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적 시민이라는 말은 여전히 조금 부담스럽다.
너무 근사하고, 너무 바른 사람을 떠올리게 한다.
하지만 지역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오래 지켜보다 보면, 공적 시민은 특별한 누군가가 아니라 묻고 기록하는 일을 멈추지 않는 사람에 가깝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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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처 - AI 이미지 생성 |
지역의 갈등은 대부분 사적인 감정에서 시작된다.
왜 우리 동네에 소각장이 들어오느냐, 왜 이 예산은 여기에 쓰이느냐, 왜 설명은 늘 뒤늦게 나오느냐. 이런 질문에는 분노와 피로가 섞여 있다. 문제는 그 감정이 질문으로 이어지지 못하고, 민원이나 댓글에서 소진될 때다. 그 순간 공적 문제는 다시 사적인 불만으로 접힌다.
묻는다는 것은 단순히 반대한다는 뜻이 아니다.
왜 이런 결정이 내려졌는지, 다른 선택지는 있었는지, 그 비용은 누가 감당하는지, 책임은 어디에 있는지를 차분히 짚어보는 일이다. 이 과정은 빠르지 않고, 때로는 지루하다. 하지만 이 질문들이 쌓일 때 비로소 지역의 문제는 ‘사건’이 아니라 ‘의제’가 된다.
기록은 그 다음이다.
기록은 편을 드는 일이 아니라, 사라지지 않게 남기는 일이다. 오늘의 설명이 내일 바뀌어도, 약속이 흐려져도, 기록은 남아 다시 질문할 근거가 된다. 기록이 없는 사회에서 시민의 기억은 늘 권력보다 짧다. 그래서 기록은 감시이기 이전에 최소한의 시민적 방어다.
요즘 시민은 자주 ‘확신하는 존재’로 요구받는다.
찬성인지 반대인지, 우리 편인지 아닌지를 즉각 드러내야 한다. 하지만 지역의 현실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공적 시민에게 더 필요한 능력은 빠른 판단이 아니라 조금 늦게 판단할 용기일지도 모른다. 충분히 알지 못한 문제 앞에서 질문을 남겨두는 태도 말이다.
묻고 기록하는 일은 거창한 시민운동이 아니다.
제도를 설계하는 것도, 구호를 외치는 것도 아니다. 다만 공적 문제를 사적인 감정으로만 흘려보내지 않으려는 노력이다. 그리고 그 노력은 늘 완벽할 수 없고, 때로는 불편하다. 그래도 누군가는 계속 물어야 하고, 남겨야 한다.
지역에서 민주주의는 선거 때만 작동하지 않는다.
회의록 한 줄, 예산 항목 하나, 행정의 말 바꾸기 하나하나가 민주주의의 현장이다. 그 현장에서 시민이 할 수 있는 가장 현실적인 역할은 묻고, 기록하는 것이다.
공적 시민은 멀리 있지 않다. 오늘의 불만을 질문으로 바꾸고, 그 답을 남기는 순간, 우리는 이미 그 자리에 서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