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형 음수대 출범 계기로 ‘생수 냉장고’·오아시스 서울까지 다시 봐야
폭염이 찾아오면 지방자치단체들이 가장 손쉽게 꺼내 드는 대책 가운데 하나가 차가운 생수다.
공원이나 산책로에 생수 냉장고를 설치하고 시민들에게 무료로 페트병 생수를 나눠준다. 폭염 속에서 시민에게 물을 제공한다는 점에서는 즉각적인 효과가 있다.
“왜 폭염이 올 때마다 페트병 생수를 공급해야 하는가.”
지난 10월 1일 열린 서울아리수본부 수돗물평가위원회 심포지엄에서 여성환경연대 기후정의팀 강우정 활동가가 발표한 ‘플라스틱 없이 물 마시는 도시를 위해 저스트워터 공공 음수대 확충 캠페인’은 바로 이 질문에서 출발한다.
최근 서울시가 ‘서울형 음수대’를 공개한 시점이어서 더욱 주목된다.
저스트워터, “생수 대신 물을 달라”
여성환경연대가 제안하는 저스트워터(Just Water)는 두 가지 의미가 있다.
하나는 “일회용 플라스틱 없이 물만 달라”는 의미이고, 다른 하나는 영어의 ‘Just’를 ‘공정한’이라는 의미로 확장해 물을 상품으로 소비하는 생수 산업의 문제점에 대한 대안을 찾자는 것이다.
즉 생수를 사지 말자는 개인의 실천에만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시민이 생수를 사지 않아도 물을 마실 수 있도록 도시가 공공의 물 인프라를 제공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여성환경연대는 이를 환경적·건강적·윤리적 측면에서 설명했다.
첫째, 환경적 문제다.
페트병 생수는 마신 뒤 플라스틱 폐기물을 남긴다. 여성환경연대는 여기에 지하수 고갈 문제까지 연결한다.
생수산업이 지하수 등 수자원을 취수해 상품으로 공급하는 구조에서는 물 자체가 상품이 되는 동시에 취수 지역의 수자원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생수 소비를 줄이는 것은 단순히 페트병 하나를 덜 버리는 문제만이 아니라 물의 생산·취수·유통 과정 전체를 바라보는 문제가 된다.
둘째는 건강 문제다.
플라스틱 생수와 관련해 미세플라스틱, 자외선 및 고온 조건에서의 발암물질 검출, 수질 부적합 사례 등을 문제로 제시했다.
다만 여기서 중요한 것은 ‘페트병 생수는 위험하다’고 단순화하는 것이 아니다.
생수의 안전성은 제품과 관리 기준, 보관 조건 등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따라서 발표에서 제시된 문제들은 생수 자체의 안전성을 일률적으로 부정하는 근거라기보다, 일회용 플라스틱 병에 담긴 물을 대량으로 소비하는 구조를 점검해야 한다는 문제 제기로 보는 것이 정확하다.
셋째는 윤리적 문제다.
또 하나의 문제는 지하수 고갈로 인한 취수원 지역 주민의 피해다.
도시에서 생수를 소비하는 사람과 물을 취수하는 지역 주민 사이에 이해관계가 다를 수 있다는 것이다.
결국 물을 단순한 상품으로 볼 것인지, 모든 사람이 접근할 수 있어야 하는 공공재로 볼 것인지의 문제로 이어진다.
시민들은 물이 없어서 생수를 사는가
여성환경연대가 제시한 시민조사 결과는 이 문제를 도시공간의 관점에서 보여준다.
시민들이 플라스틱 생수를 구입하는 장소는 공원 등 나들이 장소가 26.0%로 가장 많았고, 야외 길거리 24.1%, 기차역·터미널 19.4%, 공연장 12.3%, 영화관 9.1%, 스포츠경기장 5.2% 순이었다.
공통점은 하나다.
집 밖에서 물이 필요한 장소다.
그렇다면 생수 소비를 줄이기 위해 필요한 것은 시민에게 “생수를 사지 말라”고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생수를 사지 않아도 되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다.
공원에 음수대가 있고, 길거리에서 쉽게 찾을 수 있고, 역과 터미널에서 텀블러를 채울 수 있다면 생수병을 구입할 이유 하나가 사라진다.
음수대는 있는데 왜 못 찾을까
여성환경연대가 2024년 실시한 ‘물찾았단’ 시민 모니터링은 공공 음수대 정책의 현실을 보여준다.
35명의 시민이 6월 한 달 동안 서울 5개 자치구의 공공 음수대를 모니터링했다. 여성환경연대에 따르면 모니터링 대상은 약 300곳으로, 서울시 공원에 설치된 1,700여 개 음수대의 약 20%에 해당했다.
조사 결과 음수대의 92.6%는 운영되고 있었다.
하지만 음수대 외부가 ‘청결하다’고 평가된 곳은 53.8%에 그쳤다. 주기적인 수질관리가 이뤄지는 곳은 82.8%였지만, 주변에 음수대 위치를 안내하는 시설이 있는 곳은 13.8%에 불과했다.
이 숫자가 보여주는 것은 분명하다.
음수대를 설치하는 것과 시민이 실제로 이용하는 것은 별개의 문제다.
음수대가 어디 있는지 모르고, 주변이 깨끗하지 않고, 관리 여부를 알 수 없다면 시민 입장에서는 편의점에서 생수 한 병을 사는 것이 훨씬 쉽다.
그래서 저스트워터 캠페인은 단순히 “음수대를 많이 설치하자”는 것이 아니다.
“찾을 수 있고, 믿을 수 있고, 지속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공공 음수대를 만들자”는 요구에 가깝다.
매년 여름 생수 냉장고를 설치하는 것이 답일까
이런 관점에서 각 지자체가 운영하는 여름철 생수 냉장고 사업도 다시 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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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포 도화어린이공원에 설치되었던 생수 자판기. 실제로 2026년에도 서울을 비롯한 여러 지자체가 생수 냉장고를 운영했다. 인천시는 ‘하늘수 드림 냉장고’를 100곳으로 확대했고, 하남시는 공원 등에 생수 냉장고를 설치해 하루 1만1천 병의 페트병 생수를 공급했다. 서울 중구도 2025년 공공장소 5곳에서 하루 3천 병의 생수를 제공하는 ‘양심 생수냉장고’를 운영했다. 여러 병을 가져가는 행위를 막기 위해 15초에 한 병씩 나오는 자판기 방식까지 도입했다. |
폭염 때 시원한 물을 제공하는 것은 필요한 응급대책이다. 특히 야외노동자나 고령자 등 폭염에 취약한 시민에게 물을 즉시 제공하는 것은 온열질환 예방 차원에서 의미가 있다.
문제는 이것이 매년 반복되는 상시적인 물 공급 방식이 될 때다.
생수 냉장고에는 매일 새로운 페트병 생수가 채워지고, 시민이 마신 뒤에는 플라스틱 병이 폐기물로 남는다. 지자체 입장에서는 생수 구입비뿐 아니라 운반·보충·냉장·수거와 같은 관리 비용도 발생한다.
그렇다면 물을 제공하는 방식 자체를 바꿀 수는 없을까.
냉장고에 생수병을 채우는 대신 음수대를 설치하고, 시민이 텀블러나 물병을 채우도록 하는 방식이다.
폭염이라는 비상상황에서는 생수 공급이 필요할 수 있지만, 평상시 도시의 물 접근성을 높이는 정책까지 생수병에 의존할 이유는 없다.
‘오아시스 서울’이 던진 또 하나의 가능성
서울시도 이미 다른 방식의 실험을 했다.
2022년 시작한 ‘오아시스 서울’은 개인 텀블러를 가져온 시민에게 카페·음식점 등이 무료로 식수를 제공하는 프로젝트였다. 서울시는 폭염에 따른 온열질환 예방과 일회용 플라스틱 감축을 사업 취지로 제시했다. 출범 당시 1,017개 매장이 참여했다.
당시 서울시는 시민들이 스마트서울맵에서 참여 매장을 찾아 물을 받을 수 있도록 했다.
오아시스 서울의 의미는 생수를 나눠주는 대신 시민의 텀블러에 수돗물을 채워준다는 것이었다.
저스트워터가 지향하는 방향과 맞닿아 있다.
다만 오아시스 서울은 공공 음수대와는 다른 한계도 있었다. 물을 받으려면 참여 매장을 찾아가야 하고, 매장별 시설과 운영 방식에도 차이가 있었다. 당시 현장 체험에서도 물을 받는 시설의 높이나 이용 방식에 불편이 있다는 사례가 소개됐다.
무엇보다 정책은 시작보다 지속성이 중요하다.
2022년 시작된 사업이 이후 어떤 규모로 지속됐는지, 실제 이용량은 얼마나 됐는지, 일회용 생수 소비를 얼마나 줄였는지 등을 지속적으로 공개하고 평가해야 한다.
좋은 취지의 사업이라도 시민의 생활 인프라로 자리 잡지 못하고 단기간 캠페인으로 끝난다면 정책 효과에는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해외에서는 음수대를 기후위기 대응 인프라로
발표에서는 해외 사례도 소개됐다.
특히 영국 런던은 런던시와 Thames Water가 협력해 접근성과 이용 빈도가 높은 지역에 100개가 넘는 공공 음수대를 설치했다. 런던시 공식 자료에 따르면 이 사업은 일회용 플라스틱 물병 사용을 줄이고 시민들이 무료로 수돗물을 이용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정책이다. 이후 사업은 110개 음수대 설치로 완료됐다.
런던의 특징은 음수대를 단순한 환경정책의 하나로만 보지 않는다는 데 있다.
폭염 대응에서도 공공 음수대와 무료 리필 지점을 활용한다. 런던시는 폭염 때 시민들이 이용할 수 있는 ‘Cool Spaces’를 운영하면서 무료 식수 접근을 주요 편의시설 가운데 하나로 포함하고 있다. 현재 런던에는 4,000곳 이상의 무료 물 리필 지점과 100개가 넘는 공공 음수대가 있다고 런던시가 안내하고 있다.
이는 서울에도 중요한 시사점을 준다.
음수대는 쓰레기를 줄이는 시설인 동시에 폭염과 기후위기에 대응하는 생활 인프라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서울형 음수대, ‘설치 숫자’보다 중요한 것
이런 문제의식 속에서 최근 서울시가 공개한 ‘서울형 음수대’는 새로운 전환점이 될 수 있다.
서울시는 2026년 9월 실외형 3종과 실내형 4종 등 7종의 서울형 음수대를 선보였다. 텀블러 리필을 고려하고 어린이와 장애인 등 다양한 이용자의 접근성을 높이는 유니버설디자인을 적용했다. 현재 시청 본관에 1호가 시범 설치됐다.
이제 중요한 것은 디자인이나 설치 개수만이 아니다. 관리와 유지보수, 위치알림, 홍보문제 등이 고려되어야 한다.
여성환경연대의 2024년 모니터링에서 위치 안내율이 13.8%였다는 결과는 특히 주목할 만하다. 음수대가 도시 곳곳에 있어도 시민이 찾지 못한다면 공공 인프라의 기능은 제한될 수밖에 없다.
폭염 때 생수 한 병보다 평소의 음수대 하나
기후위기가 심화하면서 폭염 대응은 이제 매년 반복되는 도시정책이 됐다.
그렇다면 물을 제공하는 방식도 바뀌어야 한다.
폭염이 닥쳤을 때 생수를 나눠주는 것은 응급대책이다.
반면 시민들이 평소에도 도시 곳곳에서 수돗물을 마실 수 있도록 음수대를 설치하고 관리하는 것은 도시 인프라 정책이다.
두 정책은 서로 대체 관계가 아니라 보완 관계일 수 있다. 폭염이 극심한 상황에서는 생수 공급이 필요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것이 매년 반복되는 기본적인 물 공급 방식이 되어서는 안 된다.
저스트워터가 던지는 질문은 결국 이것이다.
“시민에게 생수 한 병을 나눠주는 도시와 시민이 생수를 사지 않아도 되는 도시 가운데, 우리가 만들어야 할 도시는 어느 쪽인가.”
서울형 음수대가 시작된 지금 필요한 것은 음수대 설치 숫자를 발표하는 것에서 끝나지 않는다.
시민이 실제로 생수를 덜 사게 되었는지, 음수대를 얼마나 이용하는지, 관리가 제대로 이뤄지는지까지 측정해야 한다.
물은 생수병 안에 있을 때만 시민에게 제공되는 것이 아니다.
서울의 수돗물이 안전하고 신뢰할 수 있다면, 이제 필요한 것은 그 물을 시민의 일상 가까이 가져오는 도시의 설계다.
생수 냉장고에 매년 페트병을 채우는 것에서 벗어나, 폭염에도 평소에도 시민이 손쉽게 물을 마실 수 있는 도시.
‘플라스틱 없이 물을 마시는 도시’라는 저스트워터의 제안은 바로 그 질문에서 시작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