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AI)이 정수장으로 들어오고 있다. 원수 수질을 분석하고 약품 투입량을 예측하며, 공정의 변화와 설비 이상을 미리 알려주는 기술이다.
그런데 AI 산업의 확산은 정수장에 새로운 과제도 던지고 있다. AI를 운영하는 데이터센터가 막대한 전력을 소비하는 만큼 냉각을 위한 물도 필요하기 때문이다.
결국 AI와 물의 관계는 두 방향으로 진행되고 있다.
AI는 물을 더 안전하게 관리하는 기술이 될 수 있지만, AI 산업 자체는 새로운 물 수요를 만들어낼 수 있다.
지난 10월 1일 열린 2026년 서울특별시 수돗물평가위원회 심포지엄에서 박상훈 국립부경대학교 환경공학과 교수는 ‘정수처리분야 AI 기술 동향 및 국내외 도입추진 현황과 AI 확충에 따른 대응연구’를 발표하며 이 문제를 함께 짚었다. 서울시는 이번 심포지엄을 통해 AI 기술 발전과 기후·환경 변화에 대응한 아리수의 미래 방향을 논의했다.
AI가 물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더 안전하게 만들도록 미리 알려주는 것
박 교수의 발표에서 가장 중요한 메시지는 AI의 역할에 대한 관점이다.
AI가 물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더 안전하게 물을 만들도록 미리 알려주는 것이라는 설명이다.
정수장 운영자는 매일 수많은 판단을 해야 한다.
원수의 상태가 달라지면 약품을 얼마나 투입해야 하는지, 공정을 언제 조정해야 하는지, 여과지를 언제 세척해야 하는지를 판단한다.
박 교수는 AI가 도울 수 있는 지점이 바로 이 ‘얼마나, 언제’를 판단하는 과정이라고 봤다.
AI는 과거와 현재의 수질·유량·운전 데이터를 분석해 앞으로 나타날 변화를 예측하고, 운영자가 필요한 조치를 미리 판단할 수 있도록 정보를 제공한다.
기존의 운영이 변화가 발생한 뒤 대응하는 방식이었다면, AI는 변화를 미리 예측해 사전에 대응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따라서 AI의 역할은 측정 → 분석 → 예측 → 사전 알림 → 운영자 판단으로 이어진다.
AI가 최종 결정권자가 되는 것이 아니라 운영자의 판단을 더 빠르고 정확하게 만드는 의사결정 지원 도구가 되는 셈이다.
2025년 확인된 전세계 수도사업자 주도 AI 사업 107건
정수처리 분야의 AI 도입은 이미 연구실 수준을 넘어 실제 수도사업자의 사업으로 확대되고 있다.
박 교수의 발표에 따르면 2025년 확인된 수도사업자 주도 AI 사업은 전 세계적으로 107건에 이른다.
국내에서도 한국수자원공사(K-water) 등을 중심으로 AI를 활용한 정수장 운영 최적화가 추진되고 있다. 원수 수질을 예측하고 약품 투입량을 최적화하거나 정수장 설비의 이상을 감지하는 방식이다.
서울시 역시 정수처리 분야의 AI 활용을 주요 미래 과제로 보고 있다.
그러나 박 교수의 관점에서 중요한 것은 AI를 얼마나 많이 도입하느냐가 아니다.
공공 상수도에서는 완전자동화보다 운영자의 의사결정을 지원하는 방향으로 AI를 활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왜 정수장은 ‘완전자동화’보다 사람의 판단이 중요한가
정수장은 일반적인 제조시설과 다르다.
생산비용을 줄이고 생산량을 늘리는 것만이 목표가 아니다. 시민이 매일 마시는 물의 안전을 확보해야 한다.
AI가 아무리 많은 데이터를 분석하더라도 센서 오류나 데이터 결측, 학습하지 못한 비정상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
특히 급격한 원수 수질 변화나 예상하지 못한 오염사고처럼 기존 데이터만으로 판단하기 어려운 상황에서는 운영자의 경험과 현장 판단이 중요하다.
따라서 공공 상수도에서 AI를 도입할 때는 ‘사람 없는 정수장’이 아니라 ‘AI의 도움을 받아 사람이 더 잘 판단하는 정수장’을 목표로 해야 한다.
AI가 제시한 예측을 운영자가 확인하고, 필요한 경우 AI의 판단과 다른 결정을 내릴 수 있는 구조가 필요하다.
AI의 기술 수준이 높아질수록 오히려 AI를 감시하고 검증하는 사람의 역할과 책임체계가 중요해지는 이유다.
그런데 AI 산업이 커질수록 물도 더 필요하다
박 교수의 발표가 주목되는 또 다른 이유는 AI 기술을 정수처리 분야에 도입하는 것에서 끝나지 않고 AI 산업 확산에 따른 수자원 영향까지 함께 짚었다는 점이다.
AI 서비스를 제공하는 데이터센터는 대규모 컴퓨팅 장비에서 발생하는 열을 식히기 위해 냉각설비를 사용한다.
이 과정에서 냉각 방식에 따라 물 사용이 발생한다.
문제는 데이터센터의 물 사용량을 단순히 ‘1년 동안 몇 톤을 사용하는가’는 연간 총량만으로 판단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박 교수는 데이터센터 냉각수 관리에서 연간 총량보다 ‘고온기 피크 취수량’과 입지별 시설 여유용량이 상수도에 더 직접적인 제약을 가져올 수 있다는 취지의 문제를 제기했다.
이것은 상수도 인프라의 특성을 생각하면 중요한 지점이다.
상수도에서 중요한 것은 ‘평균’보다 ‘피크’다
상수도 시설은 연간 평균 수요만 보고 설계할 수 없다.
폭염이 이어지는 여름철에는 냉방 수요가 증가하고 일반 시민의 물 사용량도 달라질 수 있다. 이때 데이터센터까지 냉각을 위해 많은 물을 필요로 한다면 특정 지역의 취수·정수·송수시설에 부담이 집중될 수 있다.
따라서 데이터센터가 1년 동안 사용하는 물의 총량이 상수도 전체 규모에서 크지 않더라도 특정 시기에 집중되는 취수량이 문제가 될 수 있다.
더 중요한 것은 데이터센터가 들어서는 지역의 상수도 시설이 그 추가 수요를 감당할 여력이 있는지다.
이는 AI 데이터센터를 단순히 산업시설 하나의 문제로 볼 것이 아니라 지역 상수도 인프라의 수용능력과 함께 검토해야 한다는 의미다.
AI 시대의 물 문제, ‘얼마나’보다 ‘언제·어디서’가 중요해진다
흥미로운 것은 정수장 안에서 AI가 해결하려는 문제와 AI 산업이 상수도에 던지는 문제가 서로 닮아 있다는 점이다.
정수장 운영에서 AI가 해결하려는 것은 사람이 매일 고민하는 “얼마나, 언제”다.
AI 산업의 물 수요에서도 중요한 질문은 단순한 연간 총량을 넘어 “얼마나, 언제, 어디에서 필요한가”가 된다.
결국 물 관리에서도 평균값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정수장에서는 원수 수질의 변화를 미리 예측해야 하고, 데이터센터에서는 고온기에 집중되는 물 수요를 예측해야 한다.
그리고 두 경우 모두 필요한 것은 사전 예측과 적정한 대응능력이다.
AI 시대의 상수도, 기술과 인프라를 함께 봐야 한다
AI를 활용한 정수처리는 분명 상수도 운영의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준다.
수질 변화를 미리 예측하고 약품 투입량을 조정하며 설비 이상을 사전에 파악하면 보다 안정적이고 효율적인 정수장 운영이 가능해질 수 있다.
하지만 동시에 AI 산업의 성장으로 데이터센터가 늘어나면 물 수요 역시 새로운 형태로 나타날 수 있다.
따라서 앞으로의 상수도 정책은 두 가지 문제를 함께 다뤄야 한다.
AI를 이용해 물을 더 안전하게 관리하는 것과 AI 산업이 필요로 하는 물을 지역 상수도가 감당할 수 있는지 미리 따져보는 것이다.
박 교수의 발표는 이 두 문제를 하나의 질문으로 연결한다.
AI 시대의 물 관리는 단순히 물을 얼마나 확보할 것인가의 문제가 아니다.
어떤 시기에 얼마나 많은 물이 필요한지 예측하고, 그 수요를 감당할 수 있는 시설 여유용량을 확보하며, 최종적인 판단은 사람이 책임지는가의 문제가 중요해지고 있다.
AI 시대의 상수도에서 필요한 것은 어쩌면 더 많은 자동화가 아니라 더 정확한 예측과 더 촘촘한 관리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