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널명: 뉴스홈 > 마포 이슈 > 우리가 사는 도시공간 기사 제목:

“사라지기 직전에야 묻는다”…오윤 벽화 철거 논란, 서울은 무엇을 남길 것인가

2026-05-05 20:53 | 입력 : 마포저널

광장시장처럼 스쳐 지나온 이미지…이제는 보존 요구로
사유재산·개발 논리 속 공공미술 사각지대 드러나

광장시장을 방문했을 때 무심코 지나쳤던 한 장면이 있다. 그것이 작품인지, 어떤 서사를 담고 있는지까지 생각해본 이는 많지 않다.
출처카카오맵 로드뷰
종로4가 우리은행 금융센터 외벽에 설치된 '민중 판화가' 오윤(1946∼1986)의 테라코타 작품이다.
출처-카카오맵 로드뷰
그런데 만약 이와 같은 작품이 철거될 위기에 놓였다면 우리는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 지금 그 질문이 현실이 되고 있다.

1974년 제작된 오윤의 구의동 테라코타 벽화가 건물 철거와 함께 사라질 위기에 놓이면서 시민들의 보존 요구가 확산되고 있다. 온라인에서는 ‘철거 전 해체 및 공공 이관’을 요구하는 서명운동이 이어지고 있으며, 일정상 늦어도 수개월 내 결정이 내려져야 하는 상황이다.

서울특별시 광진구 구의동 우리은행 지점 출처  씨앗페 홈페이지
서울특별시 광진구 구의동 우리은행 지점의 내부 벽에서 발견되었다. 출처 - 씨앗페 홈페이지

우리은행은 최근 구의동 지점 건물을 매각하면서 건물 내 가림벽 뒤에 숨겨져 있던 오윤의 테라코타 작품 존재가 세상에 드러났다. 테라코타란 점토를 빚고 구워 토기처럼 만드는 조형물로, 건축의 벽면 장식 등에 많이 사용된다.

오윤은 군 제대 후 1970년대 경주와 일산의 전돌 공장에서 흙을 다루던 중 당시 상업은행(우리은행 전신)으로부터 테라코타 부조 작품을 의뢰받았고, 구의동·종로4가·삼각지 지점에 테라코타 작품을 남겼다고 한다.
이번에 구의동에서 발견된 작품은 멸실되었다고 알려져 있던 작품이라 더 안타까움을 불러일으킨다.

이번 논란은 단순한 작품 보존을 넘어, 도시가 무엇을 기억으로 남길 것인가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특히 그동안 주목받지 못했던 공공미술이 철거를 앞두고서야 재조명되는 ‘사후 인식’의 반복 구조가 다시 드러났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11
2026년 5월 20일까지 1만 명 시민 청원 서명을 받고 있다.
https://www.saf2026.com/petition/oh-yoon#sign-form

오윤은 한국 민중미술 흐름을 대표하는 작가로 평가받는다. 그의 작품은 개인 창작을 넘어 당대 사회와 삶의 흔적을 담아낸 기록물로도 읽힌다. 문제의 벽화 역시 단순 장식이 아니라 1970년대 도시 문화와 미적 감각을 반영한 공공미술이라는 점에서 보존 가치가 제기된다.

그러나 현실은 녹록지 않다. 작품이 부착된 건물은 사유재산이며, 철거와 재개발은 법적으로 정당한 권리 행사에 해당한다. 이 과정에서 공공적 가치가 충돌하더라도 이를 조정할 명확한 제도적 장치는 부족한 상황이다.

실제로 국내에는 건축물에 결합된 공공미술을 사전에 등록하거나, 철거 시 보존 여부를 판단하는 체계가 거의 없다. 문화재로 지정되기 전 단계의 작품들은 법적 보호를 받지 못한 채 개발 일정에 종속되는 구조다. 결과적으로 보존 논의는 대부분 철거 직전에야 시작되고, 선택의 폭은 급격히 좁아진다.

이번 사안 역시 ‘전면 보존’과 ‘즉각 철거’ 사이에서 현실적 대안이 논의되고 있다. 전문가들은 해체 후 이전 설치, 공공기관 이관, 디지털 아카이빙 등을 병행하는 방식이 현실적인 절충안이 될 수 있다고 본다. 다만 이러한 조치 역시 사전 준비 없이 추진될 경우 작품 훼손 가능성과 비용 문제를 동반한다.

반대 의견도 적지 않다. 사유재산에 대한 과도한 개입은 또 다른 갈등을 낳을 수 있고, 모든 공공미술을 보존 대상으로 삼을 경우 기준 설정이 어렵다는 지적이다. 결국 핵심은 개별 작품의 존치 여부를 넘어, 무엇을 남기고 무엇을 포기할 것인지에 대한 사회적 합의를 어디까지 끌어낼 수 있느냐에 있다.

정치적 변수도 남아 있다. 현재 진행 중인 시민 서명은 차기 서울시장에게 판단을 요구하는 형태로 확산되고 있다. 선거 국면에서 공공문화 정책이 쟁점화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도시는 끊임없이 새로 지어지지만, 무엇을 남길 것인지는 매번 선택의 문제다. 오윤의 벽화를 둘러싼 논란은 결국 서울이 어떤 기억을 미래로 가져갈 것인지 묻고 있다. 그리고 그 판단은, 이번에도 사라지기 직전에야 시작되고 있다.

  • 페이스북 공유
  • 트위터 X 공유
  • 카카오톡 공유
  • 링크 복사
Copyrights ⓒ 마포저널 & www.mapojournal.com |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 더보기 마포저널
댓글 :0
댓글 등록
0/400
  • 작성자명 |2024.11.14 10:30
    이곳은 댓글 작성한 내용이 나오는 자리 입니다.
1 2 3 4 5
마포저널로고

마포저널의 모든 콘텐츠(기사)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으며, 무단이용,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마포저널 MapoJournal. All rights reserved.
발행·편집인 서정은 | 상호 마포저널 | 등록번호 서울아56266 ㅣ주소 서울특별시 중구 을지로12길 28, 313호 
 기사제보/취재문의 010-2068-9114 (문자수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