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력의 주변부와 핵심부를 취재하며 수많은 피의자의 언어를 기록해 왔다. 그 과정에서 깨달은 한 가지 서글픈 진실은, 감당할 수 없는 거대한 비극을 초래한 주동자일수록 자신의 행위를 ‘사소한 일상의 파편’ 뒤로 숨기려 한다는 점이다.
2026년 1월 13일, 내란 우두머리 혐의로 법정에 선 윤석열 전 대통령의 최후 진술은 그 정점에 있었다. 헌정 질서가 송두리째 흔들렸던 그 비극적인 밤의 서사를 ‘잔치국수 한 그릇’의 기억으로 치환하려는 그의 언어는, 단순한 변명을 넘어선 기괴한 심리적 방어기제를 보여준다.
'잔치국수'라는 이름의 알리바이: 악의 평범성 혹은 비겁함
그의 진술은 지나치게 구체적이고 일상적이다. "저녁 6시 넘어서 잔치국수 한 그릇 먹고 앉아있는데..."로 시작되는 서사는, 듣는 이로 하여금 그를 내란의 주동자가 아닌 '평온한 저녁을 방해받은 소탈한 가장'으로 착각하게 만든다.
심리학적으로 이는 '사소화'를 통한 거대한 부정이다. 국가의 존립을 위태롭게 한 결정이 국수 한 그릇을 비우는 일처럼 가볍게 이루어졌다고 강변함으로써, 행위의 엄중함을 희석하려는 의도다. 거대한 악의 정체성을 부정하고 이를 일상의 소음 정도로 격하시키려는 고도의 전략적 서술이다.
책임의 외주화와 주체성의 상실
진술문 속에서 그는 철저히 관찰자이자 수동적인 인물로 묘사된다. 장관이 찾아왔고, 병력이 부족하다고 호소했으며, 본인은 "별로 할 일이 없어서" 따라나섰을 뿐이라는 식이다. 한 나라의 군 통수권자가 내란이라는 국가적 범죄의 실행을 결정하며 "나랑 같이 가자"는 식의 가벼운 동행으로 묘사하는 대목은 놀라울 정도의 무책임함을 드러낸다.
이것은 전형적인 '책임의 분산'이다. 자신의 의지와 행위를 분리함으로써 죄책감으로부터 도피하는 심리적 기제다. "내가 얘기했는지 장관이 얘기했는지 모르지만"이라는 대목은 그 백미다. 역사적 심판의 칼날이 겨누는 '핵심 의지'의 자리에 안개를 피워 올림으로써, 법적·도덕적 책임을 통째로 타인에게 전가하고 있는 것이다.
'법'을 예찬하며 '법'을 파괴하는 모순
가장 기묘한 부분은 국회 진입을 통제하던 경찰들을 향해 "법을 잘 아네, 잘 하고 있네"라고 격려했다는 회고다. 헌법을 파괴한 혐의로 기소된 인물이, 현장의 지엽적인 절차법 준수를 보며 만족해했다는 진술은 극심한 '인지부조화'를 보여준다.
그는 여전히 자신이 '법치주의자'라는 환상적인 자아상 속에 갇혀 있다. 거대한 제방을 무너뜨리면서 하수구 정비 상태를 칭찬하는 꼴이다. 이러한 왜곡된 인식은 그가 저지른 행위가 사회 공동체에 끼친 치명적인 해악을 인지할 능력이 아예 결여되어 있음을 시사한다.
기록되지 않은 진실, 기억되지 않는 반성
그의 진술문 어디에도 국가적 혼란에 대한 고뇌나 시민들에 대한 유감은 존재하지 않는다. 오직 '어쩌다 보니 그 자리에 있었고, 나는 상식적으로 행동했다'는 자기 최면만 가득하다.
그의 진술은 자신의 행위가 역사에 남길 흉터를 전혀 인지하지 못하는, 즉 공감 능력이 거세된 권력자의 마지막 방어벽이다. 내란은 결코 잔치국수처럼 쉽게 삼켜질 수 있는 서사가 아니다. 법정은 그의 가벼운 언어 뒤에 숨은 무거운 진실을 낱낱이 기록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