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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동수칼럼] 대통령은 국민 앞의 업무보고, 마포구는 내부 행정용 매니페스토

최근 한국매니페스토실천본부가 주관한 마포구 공약이행 주민배심원으로 선정돼, 11월 5일 위촉장을 받은 이후 12월 초까지 세 차례에 걸쳐 마포구청장의 공약 이행 현황을 점검하는 과정에 참여했다. 
주민의 시선에서 공약을 평가하고 의견을 제시하는 자리였다. 이 경험은 공약과 매니페스토가 지방 행정에서 어떤 방식으로 관리되고 있는지를 다시 돌아보게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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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침 같은 시기, 이재명 대통령의 업무보고 방식이 많은 국민의 관심을 받았다. 
공개된 자리에서 진행된 대통령의 업무보고는 형식적인 절차를 넘어, 실제로 무엇을 했고 그 결과가 국민의 삶에 어떤 변화를 가져왔는지를 설명하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성과뿐 아니라 한계와 제약 조건도 함께 언급하고, 질문과 지적을 피하지 않는 태도는 보고의 대상이 ‘국민’이라는 점을 분명히 보여주었다.

이 장면을 보며 자연스럽게 이런 질문이 떠올랐다. 지방자치단체의 공약 관리와 평가는 과연 누구를 향하고 있는가. 주민을 향하고 있는가, 아니면 행정 내부를 향하고 있는가.

매니페스토(Manifesto)의 어원은 라틴어 ‘마니페스투스(manifestus)’로, ‘드러내 보이다’, ‘증거’라는 뜻을 갖고 있다. 정치에서 매니페스토는 단순한 약속이나 선거용 구호가 아니다. 무엇을 언제 어떻게 실현하겠다는 계획을 문서로 공개하고, 그 결과에 책임지겠다는 선언이다. 말이 아니라 증거로 남기는 약속이라는 점에서 중요하다.

마포구 역시 이러한 취지에 맞춰 공약 관리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구청 홈페이지에는 ‘공약&매니페스토’ 페이지가 별도로 마련돼 있고, 구청장은 취임 후 100일 이내 공약사업을 확정하고 다시 100일 이내에 이행계획을 수립하도록 규정돼 있다. 공약 변경 시에는 공약이행평가단의 심의를 거쳐 변경 사유와 내용을 공개하도록 돼 있다. 현재 마포구는 박강수 구청장의 5대 전략과제 아래 37개 공약사업을 관리하고 있다. 제도적 틀만 놓고 보면 공약 관리의 기본 요건은 갖추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주민배심원으로 실제 공약 이행 자료를 들여다보면서, 공약 관리의 기준점이 주민보다는 행정에 더 가까이 설정돼 있다는 인상을 받았다. 이재명 대통령의 업무보고가 국민의 체감과 결과를 중심에 두었다면, 마포구의 공약 평가는 행정 절차가 어디까지 진행됐는지를 중심으로 이뤄지고 있었다.

몇가지 예를 들어 보겠다.

우선, ‘마포순환열차버스 운영’ 공약의 이행 지표는 사업 추진 검토, 준비, 시범 운영 여부 등 단계별 진행 상황으로 구성돼 있다. 행정적으로는 의미 있는 과정일 수 있으나, 주민의 관점에서는 실제 이용객 수가 얼마나 되는지, 이동 편의성이 개선됐는지, 이용자 만족도는 어떤지가 더 중요한 판단 기준일 수 있다. 대통령의 업무보고가 정책 도입 여부보다 “그래서 무엇이 달라졌는가”를 설명하려 했던 것과 대비되는 지점이다.

두 번째, ‘민원해결사 현장구청장실 운영’ 공약 역시 운영 횟수와 장소 수가 핵심 지표로 제시돼 있다. 그러나 주민에게 중요한 것은 몇 번 열렸는지가 아니라, 민원이 어떻게 처리됐는지, 해결 과정은 충분히 설명됐는지, 결과에 대해 주민이 납득했는지일 것이다. 이재명 대통령이 업무보고 과정에서 정책 집행의 문제점과 현장의 반응을 함께 언급했던 점을 떠올리면, 공약 평가에서도 이러한 요소들이 보다 적극적으로 반영될 필요가 있다.

세 번째로 눈에 띈 부분은 공약 이행률 관리 방식이다. 일부 공약에서는 공개된 실적 자료와 이행률 수치의 관계가 직관적으로 이해되지 않는 경우가 있었다. 이행률이 어떤 기준으로 산정됐는지에 대한 설명이 충분하지 않다 보니, 주민 입장에서는 숫자가 행정의 성과를 설명하기보다는 오히려 거리감을 만드는 느낌을 받기도 했다. 국민 앞 업무보고에서 수치를 제시할 때 그 의미와 맥락을 함께 설명하려는 노력과 비교해 볼 만한 대목이다.

마지막으로, 구청의 직접적인 권한 범위를 넘어서는 사안들이 공약으로 포함돼 있는 점도 다시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상암 지역 개발, 광역철도 사업, 대형 문화시설 조성 등은 중앙정부나 광역자치단체, 민간의 결정이 중요한 영향을 미치는 사안들이다. 구청 차원의 협의와 건의, 주민 의견 수렴은 의미 있는 역할이지만, 이를 공약 이행의 성과로 평가하는 데에는 현실적인 한계가 있다.

이재명 대통령의 업무보고가 정책의 성과뿐 아니라 제약과 한계를 함께 설명했던 것처럼, 이러한 사안들은 공약과는 구분해 협력 과제나 중장기 과제로 관리하고, 구청의 역할과 한계를 주민에게 솔직하게 설명하는 방식이 오히려 신뢰를 높일 수 있을 것이다.

공약은 주민을 위한 약속이다. 
매니페스토는 그 약속이 실제로 어떻게 이행되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증거다. 국민 앞에서의 업무보고가 국가 운영의 책임성을 높이듯, 주민 앞의 공약 관리 역시 결과와 체감을 중심으로 다시 설계될 필요가 있다. 마포구의 매니페스토가 행정의 보고서가 아니라, 주민의 일상에서 확인되는 변화로 증명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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