중되고 있다.
문제는 대형마트와 온라인 플랫폼의 대립 구도가 아니라, 그 과정에서 노동이 소외되고 있다는 점이다. 오프라인 유통 노동자는 구조조정과 고용 불안을 겪고, 자영업자는 경쟁 압박에 시달리며 개페업을 반복하면서 생계를 유지 중이고, 플랫폼 노동자는 불안정한 계약과 강도 높은 노동과 산업자해에 노출된다. 서울시는 이들 간의 상생을 시장에만 맡길 것이 아니라, 노동 기준을 중심에 둔 유통 정책 재설계를 고민해야 한다.
서울시장 선거는 단순한 행정 책임자를 뽑는 선거가 아니다.
서울이라는 거대 도시에서 어떤 노동이 보호받고, 어떤 노동이 방치될 것인지를 결정하는 정치적 선택이다. AI 시대의 노동 기본권, 생활물류 노동자의 안전과 보상, 유통 구조 변화 속 노동자의 생존 문제에 대해 명확한 공약과 비전을 제시하지 못하는 후보라면, 서울시정을 맡을 자격이 있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이제 질문은 분명하다. 기술과 시장의 변화 앞에서 서울시는 노동을 어떤 가치로 바라볼 것인가. 2026년 서울시장 선거는 그 답을 요구하는 자리여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