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리 1호기 해체, 기술 진출인가 환경 도박인가”
    • 국내 첫 상업 원전 해체 승인…방사능·폐기물·주민 소통은 준비됐나
    • 국내 첫 상업용 원자력발전소였던 고리 1호기가 1978년 가동 이후 47년 만에 해체 수순에 돌입한다. 원자력안전위원회는 지난 6월 26일, 고리 1호기의 해체 계획서를 최종 승인하면서 국내 원전 해체 시대가 공식 개막됐다.

      정부는 이를 “세계 원전 해체 시장 진출의 신호탄”이라며 의미를 부여했지만, 환경적·사회적 우려는 여전히 짙다. 수십 년 간의 고준위 핵폐기물 문제조차 해결되지 않은 상황에서 ‘즉시 해체’ 결정은 과연 합리적인가.

      2025 원자력 발전소 전국현황지도 환경운동연합
      2025 원자력 발전소 전국현황지도 ©환경운동연합 - 영구가동중지는 월성1호기, 고리 1호기이다.

      기술 앞세운 ‘즉시 해체’…안전은 뒷전?

      고리 1호기 해체는 총 12년, 1조700억 원의 예산이 투입된다. 사용후핵연료 보관시설 건설, 방사성 기기 해체, 부지 복원까지 단계별로 진행된다. 한수원은 이를 통해 “해외 수주 역량을 강화하겠다”고 밝혔지만, 즉시 해체는 작업자 피폭과 방사성 물질 유출 위험이 크다는 점에서 환경단체의 비판을 받고 있다.

      전문가들 또한 대다수 선진국이 채택한 ‘지연 해체’ 방식을 병행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한다. 실제로 전 세계 215기의 영구 정지 원전 중, 지금까지 실제로 해체에 들어간 사례는 단 25기에 불과하다.

      핵폐기물 8만 드럼, 갈 곳은 없다

      가장 심각한 문제는 방사성 폐기물의 처리다. 고리 1호기 해체로 발생하는 폐기물은 200리터 드럼 기준 8만 개 이상으로 추산된다. 그러나 현재 고리 부지 내 임시저장시설은 이미 90% 포화 상태이며, 정부의 중간저장시설과 영구처분장 건설은 2050년, 2060년으로 늦춰져 있다.

      이처럼 명확한 저장 계획이 없는 상황에서 해체를 강행하는 것은 ‘폐기물 먼저 만들고, 처리 대책은 나중에’라는 무책임한 접근이라는 지적이 제기된다.

      주민 소통은 여전히 형식적

      고리 1호기 해체는 지역 주민의 동의 없이도 절차가 강행될 수 있는 구조다. 해체계획 수립 시 한 차례 공청회만 진행되며, 실제 해체 단계에 들어가면 법적으로 주민 의견을 수렴할 수단조차 없다.

      2020년 열린 고리 1호기 공청회 역시 초안만 공개되고 보완 자료는 비공개로 일관, 주민 불신을 키운 전례가 있다. 부산환경운동연합 등은 이에 “지역 사회를 해체의 주체가 아니라 피해자로 만들고 있다”고 강하게 반발한다.

      기대와 과장의 경계

      정부와 한수원은 이번 해체를 통해 549조 원 규모의 전 세계 원전 해체 시장을 선점하겠다고 밝히고 있다. 하지만 이 역시 과장됐다는 평가가 많다. 대다수 국가가 수십 년 뒤 해체를 택하고 있는 현실에서 단기적 수주 가능성은 제한적이라는 것이다.

      또한 선진국 수준의 기술력을 갖추기까지 아직 갈 길이 멀다는 점에서, 기술 실증과 환경 리스크 관리가 병행되지 않으면 국제 신뢰도마저 훼손될 수 있다.

      ‘기술 독주’가 환경 책임을 덮을 수 없다

      고리 1호기 해체는 산업 기술적 도전이자, 환경 거버넌스 시험대다. 그러나 지금의 방향은 속도와 경제성 중심, 지역과 생태는 뒷순위다. "원전 하나 해체하면서, 지역 주민 하나 설득 못 한다면, 과연 국가 기술이 신뢰받을 수 있는가?"

      원전 해체는 기술의 문제가 아니라, 책임과 신뢰의 문제다. 첫 단추를 어떻게 끼우느냐에 따라 향후 10여 기 원전 해체의 기준이 된다. 우리는 지금 “탈원전 이후 시대”를 준비하는 게 아니라, ‘책임 있는 원전 종결’을 어떻게 할 것 인지를 결정해야 할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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