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의 나무는 왜 반복해서 사라지는가.
개발과 도로 확장, 안전, 민원, 관리 등 나무를 제거하는 이유는 다양하지만, 그 과정에서 나무가 가진 생태적·사회적 가치가 제대로 평가되고 있는지를 묻는 토론회가 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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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왼쪽부터 임진아 지구와사람 학술팀장, 김보미 변호사, 좌장을 맡은 정대수 마산신월초등학교 교장, 최명애 연세대 교수, 최진우 서울환경연합 생태도시전문위원이 발제 후 토론을 하고 있다. |
지난 25일 서울 종로구 노무현시민센터에서 열린 ‘도시나무 수난기: 반복되는 도시나무 훼손의 구조와 입법 과제’ 토론회에서는 환기미술관 은행나무 사건을 통한 법적 보호의 공백, 도시나무 훼손을 반복시키는 행정 구조, 시민과 가로수의 관계 변화, 관련 법·제도의 개선 방안이 차례로 제시됐다.
김보미 변호사 “사유지 노거수, 훼손된 뒤에야 책임 묻는 구조”
첫 번째 발제에 나선 김보미 변호사(사단법인 선)는 최근 논란이 된 환기미술관 은행나무 사건을 통해 사유지 노거수의 법적 보호 공백을 짚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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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처 - 서울환경연합 자료집 |
부암동 은행나무는 수고 약 19m, 흉고직경 약 70㎝로 같은 자리에서 100년 이상 자란 것으로 소개됐다. 나무가 서 있는 토지는 지목이 ‘도로’인 사유지로 40여 명이 공동소유하고 있다.
김 변호사는 지난 4월 22일 은행나무에 약품이 주입된 뒤 나무 상태가 급격히 악화된 사건의 경과를 설명했다. 주민들은 5월 현장을 확인한 뒤 종로구청과 경찰 등에 신고했고, 6월 29일에는 환기미술관 관장 등을 재물손괴 및 토양환경보전법 위반 혐의로 고발했다.
김 변호사가 주목한 것은 나무를 보호할 법률이 없다는 것이 아니라, 각각의 보호제도가 적용되는 범위가 제한돼 있다는 점이다.
산림자원법은 산림 안의 입목을, 도시숲법은 법률상 가로수 등을, 산림보호법은 지정된 보호수를 대상으로 한다. 하지만 보호수·가로수 등에 해당하지 않는 사유지 노거수는 이들 제도의 직접적인 보호를 받기 어려울 수 있다.
특히 김 변호사는 나무가 훼손된 이후 형사책임을 묻는 것만으로는 나무를 보호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소유자가 치료에 나서지 않을 경우 지방자치단체가 사유지 나무에 응급치료를 명하거나 대집행할 수 있는 근거도 사실상 부족하다는 것이다.
김 변호사는 이날 토론의 의미를 ‘수화(樹話)’, 즉 나무와 대화하는 절차를 제도화하는 것으로 연결했다.
최진우 전문위원 “개발·안전·민원·관리, 네 가지 명분 아래 빠지는 것들”
두 번째 발제에 나선 최진우 서울환경연합 생태도시전문위원은 도시나무가 훼손되는 과정을 개발·안전·민원·관리라는 네 가지 명분으로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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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처 - 서울환경연합 자료집 |
최 전문위원이 던진 질문은 “이 나무는 문제인가, 아니면 이웃인가”였다. 같은 나무를 바라보는 관점에 따라 ‘관리’라는 행위가 전혀 다른 결론에 도달한다는 것이다.
그는 개발 과정에서는 ‘시간’이 빠진다고 지적했다.
30년 된 나무가 신규 식재비 수준인 300만~400만원으로 환산되면 수십 년 동안 축적된 나무의 시간이 가격표에서 사라진다. 특히 재건축 시기와 나무가 성숙하는 시기가 겹치면서 오래된 나무가 구조적으로 제거 대상이 된다는 분석이다.
안전 문제에서는 ‘위험의 원인’이 빠진다고 봤다. 나무가 왜 위험해졌는지, 관리 과정에서 뿌리나 가지가 훼손된 것은 아닌지를 따지기보다 결과적으로 나타난 위험만을 근거로 제거하는 구조를 문제 삼았다.
민원에서는 ‘침묵하는 다수’가 빠지고, 관리에서는 나무와 시민 사이의 ‘관계’가 빠진다고 분석했다.
결국 개발·안전·민원·관리라는 네 영역 모두에서 나무를 시설물로 환산하는 과정에서 중요한 가치가 빠진다는 것이다.
최 전문위원은 대안으로 나무의 생태계서비스뿐 아니라 수십 년의 기억과 애착, 경관, 장소성 등 ‘관계적 가치’도 의사결정에 반영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그리고 이를 제도적으로 대변할 주체로 ‘시민 나무가디언’을 제시했다. 시민이 특정 나무와 가로수 구간을 관찰·기록하고, 나무의 관계적 가치를 공적으로 대변하며, 벌목과 정비 결정 과정에도 참여하도록 하자는 구상이다.
최명애 교수 “가로수와 시민의 관계가 도시 자연을 다시 만든다”
세 번째 발제자인 최명애 연세대학교 교수는 나무를 법이나 행정의 대상으로만 바라보는 시각에서 벗어나 시민과 가로수 사이의 관계가 어떻게 형성되는지를 살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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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처 - 서울환경연합 자료집 |
최 교수는 ‘배경에서 생명으로: 서울 가로수 인프라의 생태 정치’를 주제로 발표했다. 이 발표는 최 교수가 준비 중인 「배경에서 생명으로: 서울 가로수 인프라의 생태정치」 논문에 기반했다.
최 교수는 ‘인프라 반전(Infrastructural involution)’이라는 개념을 통해 가로수가 단순한 도시 인프라가 아니라 인간과 다른 생명체가 관계를 맺으며 의미가 만들어지는 존재라는 점에 주목했다.
서울의 가로수는 도로 환경을 개선하고 녹음을 제공하며 생태계 연결성을 유지하는 기능을 가진다. 하지만 현재 제도에서는 주로 환경오염 저감, 기후조절, 탄소흡수 등 기능 중심으로 설명되고 시민의 역할도 물주기·신고·장애물 제거 등 관리 협조에 머물고 있다는 것이다.
최 교수는 서울환경연합의 시티트리클럽 활동을 사례로 들었다.
시민이 특정 나무를 ‘내 나무’로 인식하고 관찰하고 이름을 붙이고 시간을 보내면서 나무를 단순한 배경이 아니라 관계를 맺는 존재로 받아들이게 된다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나무에 대한 애착과 돌봄의 감정이 형성되고, 나무를 둘러싼 도시 자연에 대한 관심으로 확장될 가능성이 있다는 설명이다.
다만 관심과 공감이 곧바로 제도 변화나 정치적 행동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라는 한계도 짚었다. 따라서 시민·지자체·시민단체·연구기관을 연결하는 매개가 필요하며, 시티트리클럽 등을 통해 가로수를 ‘커먼즈’로 인식하는 사회적 기반을 넓혀야 한다고 제안했다.
임진아 학술팀장 “보호수 중심에서 벗어나 보호대상 확대해야”
네 번째 발제자인 임진아 지구와사람 학술팀장은 논의를 법·제도 개선 과제로 확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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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처 - 서울환경연합 자료집 |
임 팀장은 ‘한국 도시나무 보호 법제의 사각지대와 입법 과제’를 주제로 보호수 제도, 도시숲 법제, 시민참여 절차를 중심으로 현행 제도를 분석했다.
임 팀장은 현재의 법체계가 역사적·학술적 가치 등이 인정된 일부 보호수에 상대적으로 집중돼 있는 반면, 보호수나 가로수로 지정되지 않은 사유지 수목은 법과 제도의 틈새에 놓일 수 있다고 지적했다. 개발·건축이나 민사분쟁 등 개별 상황에서 제한적으로 다뤄질 뿐 나무 자체의 생태적·사회적 가치가 독립적인 보호이익으로 충분히 인정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보호수 지정 기준과 절차가 지역마다 다르다는 점도 문제로 제시했다. 발표에서는 일부 지방자치단체가 보호수와 별도로 ‘노거수’를 지정해 관리하고 있으며, 서울 종로구·성북구 등의 ‘아름다운 나무’ 제도처럼 지방자치단체별 제도적 차이가 존재한다는 점이 소개됐다.
임 팀장은 해외 사례와 비교해 시민참여가 단순한 협조가 아니라 실제 판단 근거가 되는 구조가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영국에서는 시민과학자의 나무 관찰·등록 자료가 개발계획 검토에 활용되고, 셰필드에서는 시민단체·시의회·민간업체 등이 참여하는 협의체를 통해 가로수 조사자료와 벌목·가지치기 계획을 사전에 공유하고 심의하는 사례가 소개됐다. 뉴질랜드 퀸스타운 레이크스 지역은 중요 나무의 벌목 신청에 사전통지와 의견수렴, 심의, 대체식재 조건 등을 결합한 절차를 운영하는 사례로 제시됐다.
이에 따라 임 팀장은 보호대상을 확대하고, 개발 과정에서 사전 나무조사와 영향평가를 의무화하며, 시민참여 절차를 실질화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네 발제의 공통점은 ‘나무를 보는 관점의 전환’
네 명의 발제는 접근 방식이 달랐다.
김보미 변호사는 법률의 사각지대를 들여다봤고, 최진우 전문위원은 행정과 관리 과정에서 가치가 빠지는 구조를 분석했다.
최명애 교수는 시민과 나무의 관계가 어떻게 형성되는지에 주목했고, 임진아 학술팀장은 이를 법·제도 변화의 과제로 연결했다.
결국 네 발제의 공통된 문제의식은 하나로 모인다.
도시나무를 단순히 ‘관리해야 할 시설물’로만 볼 것인지, 아니면 도시 생태계와 공동체의 기억을 함께 구성하는 생명체이자 관계의 주체로 볼 것인지다.
특히 이번 토론은 “나무를 베지 말자”는 단순한 보전론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갔다.
나무를 베어야 한다면 왜 베어야 하는지, 다른 대안은 검토했는지, 그 나무가 가진 생태적·사회적 가치는 무엇인지, 시민들은 어떤 의견을 갖고 있는지 사전에 묻는 절차를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환기미술관 은행나무 사건에서 시작된 문제 제기가 결국 도시나무 전체의 법과 행정, 그리고 시민의 관계를 다시 묻는 논의로 확장된 이유다.
도시의 나무를 보호하는 것은 결국 나무 한 그루를 지키는 문제가 아니다. 도시가 무엇을 가치 있는 것으로 인정하고, 그 가치를 누가 결정할 것인가의 문제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