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남도가 내년 1월부터 전국 최초로 시행하는 ‘경남도민연금'이 복지정책의 새로운 실험대에 올랐다.
국가가 아닌 지방정부가 직접 연금을 설계하고 지원하는 제도는 이번이 처음이다.
지방이 복지의 주체로 나서는 ‘한국형 지역복지’의 전환점이 될지 관심이 쏠린다.
‘지자체가 주는 연금’?…월 8만 원으로 만드는 노후 쿠션
경남도민연금은 40~54세 경남 거주자 중 연소득 9352만 원 이하 도민을 대상으로 한다.
가입자가 매달 8만 원씩 10년간 납입하면, 경남도가 월 2만 원씩 10년간 추가 지원한다.
복리 2%를 적용하면 10년 뒤 약 1300만 원이 적립되며, 만 60세 이후부터 5년간 나눠 받을 수 있다.
도 관계자는 “적은 금액이라도 지자체가 함께 부담해 도민이 노후를 미리 대비할 수 있도록 하려는 것”이라며 “단순 현금복지가 아닌, 스스로 준비를 돕는 예방적 복지”라고 설명했다.
도민이 직접 설계 참여…“내 노후, 내가 결정한다”
경남도는 지난 2월 도민을 대상으로 가입 의향·지원금 수준·대상 범위 등을 묻는 설문조사를 진행했다.
응답자 다수는 “지속 가능한 복지제도로 발전하길 기대한다”는 입장을 보였다.
이어 경남연구원·보건복지부·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공동 개최한 전문가 토론회에서는
‘제도 설계의 타당성’, ‘재정 지속성’, ‘형평성 확보 방안’ 등이 집중 논의됐다.
‘지방이 복지를 주도한다’…새로운 복지 패러다임
전문가들은 경남형 모델을 “지방분권 복지의 실험장”으로 본다.
국민연금이나 기초연금처럼 중앙정부가 주도하는 복지 대신, 지역 특성과 재정 여건에 맞춘 맞춤형 모델을 시도했다는 점에서다.
특히 경남은 2025년 기준 65세 이상 고령인구 비중이 25%에 육박할 전망이다.
급속한 고령화에 대응하기 위한 현실적 대안으로, ‘도민이 직접 만드는 연금’이라는 참여형 구조를 택했다는 점도 차별화된다.
남은 과제는 ‘재정 지속성’과 ‘복지 형평성’
하지만 제도 설계의 혁신성만큼이나 재정·형평성 문제도 만만치 않다.
가입자가 늘면 도의 예산 부담이 커질 수밖에 없고, 경남에 주소를 둔 사람만 지원 대상이 되기 때문에 지역 간 복지 격차도 우려된다. 전문가들은 경남형 복지가 성공하면 전국으로 확산될 가능성이 높지만,
각 지자체의 재정 여건에 따라 복지 불균형이 심화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전국 확산 가능성…“복지의 지방화냐, 분권이냐”
경남도는 올해 안에 조례 제정과 시스템 구축을 완료하고 2026년 1월부터 본격 시행할 계획이다.
보건복지부는 사회보장제도 신설 협의 결과를 토대로 다른 광역자치단체의 도입 여부를 검토한다는 방침이다.
복지 전문가들은 이번 제도가 성공할 경우, 국민연금–지방연금–개인연금으로 이어지는 ‘3층 복지체계’의 시발점이 될 것으로 본다.
반면 실패할 경우 “지방재정 부담만 키우는 복지 포퓰리즘”이라는 역풍을 맞을 수도 있다.
“경남 실험은 복지의 방향을 묻는다”
‘경남도민연금’은 단순히 한 지방의 복지제도가 아니다.
국가복지의 사각지대를 지방정부가 메우는 첫 실험이자, “복지는 중앙의 전유물이 아니다”라는 선언에 가깝다.
이 실험이 성공하면 지역이 복지혁신의 주체로 자리 잡는 ‘분권 복지 시대’가 열릴 것이다.
그러나 실패한다면, 지역 간 복지격차를 키우는 ‘복지의 지방화’ 논란으로 되돌아올 수 있다.
결국 경남의 시도는 한 지방정부의 실험을 넘어 한국 복지의 방향을 결정짓는 분수령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