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동 전쟁 장기화로 국제 유가와 석유화학 원료 수급 불안이 이어지면서, 우리 일상 속 가장 익숙한 공공재 중 하나인 종량제봉투까지 영향을 받고 있다. 쓰레기를 버리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종량제봉투가 사실상 석유 기반 플라스틱 원료에 의존하고 있기 때문이다. 정부는 재생원료 확대에 나섰지만, 이번 사태는 “종량제봉투를 꼭 석유로 만들어야 하느냐”는 근본적 질문을 던지고 있다.
기후에너지환경부는 지난 13일 재생원료 생산업계와 종량제봉투 제작업계, 관련 기관들과 ‘재생원료 사용 종량제봉투 제작 확대 업무협약’을 체결했다. 최근 중동 전쟁 장기화로 종량제봉투 주원료인 폴리에틸렌(PE) 공급이 원활하지 않자, 폐자원으로 만든 재생원료를 대안으로 활용하겠다는 취지다.
종량제봉투는 지금까지 튼튼함, 방수성, 가격 경쟁력을 이유로 대부분 석유계 플라스틱 소재로 제작돼 왔다. 하지만 원료 상당 부분을 수입 석유와 나프타에 의존하는 구조여서 국제 분쟁, 공급망 위기, 환율 급등에 취약하다는 한계를 드러냈다. 생활폐기물 처리 시스템의 핵심 수단이 해외 자원시장 변수에 흔들리는 셈이다.
정부도 이러한 문제를 인식하고 있다. 28일 발표한 ‘탈플라스틱 순환경제 전환 추진계획’에는 “석유 수입에 의존하지 않는 지속가능한 순환경제”를 목표로, 2030년까지 신재 플라스틱 사용을 30% 감축하겠다는 내용이 담겼다. 특히 종량제봉투를 중동 전쟁 대응 핵심 품목으로 지목하고 재생원료 사용 설비 지원 예산 138억 원도 반영했다.
전문가들은 이번 사태를 단순한 봉투 수급 문제가 아니라 폐기물 정책 구조 전환의 계기로 봐야 한다고 지적한다.
첫째, 재생 플라스틱 봉투 확대
폐비닐·폐플라스틱을 선별·세척해 만든 재생원료를 종량제봉투에 우선 적용하면 수입 원료 의존도를 낮출 수 있다. 이미 정부도 품질 인증과 공급망 연계를 추진 중이다.
둘째, 종이·바이오 소재 대체 검토
음식물용, 일반쓰레기용, 재활용 배출용 등 용도별로 필요한 강도가 다르기 때문에 일부 분야는 종이계 또는 생분해성 소재로 전환 가능성이 있다. 모든 봉투를 일괄적으로 플라스틱으로 만들 필요는 없다는 의미다.
셋째, 봉투 중심 배출체계 재검토
RFID 종량기기, 공동수거함, 다회용 수거용기 확대 등으로 ‘일회용 봉투를 구매해 버리는 방식’ 자체를 줄일 수 있다는 의견도 나온다. 기술 변화에 맞춰 종량제 제도도 진화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현재 종량제봉투는 너무 익숙해서 문제를 느끼지 못하는 제도다. 그러나 국제 전쟁 하나로 봉투 가격과 공급이 흔들린다면 이는 생활행정의 안정성 문제이기도 하다.
쓰레기봉투는 단순한 비닐봉지가 아니다. 도시 운영의 필수 인프라다. 이번 중동 전쟁은 우리에게 묻고 있다. 도시의 기본 시스템까지 계속 석유에 의존할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