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비효과] AI의 진단은 언제나 정답일까 — 로젠한 실험이 던지는 오래된 질문
    • 1973년, 미국의 심리학자 데이비드 로젠한(D.L. Rosenhan)은 한 가지 대담한 실험을 설계했다.
      그는 8명의 ‘정상인’을 모집해, 미국 전역의 12개 정신병원에 각각 입원시켰다.
      참가자들이 제시한 증상은 단 하나였다 — “머릿속에서 ‘텅’ 하는 소리가 들린다.”
      입원 후에는 모든 행동을 평범하게 유지했고, “이제 괜찮다”고 반복해서 말했다.
      그러나 의사들은 그들을 끝내 ‘정상’으로 보지 않았다.
      평균 19일간의 입원 끝에, 이들은 대부분 ‘완치된 정신분열증 환자’라는 진단서와 함께 퇴원했다.

      로젠한은 이 충격적인 결과를 통해 이렇게 결론 내렸다.

      “정신병의 기준은 병이 아니라, 누가 그것을 진단하느냐에 달려 있다.”

      의료진이 ‘환자’라는 전제를 한 번 세우면, 이후의 모든 관찰과 판단은 그 틀 안에서 해석된다.
      즉, 진단의 오류는 관찰의 한계가 아니라, 질문의 전제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반세기가 지난 지금, 로젠한의 실험은 AI 시대의 진단과 판단을 비추는 거울이 되었다.
      AI는 의료, 채용, 금융, 사법, 언론 등 거의 모든 영역에서 ‘판단의 주체’로 등장했다.
      특히 의료 AI는 방대한 데이터를 바탕으로 질병을 예측하고, 영상 이미지를 통해 암이나 치매를 진단한다.
      하지만 로젠한의 실험은 우리에게 다시 묻는다.

      “그 진단의 전제는 누가 세웠는가?”
      기사의 이해를 돕기 위한 AI이미지  GEMINI 활용
      기사의 이해를 돕기 위한 AI이미지 / GEMINI 활용
      AI는 데이터를 기반으로 답을 내놓지만, 그 데이터와 질문을 설계하는 것은 결국 인간이다.
      AI가 스스로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던진 질문의 방향에 따라 사고의 궤적을 그릴 뿐이다.
      따라서 “이 사람은 범죄를 저지를 가능성이 있는가?”라는 질문과 “이 사람은 사회적 지원이 필요한가?”라는 질문은 같은 데이터를 쓰더라도 전혀 다른 결과를 만들어낸다.

      결국 AI의 판단은 진실의 탐색이 아니라 질문의 반영이다.
      로젠한이 드러낸 건 잘못된 진단이 아니라, 잘못된 질문이 만든 현실의 왜곡이었다.
      그리고 지금 우리는, AI라는 새로운 도구를 통해 그 왜곡을 훨씬 더 정교하고 빠르게 재생산하고 있다.

      AI 시대에 필요한 것은 정확한 답을 내는 기술이 아니라, 올바른 질문을 던질 윤리적 감수성이다.
      로젠한은 정신의학을 부정한 것이 아니라, “정상과 비정상을 구분하는 사회의 기준 자체를 성찰하라”고 말한 사람이었다.
      AI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AI를 신뢰하기에 앞서, 그 신뢰가 어디서 출발했는지를 먼저 물어야 한다.

      “AI의 오류는 답에서 생기지 않는다.
      우리가 던진 질문에서 이미 시작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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