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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재난 시대, 서울의 방재 전략 바뀐다

2026-11-07 14:25 | 입력 : 마포저널

회색 인프라와 녹색 인프라의 결합, AI 기반 예측·선제 대응으로 도시 물순환 전환 과제

기후변화로 집중호우와 극한강우의 위험이 커지면서 서울시의 풍수해 대응 전략도 변화를 맞고 있다. 대규모 배수시설을 확충하는 전통적인 방재 방식에서 벗어나 도시의 녹지와 자연 생태계를 활용하고, 첨단기술을 결합한 선제적 재난관리 체계로 전환하려는 움직임이다.

지난 11월 4일 오후 서울역사박물관 야주개홀에서 '2026 서울시 풍수해 정책 포럼'이 열렸다. 서울특별시가 주최·주관하고 서울특별시의회, 서울연구원, 한국수자원학회가 협력기관으로 참여한 이번 포럼에서는 기후재난에 대비한 서울시의 풍수해 정책과 미래 방재 방향이 논의됐다.

시간당 141㎜ 극한강우, 기존 방재체계의 한계

기조강연에 나선 권수열 한강유역물관리위원회 위원장은 '기후 재난 대비한 우리나라 풍수해 대응 담론'을 주제로 물 환경 관리에서 물 재난 관리로의 정책 전환 필요성을 제기했다.

기후변화에 따른 극한 강우는 기존 도시 배수 체계의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 2022년 8월 서울에 내린 기록적인 폭우가 대표적이다. 당시 동작구에서는 시간당 약 141.5㎜의 강우가 관측됐다. 서울시가 제시한 기존 방재성능목표인 시간당 95㎜를 크게 웃도는 수준이었다.

서울시는 이후 방재성능목표를 일반 지역 시간당 100㎜, 강남역 일대 시간당 110㎜로 상향하고 대규모 방재 인프라 구축에 나섰다.

기조강연에서는 대심도 빗물배수터널의 운영 사례도 소개됐다. 2020년 완공된 신월 대심도 빗물저류시설은 빗물을 저장한 뒤 안양천으로 방류하는 시설이다. 잠실 수영장 약 85개 규모의 저류 용량을 갖추고 시간당 100㎜의 강우를 처리할 수 있으며, 2026년에는 세 차례 가동됐다.

이 시설은 대규모 지하 저류시설이 실제 도시 침수 대응에 활용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다.

강남역·도림천·광화문에 대심도 터널 건설

서울시는 신월 대심도 시설에 이어 강남역, 도림천, 광화문, 이수~과천 등 침수 취약지역에 대심도 빗물배수터널을 건설하고 있다.

대심도 터널은 지상 공간을 크게 점유하지 않으면서 대량의 빗물을 저장하고 배출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그러나 막대한 예산과 장기간의 공사가 필요하고, 터널 하나로 도시의 모든 침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유입시설과 배수시설, 하천 수위, 기존 하수관로가 유기적으로 연결돼야 실질적인 방재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회색 인프라에서 녹색 인프라까지… 도시 생태계의 방재 기능 주목

이번 포럼에서 주목할 부분은 서주옥 성균관대학교 겸임교수의 '회색·녹색 인프라 융합' 발표다.

회색 인프라는 대심도 빗물배수터널, 하수관로, 빗물펌프장 등 공학적 시설을 중심으로 한 전통적인 방재 인프라를 의미한다. 집중호우가 발생했을 때 빗물을 신속하게 모으고 저장하거나 외부로 배출하는 데 초점을 둔다.

반면 녹색 인프라는 도시의 녹지와 자연 생태계가 가진 물순환 기능을 활용하는 방식이다. 빗물이 토양으로 스며들고 식생과 자연공간을 통해 유출 속도가 늦춰지도록 해 도시의 침수 위험을 줄이는 동시에 생태환경과 열환경도 개선하는 접근이다.

서 교수의 발표에서는 녹지생태도심, 그늘보행권, 빗물배수터널 등 자연재해에 대응하기 위한 다양한 정책 수단이 함께 제시됐다. 서울형 방재공원 조성 가능성도 논의됐다.

이는 도시 방재의 관점을 지하 배수시설에서 지상 생태공간까지 확장한다는 의미가 있다.

집중호우 때 발생하는 빗물을 모두 하수관로와 배수터널로 처리하려는 방식에는 한계가 있다. 도시 곳곳에 빗물이 스며들 수 있는 공간을 확보하고, 공원과 녹지를 빗물의 일시적인 저장·침투 공간으로 활용한다면 지표면으로 한꺼번에 흘러드는 빗물의 양을 줄이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

대심도 터널이 집중호우 때 발생하는 대량의 빗물을 처리하는 회색 인프라라면, 녹색 인프라는 빗물이 도시 곳곳에서 자연스럽게 흡수되고 분산되도록 돕는 기반이다.

두 방식은 어느 하나를 선택하는 문제가 아니라 상호 보완적으로 작동해야 한다. 지하의 방재시설 확충과 지상의 녹지·생태공간 확보가 함께 이뤄질 때 도시 전체의 물순환과 방재 능력을 높일 수 있다.

AI 기반 수방체계와 시나리오별 선제 대응

서울시의 풍수해 안전대책과 미래형 재난 대응도 주요 발표 주제로 다뤄졌다.

정회원 서울시 치수안전과장은 '2026년 서울시 풍수해 안전대책 결과보고'에서 동행 파트너 운영, 인공지능(AI) 적용, 수방시스템 24시간 모니터링 강화 등을 소개했다.

동행 파트너는 현장 중심의 재난 대응을 강화하기 위한 정책으로, 공무원과 민간이 협력하며 향후 수당을 지급할 예정이다. 서울형 치수방재공원 도입도 구체화하고 있으며, 2027년부터는 하천 통제정보를 네이버지도와 카카오맵 등 지도 서비스와 연계하는 방안도 추진한다.

김민석 서울연구원 박사는 '미래형 재난, 시나리오 기반의 선제적 대응'을 발표했다.

시나리오 기반 대응은 재난이 발생한 뒤 대응하는 방식에서 벗어나 다양한 기후재난 상황을 사전에 가정하고 상황별 대응체계를 준비하는 접근이다. 예측하기 어려운 강우 상황과 피해 가능성을 고려해 여러 대응 시나리오를 마련하고, 실제 재난 상황에서 신속하게 작동하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

방재공원, 조성보다 실질적인 방재 기능이 중요

포럼 후반부에는 '도시의 자연 생태계를 활용한 방재 역할과 미래 활용'을 주제로 종합토론이 진행됐다.

이주헌 중부대학교 교수가 좌장을 맡았으며, 권현한 서울시립대학교 교수, 김대성 ㈜한국종합기술 전무, 김성은 서울연구원 연구위원, 천병호 기후에너지환경부 물재해대응과 사무관, 정성국 서울시 물순환안전국장이 패널로 참여했다.

이번 포럼은 서울시의 풍수해 대응이 대규모 방재시설 확충에서 기술과 자연 생태계를 결합하는 방향으로 확장되고 있음을 보여줬다.

그러나 정책의 실효성을 확보하려면 몇 가지 과제가 남는다.

첫째, 대심도 터널 사업의 지속적인 공사 관리와 예산 집행의 투명성이다. 총 1조 3천억 원이 넘는 사업인 만큼 공사 기간과 사업비 변동, 실제 침수 예방 효과를 지속적으로 점검해야 한다.

둘째, 녹색 인프라의 실질적인 방재 기능을 확보해야 한다. 공원과 녹지를 늘리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빗물 침투량과 저류 능력, 유출 저감 효과 등을 고려해 방재 기능을 갖춘 공간으로 설계해야 한다.

셋째, 회색·녹색 인프라를 연결하는 통합적인 도시 물순환 계획이 필요하다. 대심도 터널과 하수관로, 공원과 녹지가 개별 사업으로 추진되는 데 그치지 않고 지역별 침수 위험과 지형, 배수체계를 고려해 유기적으로 연계돼야 한다.

기후재난 시대의 도시 방재는 하나의 대형 시설이나 첨단기술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지하에서는 대심도 터널이 빗물을 처리하고, 지상에서는 녹지와 생태공간이 빗물을 흡수·분산하며, AI와 재난정보 시스템이 위험을 조기에 감지하는 통합적인 대응체계가 필요하다.

서울시가 추진하는 회색·녹색 인프라의 융합이 선언적인 정책을 넘어 시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키는 실질적인 도시 방재체계로 자리 잡을 수 있을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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