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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초제가 최선이었을까?

2026-06-03 17:54 | 입력 : 마포저널

환기미술관 은행나무 논란이 던진 질문

서울 종로구 부암동 환기미술관의 은행나무 훼손 논란이 지역사회를 넘어 전국적 관심사로 번지고 있다.

주민들은 미술관 측이 지역의 상징적 노거수에 제초제를 주입했다며 반발하고 있고, 환기미술관은 안전 문제와 시설 관리의 필요성을 강조하며 사과문을 발표했다.
그러나 이번 논란은 단순히 나무 한 그루를 둘러싼 갈등으로 보기 어렵다. 문화기관의 공공성, 사유재산권, 도시 노거수 관리제도, 주민과 지역사회 간 신뢰라는 여러 문제가 복합적으로 얽혀 있기 때문이다.

부암동의 상징이 된 환기미술관

환기미술관은 한국 추상미술의 거장 김환기를 기념하기 위해 1992년 개관한 국내 대표 사립미술관이다.

오랜 기간 부암동을 대표하는 문화공간으로 자리 잡으며 지역의 문화적 위상을 높여왔다. 윤동주문학관, 서울미술관 등과 함께 부암동이 서울의 대표적인 문화예술 마을로 알려지는 데에도 중요한 역할을 했다.
주민들에게 환기미술관은 단순한 전시장이 아니라 지역의 자랑거리이자 상징이었다.
하지만 문화시설이 주는 혜택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주말마다 몰리는 관광객으로 인한 주차난, 골목길 교통 혼잡, 각종 행사와 공사 과정에서 발생하는 생활 불편은 주민들이 오랫동안 감수해 온 부분이다.
그럼에도 주민들이 이를 받아들였던 이유는 환기미술관이 지역사회에 기여하는 문화적 가치가 크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논란의 핵심은 나무가 아니라 '절차'

환기미술관 측은 은행나무가 담장과 시설물에 영향을 미치고 있어 안전 문제가 있었다고 설명한다.

실제로 나무가 구조물에 손상을 주거나 인명 피해 위험을 초래할 경우 관리자는 필요한 조치를 취해야 한다. 만약 위험을 알고도 방치했다가 사고가 발생하면 오히려 법적 책임을 질 수도 있다.
이 때문에 "나무를 반드시 보존해야 한다"는 주장만으로는 현실적 해법이 되기 어렵다.
그러나 주민들이 분노하는 지점은 다른 곳에 있다. 주민들이 던지는 질문은 단순하다.
"정말 위험했다면 왜 공개적으로 처리하지 않았는가."
안전진단 결과 공개, 주민 설명회, 행정기관 협의, 공개적인 제거 또는 이식 절차가 아니라 약제 주입 의혹이 먼저 알려지면서 주민들의 불신은 커졌다.
결국 이번 갈등은 나무의 존치 여부보다 절차적 정당성과 신뢰의 문제로 확대됐다.

사과문이 해소하지 못한 의문

환기미술관은 최근 사과문을 발표했다.
출처  환기미술관 홈페이지
출처 - 환기미술관 홈페이지

그러나 사과문은 논란을 잠재우지 못했다.
주민들이 가장 궁금해하는 것은 제초제 주입 여부와 경위, 의사결정 과정, 책임 소재다.
반면 사과문은 사업 경위와 행정 절차, 안전 문제 설명에 상당한 분량을 할애했다.
그 결과 일부 주민들은 사과문이 사과보다 해명에 가깝다고 받아들이고 있다.
사과문이 법적 정당성을 설명하는 데는 성공했을지 몰라도, 지역사회가 요구하는 신뢰 회복에는 충분하지 않았다는 평가가 나온다.

보호수는 아니었다

이번 사건에서 흥미로운 사실은 문제의 은행나무가 보호수로 지정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서울시는 2019년 기준 208그루의 보호수를 지정·관리하고 있다. 종로구에는 서울 자치구 가운데 가장 많은 30그루의 보호수가 있다. 보호수는 단순히 오래된 나무가 아니라 역사성, 경관성, 희귀성, 상징성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지정된다. 현재 주민들은 해당 은행나무가 100년 이상 된 노거수라고 주장하고 있지만 공식 보호수로 지정된 상태는 아니다.

여기서 새로운 질문이 등장한다.
"정말 지역의 상징적 노거수였다면 왜 보호수로 지정되지 않았을까."
반대로 행정기관이 보호수 가치가 부족하다고 판단했다면 주민들이 주장하는 상징성의 실체 역시 검증이 필요하다.
이번 사건은 환기미술관의 책임뿐 아니라 서울시와 종로구의 노거수 관리 체계에도 질문을 던지고 있다.

사유재산과 공공성의 충돌

환기미술관은 사립미술관이다.

법적으로는 민간이 운영하는 사유재산이다. 그러나 동시에 지역을 대표하는 문화기관이기도 하다.

이번 논란은 바로 이 지점에서 발생한다. 법적으로는 소유자의 권리가 우선할 수 있지만, 사회적으로는 더 높은 수준의 공공성과 설명 책임을 요구받는다. 은행나무 역시 마찬가지다.
법적으로는 특정 토지 위에 있는 수목일 수 있지만, 주민들에게는 오랫동안 동네 풍경과 기억을 구성해 온 공동체의 자산으로 인식된다.
결국 이번 사건은 사유재산권과 공공적 가치가 충돌하는 대표적인 사례라고 볼 수 있다.

제초제가 최선의 방법이었을까

논란의 본질은 여기에 있다.

안전 문제가 있었다고 가정하더라도 제초제 주입이 유일한 선택지였는가 하는 점이다.
노거수 관리에서는 일반적으로 가지치기, 뿌리 정비, 지지대 설치, 이식, 보호시설 보강 등 다양한 방법이 검토된다. 물론 현장 상황에 따라 선택 가능한 대안은 달라질 수 있다.
하지만 주민들이 요구하는 것은 결과보다 과정의 투명성이다.
왜 그 방법이 선택됐는지, 다른 대안은 검토됐는지, 누구의 판단으로 결정됐는지에 대한 설명이다.

이번 사건은 나무 한 그루의 문제가 아니다.

부암동의 상징적 문화기관과 지역 주민 사이에 형성된 신뢰가 흔들린 사건이다.
환기미술관은 오랜 세월 지역의 자랑거리였다. 하지만 그만큼 더 높은 수준의 공공성과 책임을 요구받고 있다.
결국 이번 논란의 해법은 법적 정당성을 주장하는 데서 끝나지 않는다.
지역사회가 납득할 수 있는 사실 공개와 진정성 있는 소통, 그리고 도시의 노거수를 어떻게 보호하고 관리할 것인지에 대한 사회적 논의가 함께 이뤄질 때 비로소 해답에 가까워질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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