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선거가 다가오면 도시의 공기는 묘하게 달라진다. 교차로마다 걸린 현수막, 우편함을 가득 채우는 공보물, 골목마다 반복되는 이름과 얼굴. 익숙한 풍경이다. 그러나 지금 우리가 마주한 환경이 과연 ‘익숙함’을 허용하는 상황인지에 대해서는 질문이 필요하다.
우리에겐 무겁게 받아들여야 할 전제가 있다. 미국-이란 전쟁과 같은 충돌이 현실화되어 글로벌 석유 공급망이 흔들리는 순간, 선거는 더 이상 ‘일상의 정치 이벤트’가 아니다. 에너지 수입 의존도가 높은 대한민국에게 이는 곧 산업과 생존의 문제로 직결된다. 정유·화학 산업이 멈추면 제조와 물류, 지역 경제까지 연쇄적으로 흔들린다. 그 여파는 국경 안에만 머물지 않는다. 한국이 정제해 수출하던 에너지와 소재가 막히면, 다른 나라의 산업도 함께 흔들린다. 이 시대는 이미 ‘각자도생’이 불가능한 구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거는 예정대로 치러진다. 문제는 방식이다. 위기 상황에서도 우리는 여전히 도시를 현수막과 종이로 덮을 준비를 하고 있다. 에너지와 자원이 부족해질 수 있는 시기에, 대량 인쇄와 폐기물을 전제로 한 선거운동이 그대로 반복된다면 그것은 단순한 관행이 아니라 시대와의 충돌이다.
최근 강득구 의원이 주도한 친환경 선거운동 토론회는 이 오래된 방식을 되돌아보게 하는 계기였다. 전자공보물, 디지털 홍보, 자원 절감형 선거. 그동안 ‘환경’의 문제로만 다뤄졌던 의제가 이제는 ‘위기 대응’의 문제로 성격을 바꾸고 있다. 선거 공보물 제작에 들어가는 막대한 비용이 결국 공적 재원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이 논의는 도덕의 문제가 아니라 구조의 문제다.
정치는 종종 경쟁을 핑계로 비효율을 정당화해왔다. 더 많이 알리고, 더 크게 걸고, 더 넓게 뿌리는 방식이 ‘승리의 기술’로 받아들여졌다. 하지만 외부 충격이 현실화되는 순간, 이 공식은 무너진다. 시민이 요구하는 것은 더 큰 얼굴이 아니라, 더 구체적인 생존 전략이기 때문이다.
이 지점에서 후보자에게 요구되는 자질은 분명해진다. 첫째, 에너지와 자원 부족 상황에서 지역을 어떻게 운영할 것인지에 대한 구체적 계획. 둘째, 정유·제조·물류로 이어지는 공급망 충격이 지역 경제에 미칠 영향을 어떻게 완화할 것인지에 대한 전략. 셋째, 불편과 절제를 시민에게 설득할 수 있는 정치적 책임감이다.
이 세 가지를 제시하지 못한다면, 그 어떤 화려한 선거운동도 설득력을 갖기 어렵다.
역설적이게도, 지금 필요한 정치인은 ‘더 많은 것을 약속하는 사람’이 아니다. 오히려 덜 쓰고, 덜 버리고, 덜 소비하는 방식을 선택할 수 있는 사람이다. 현수막을 줄이고, 종이를 줄이고, 비용을 줄이는 선택. 그것은 이미지 관리가 아니라 위기 대응 능력의 증명이다.
지방선거는 원래 가장 현실적인 정치다. 주민의 삶을 가장 가까이에서 다루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위기의 시대에 지방선거는 ‘누가 더 잘 보이느냐’를 가리는 경쟁이 아니라, ‘누가 더 잘 버티게 할 수 있느냐’를 묻는 시험이어야 한다.
결국 질문은 단순하다.
이 선거는 표를 남길 것인가, 아니면 쓰레기를 남길 것인가.
그 답이, 이번 지방선거의 수준을 결정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