즉석밥용기를 열심히 씻어 배출한 플라스틱 용기가 결국 소각 처리된다는 사실에 분노보다 허무함이 앞선다. ‘환경을 위해’ 들였던 수고가 사실상 무의미했다는 판단 때문이다.
소비자의 이런 혼란은 비단 어느 개인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우리 사회는 지난 20여 년간 ‘분리배출’을 강조해왔지만, 여전히 많은 폐플라스틱은 수거함에서 ‘기타(OTHER)’ 분류로 빠지며 소각된다. 복합재질, 코팅 처리, 잔여 음식물 등 여러 문제로 재활용되지 못하는 사례가 빈번하다.
복합재질의 벽, 즉석밥 용기는 왜 재활용이 안 되나
대표적인 예가 즉석밥 용기다. 겉보기엔 흔한 플라스틱이지만, 실제로는 다양한 소재가 겹쳐진 복합재질이다. 내열성과 보존성을 높이기 위해 PP(폴리프로필렌)에 코팅 처리와 첨가제가 더해진 구조다. 이 때문에 분리와 재활용이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다.
즉석밥 용기는 고품질 재활용이 어렵고, 수거 후에도 추가 분리 공정과 비용이 필요해 대부분 소각된되 고 있다. 설령 저품질 재활용이 가능하더라도 물류 팔레트나 화분처럼 수요가 낮고 원료 가격도 낮아 채산성이 맞지 않는 경우가 많다.
결국 재활용이 어렵다는 이유로 다수의 플라스틱 용기가 선별장에서 탈락한다. 환경부가 권고하는 바에 따르면 ‘기타(OTHER)’ 재질은 종량제 봉투에 버리는 것이 원칙이다. 다시 말해, 플라스틱 수거함에 넣더라도 다시 쓰레기로 되돌아가는 구조다.
분리배출, 누구를 위한 ‘친절’인가
시민들의 가장 큰 불만은 "어디까지 분리해야 하는지 도무지 모르겠다"는 것이다. 분리배출 표시가 있더라도 재질 분류가 모호하거나, 실제 재활용 여부와 다른 경우도 많다. 표시만 믿고 행동한 소비자가 오히려 죄책감을 느끼게 되는 구조다.
분리배출이 잘못된 게 아니라, ‘어떻게 해야 잘하는 것인지’를 소비자가 이해하기 어려운 점이 문제이다. 단일 재질로 만들어진 제품도 드물고, 포장 구조 자체가 분리를 어렵게 만든 경우가 많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소비자에게 ‘책임’ 넘기지 말고, 생산부터 바꾸자
환경단체들은 정부와 기업에 보다 구조적인 해결책을 요구하고 있다. 가장 핵심은 생산자책임재활용제도(EPR)의 실효성 강화다. 제품을 만든 기업이 재활용의 어려움까지 책임져야 한다는 것이다.
EPR은 제품 생산량에 따라 재활용 의무를 부여하고, 이를 이행하지 못할 경우 비용을 부담하게 하는 제도다. 환경부는 이 제도를 확대하고 있지만, 복합재질 제품에 대한 명확한 규제나 단일재질 전환 유도는 여전히 부족한 실정이다.
무코팅 PP 단일재질 용기처럼 재활용 가능한 제품 개발에 기업이 더 적극 나서야 하고, 제품 기획 단계부터 재활용 용이성을 평가하고, 불필요한 코팅이나 첨가제를 줄이는 것이 근본적 해법이 될 것이다.
소비자 알 권리도 중요…‘분리배출 정보 투명화’ 필요
전문가들은 소비자 교육도 병행돼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소비자에게 명확한 정보를 제공해 스스로 환경 친화적인 소비를 선택할 수 있게 하는 것이 핵심이다. 재활용 가능성이 낮은 제품에는 '주의 표시'나 '재활용 어려움'을 명시하는 식이다.
실제로 2023년 기준 우리나라에서 발생한 폐플라스틱 1463만 톤 중 ‘기타 합성수지’만 43만 톤에 달한다. 눈에 보이지 않을 뿐, 우리는 매일 재활용 불가능한 물건을 구매하고, 분리배출을 하고, 다시 소각하는 악순환 속에 살고 있는 셈이다.
“분리배출이 쉬워져야 행동도 이어집니다.”
재활용은 시민만의 몫이 아니다. 생산자와 정부, 유통과 소비가 함께 설계하는 체계적 구조가 필요하다. 이제는 분리배출을 ‘시민의 도덕’이 아니라 ‘시스템의 설계’로 접근해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