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월 17일, 경의선숲길정원사협동조합이 주최한 ‘정원 산책 프로그램’이 열렸다.
이날 행사에는 김장훈 전문정원사가 함께했으며, 마포구 마을정원사 교육과정에 참여 중인 수강생 20여 명이 상암동 하늘공원의 정원을 둘러보며 작가정원과 하늘정원의 식생에 대한 설명을 들었다.
하늘공원은 2023년 서울정원박람회(주제: ‘바람, 풀 그리고 정원’)가 개최된 장소로, 매년 10월이면 억새축제가 열리는 곳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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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장훈 전문 정원사의 해설을 듣고 있다 |
한 때 악취와 환경오염의 상징이었던 쓰레기 매립지가 도심 속 녹색 공간으로 거듭나고 있다.
서울 상암동의 난지도(현 월드컵공원) 와 대구 대곡매립지(현 대구수목원) 는 한국 환경 재생의 대표적 성공 사례로 꼽힌다. 하지만 두 곳의 복원 방식과 식생 전략은 뚜렷이 달랐으며, 그 차이는 오늘날의 ‘지속 가능성’으로 이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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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리 보이는 소각장 굴뚝으로 이 곳이 쓰레기 매립지였다는 것을 알려준다 |
복토 두께가 가른 두 매립지의 운명: 2m와 7m의 차이
쓰레기 매립지 복원의 핵심 변수는 ‘복토층 두께’다. 복토층은 내부 쓰레기에서 발생하는 메탄·이산화탄소 등 유해가스의 상승을 차단하고, 식물이 뿌리를 내릴 수 있는 생육 기반을 제공한다.
난지도에는 15년간 약 1억 톤의 쓰레기가 쌓였고, 최종 복토 두께는 평균 2m 내외에 불과했다. 이 얇은 복토층은 지반 침하와 가스 누출에 취약해, 깊은 뿌리를 가진 교목 대신 얕은 뿌리의 초본류(억새, 잔디)와 관목 위주의 생태 공원을 조성할 수밖에 없었다. 현재 하늘공원을 가득 메운 광활한 억새밭은 바로 이 ‘제한된 복원 조건’의 산물이다.
반면 대구 대곡매립지는 도시철도 공사 과정에서 발생한 흙을 활용해 평균 7~8m의 복토층을 확보했다. 이 덕분에 대곡매립지는 국내 최초로 1,750종 이상의 식물을 보유한 대구수목원으로 재탄생할 수 있었다. 두꺼운 복토층은 가스 차단 효과가 높고, 교목의 뿌리 발달에 적합한 안정적인 지반을 제공했기 때문이다.
난지도 정원 훼손 문제: 예술보다 ‘환경 이해’가 먼저였다
난지도는 월드컵공원 조성 이후, 2023년 서울정원박람회(주제 : 바람, 풀 그리고 정원)가 열렸고 매년 10월이면 억새축제를 열고 있다. ‘도심 속 예술 정원’의 상징으로 주목받았다. 그러나 수년이 지나면서 이들 정원의 상당수가 식물 고사와 훼손으로 방치되고 있다.
그 원인은 복원 환경의 구조적 한계에서 비롯된다.
•얇은 복토층과 차수막: 식물의 뿌리가 깊이 내리지 못하고 수분과 양분이 고갈된다.
•불안정한 지반: 미세한 침하와 가스 누출이 식물 생장을 지속적으로 저해한다.
•이벤트성 관리 부재: 정원 전시 이후 전문적 관리 체계가 이어지지 않아 생태적 지속성이 약화됐다.
결국 난지도는 ‘억새밭 중심의 초지 생태계’ 복원에는 성공했지만, ‘정원형 식재공간’의 장기적 유지에는 실패한 셈이다. 작가정원들이 본인의 예술적 욕심보다 매립지의 환경 조건을 깊이 이해하지 못한 채 조성된 한계가 그대로 드러난다.
땅이 감당할 수 있는 복원의 방식
난지도와 대곡의 복원 차이는 단순히 기술적 수준의 문제가 아니다.
두 곳은 ‘복원 목표’를 어디에 두었는가에서 갈린다. 쓰레기 매립지 복원은 단순히 흙을 덮는 일이 아니라, ‘땅이 감당할 수 있는 복원의 방식’을 설계하는 일이다.
상암 하늘공원의 정원 훼손은 ‘복원 한계’를 보여주는 동시에, 환경 조건에 맞는 식생과 관리 전략이야말로 진정한 재생의 출발점임을 일깨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