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 상 위에 송편이 오르면, 저는 늘 그 소박한 반달 모양에 눈이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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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름달이 뜨는 명절에, 우리는 어째서 완전히 차오르지 않은 모양의 떡을 빚어왔을까요.
오래된 이야기가 전해옵니다.
백제 의자왕 때 궁궐 땅속에서 나온 거북의 등에 “백제는 보름달 같고 신라는 초승달 같다”는 글귀가 쓰여 있었는데, 무당은 보름달은 가득 차 이제 기울 일만 남았고 초승달은 앞으로 점점 가득해질 것이라 풀이했습니다.
얼마 후 백제는 그 예언처럼 기울고 신라는 삼국을 통일했습니다.
『삼국사기』에 그 흔적이 전하는 이 이야기 이후로, 사람들은 더 나은 내일을 바라며 반달 모양의 떡을 빚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삼국유사』 죽지랑조의 '설병(舌餠)' 역시 오늘날 송편의 먼 조상뻘로 여겨집니다. 추석에 송편을 절식으로 먹었다는 기록은 정학유의 『농가월령가』(1816)에서 처음 확인되는데, 그해 가장 먼저 여문 벼로 빚은 '오려송편'을 신도주·박나물·토란국과 함께 선산에 올렸다고 전합니다.
그러니 송편의 반달은 미완성이 아니라 '되어가는 중'의 상징입니다. 반죽을 빚을 때 소를 넣기 전에는 보름달을 닮았다가, 소를 채우고 나면 반달이 되지요. 다 채워진 것과 앞으로 채워질 것이 한 떡 속에 공존합니다.
이 지점에서 중국의 월병과 견주어보면 두 나라의 마음이 대조적입니다. 월병은 달의 여신 상아(嫦娥)가 불사약을 품고 달로 떠났다는 신화와 맞물려, 둥근 보름달 그 자체를 형상화해 완전한 충만함을 기립니다.
반면 우리 송편은 다 차지 않은 상태를 일부러 선택합니다. 완성보다 과정을, 충만보다 여백을 귀하게 여기는 마음입니다. 지금 당장 가득 차 있지 않아도 괜찮다는 것, 오히려 아직 채울 몫이 남아 있다는 사실이 살아갈 힘이 된다는 것. 반달이 결국 보름달로, 다시 그믐으로 돌아가는 순환처럼 우리 삶도 그렇게 차고 기울며 나아가는 것이겠지요.
한가위를 짓는 손, 송편
추석 차례상에 송편이 없다면 명절 같지가 않습니다.
저는 송편만큼은 '만드는 음식'이 아니라 '짓는 음식'이라 부르고 싶습니다. 한 알 한 알 손끝으로 빚어 완성해가는 정성이 그 안에 담겨 있기 때문입니다.
원래 이름 송병(松餠)은 솔잎을 깔고 찐다는 뜻에서 비롯되었습니다. 솔잎의 항균 성분은 떡을 쉽게 상하지 않게 지켜주는 실용적 지혜였습니다.
지역마다 얼굴도 다릅니다. 전라도의 모시송편과 꽃송편, 강원도의 감자송편, 황해도의 조개송편, 평안도의 손자국송편, 경기 북부 실향민들의 귀리송편까지, 저마다의 땅에서 나는 재료로 빚어온 송편은 그 자체로 우리 국토의 축소판입니다.
음력 2월 초하루에 큼직하게 빚어 일꾼들의 노고를 위로했던 삭일송편(노비송편)처럼, 송편은 감사와 격려를 전하는 매개이기도 했습니다. 멥쌀가루에 콩·팥·밤·대추·깨를 채운 그 구성은 영양학적으로도 균형이 잡혀 있어, 대여섯 개면 밥 한 공기에 맞먹는 완결된 한 끼가 됩니다.
무엇보다 송편은 '함께 빚는' 음식입니다. 명절이면 온 가족이 둘러앉아 반죽을 떼고 소를 채우며 모양을 잡습니다. 할머니의 손끝에서 아이의 손끝으로 전해지는 것은 기술만이 아니라, 함께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경험 그 자체입니다.
명절은 결국 누군가를 향한 마음을 확인하는 시간입니다. 반달이 모여 보름달을 이루듯, 우리가 나누는 정성 하나하나가 모여 한가위의 풍요를 이룹니다. 올 한가위, 그 작은 반달 하나에 얼마나 많은 시간과 사람의 마음이 쌓여 있는지 헤아려 보시길 바랍니다. 여러분의 밥상 위에도 정성과 여유, 나눔의 마음이 함께 놓이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