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땅은 기억한다: 제초제의 침묵, 유기농의 대답
    • 날씨가 더워지면서 풀도 쑥쑥 자란다. 유기농 농사에선 풀 매는 일이 농사의 절반이다. 새벽부터 밭으로 나가 땀을 흘리며 손으로 잡초를 뽑는 이들은 단순히 농작물을 가꾸는 것이 아니라, 환경과 건강을 지키는 일에 나서고 있다. 제초제 한 번 뿌리면 끝날 일을 왜 이토록 고되게 할까? 그 답은 바로 ‘공존’과 ‘미래’에 있다.
      한국의 농민 대다수는 여전히 제초제를 사용한다. “풀매기는 고생인데, 제초제 한 번이면 확 죽어버리더라.” 어르신들 말처럼 제초제가 처음 등장했을 때는 거의 마법처럼 여겨졌다. 그러나 그 이면에는 토양 오염, 발암물질 노출, 생태계 파괴라는 커다란 대가가 숨어 있었다.

      실제로 제초제의 주성분인 글리포세이트(glyphosate)는 세계보건기구(WHO) 산하 국제암연구소(IARC)에 의해 잠재적 발암물질로 분류되었다. 비선택성 전신 작용 제초제로, 대부분의 식물에 흡수되어 식물성장에 필요한 단백질 합성 경로(Shikimic acid pathway)를 차단하여 잡초를 제거한다.
      미국에서는 1974년부터 사용되었으며, 현재 세계에서 가장 널리 쓰이는 제초제 중 하나이다 . 유럽연합(EU) 소속 국가들을 중심으로 사용 금지나 단계적 퇴출을 추진하고 있으며, 프랑스, 오스트리아, 독일 등은 농업 생산성보다 안전성과 지속가능성을 우선하는 정책으로 전환하고 있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여전히 글리포세이트 계열 제초제가 ‘저독성 농약’으로 판매되고 있고, 농촌에서는 관행적으로 밭 가장자리나 도로변, 마당 주변까지 널리 뿌려지고 있다. 문제는 사용자 본인뿐 아니라 주변 사람과 토양 생태계 전체에 영향을 준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제초제를 쓰지 않는 유기농가는 어떻게 잡초를 이겨낼까?

      우선 작은 규모라면 손으로 직접 잡초를 매고, 100평 이상 규모부터는 비닐이나 부직포(잡초매트)를 활용한다. 비닐은 온실가스를 유발하는 석유계 제품이지만, 경사진 지형과 척박한 토질에서는 어쩔 수 없는 현실적 선택이다. 다만 유기농 인증을 받기 위해서는 비닐 소각을 금지하고, 폐비닐을 반드시 재활용 공장으로 보내야 한다.

      대안으로는 볏짚, 왕겨, 채소 찌꺼기 같은 천연 멀칭 자재를 활용하는 방식이 있다. 프랑스, 이탈리아 등 유럽의 유기농가들도 비슷한 방식으로 풀을 제어하며, 토양 유실을 막고 미생물 활동을 촉진한다.

      최근에는 ‘썩는 비닐’도 등장하고 있지만, GMO 옥수숫가루로 만들어진 제품이 많아 유기농 인증 농가에서는 사용이 불가능하다. 친환경 소재로 만든 인증 가능 생분해 비닐의 보급이 시급한 이유다.
      논농사의 경우, 유기농은 상대적으로 수월하다. 물 관리만 잘 되면 우렁이 농법으로 잡초를 해결할 수 있다. 

      밭 주변이나 비닐과 부직포로 덮을 수 없는 공간은 예초기가 답이다. 요즘은 충전식 전기 예초기도 많이 출시돼 환경 부담을 줄이고 작업 효율도 높였다. 

      제초제는 공기 중에 퍼지고, 토양에 스며드는 방식으로 전반적인 환경 오염을 진행한다. 작은 텃밭이라도 제초제를 줄이고, 자연적인 방식으로 풀을 다스리는 태도가 중요하다.

      기후위기 대응은 이제 전 지구적 과제다. 유엔 IPCC 보고서에 따르면, 농약·비료 등 화학 농자재는 온실가스 배출의 주범 중 하나다. 제초제 없는 밭, 유기농법은 단지 ‘착한 농사’가 아니라 지구를 덜 뜨겁게 만드는 길이다.

      정부도 최근 들어 친환경 농업 확대를 공약으로 내걸고 있으며, 일부 지자체는 유기농 전환 농가에 대한 지원금 제도를 확대하고 있다. 하지만 이는 시작일 뿐이다. 유럽처럼 제초제 사용을 단계적으로 줄이기 위한 실질적 입법과 제도적 뒷받침이 필요하다.

      유기농업은 농부 혼자서 이룰 수 없다. 소비자의 선택이 더 많은 유기농을 가능하게 한다.
      유기농 쌀은 다른 채소류에 비해 가격 차이가 크지 않다. 소비자가 꾸준히 유기농 식품을 선택한다면, 농가는 보다 안전한 방식으로 전환할 여력을 얻는다.

      농업은 땅과 생명을 다루는 일이다. 제초제 없는 밭을 가꾼다는 것은, 땀으로 자연과 공존하는 삶을 선택하는 일이다.
      그 선택이 곧, 우리 모두의 미래를 위한 약속이 되길 바란다.
    Copyrights ⓒ 마포저널 & www.mapojournal.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확대 l 축소 l 기사목록 l 프린트 l 스크랩하기
마포저널로고

마포저널의 모든 콘텐츠(기사)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으며, 무단전재,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마포저널 MapoJournal. All rights reserved.
발행·편집인 서정은 | 상호 마포저널 | 등록번호 서울아56266 ㅣ주소 서울특별시 중구 을지로12길 28, 313호
기사제보/취재문의 010-2068-9114 (문자수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