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오세훈 서울시장이 또 하나의 대형 도시개발 카드를 꺼내 들었다. 내부순환로와 북부간선도로를 지하화하는 ‘강북횡단 지하도시고속도로’ 사업이다. 총사업비만 약 3조4천억 원에 달하는 초대형 프로젝트로, 서울시는 강북권 교통난 해소와 도시 단절 극복을 내세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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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시의 사업 구상 중 일부인 홍은IC개발 전후 사진 - 출처 서울시 홈페이지 |
그러나 이미 한강버스 도입, 종묘 앞 세운상가 초고층 개발 논란, 마포구를 비롯한 서북권 광역 소각장 갈등 등 굵직한 현안들이 산적한 상황에서, 또 하나의 대규모 토목사업이 과연 시급하고 타당한 선택이냐는 비판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반복되는 ‘대형 개발 카드’…선거용 구상 논란
강북횡단 지하도시고속도로는 성산IC부터 신내IC까지 약 20.5㎞ 구간에 왕복 6차로 지하도로를 신설하고, 기존 고가도로를 철거하는 계획이다. 서울시는 교통 정체 해소와 하천 복원, 도시 경관 개선이라는 복합 효과를 강조한다.
하지만 이 같은 논리는 이미 여러 차례 반복돼 왔다. 한강버스는 교통 혁신을 내세웠지만 실효성과 수요 예측을 둘러싼 논란이 이어지고 있고, 종묘 앞 세운상가 개발은 세계유산 경관 훼손 문제로 국가유산청과 정면 충돌했다. 마포구 소각장 문제 역시 ‘서울시 전체를 위한 필요시설’이라는 명분 아래 지역 갈등만 키웠다는 비판을 받는다.
공통점은 모두 임기 후반부, 선거를 앞둔 시점에 집중적으로 제시된 대형 사업이라는 점이다. 정책 일관성과 장기 계획이라기보다, 눈에 띄는 성과를 앞세운 정치적 메시지 아니냐는 의구심이 제기되는 이유다.
교통 해법인가, 또 다른 토목 의존인가
서울시는 강북권 교통난의 근본 해법으로 지하도시고속도로를 제시하지만, 교통 수요 관리와 대중교통 중심 정책은 상대적으로 뒤로 밀려 있다. 이미 내부순환로와 북부간선도로는 출퇴근 시간 혼잡이 극심하지만, 이는 도로 공급 부족만의 문제가 아니라 차량 중심 구조가 고착된 결과라는 지적도 적지 않다.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도로를 늘리면 교통이 분산되는 것이 아니라 다시 채워진다”는 이른바 ‘유도 수요’ 문제도 거론된다. 3조 원이 넘는 재원을 투입해 또 하나의 도시고속도로를 만드는 방식이, 기후위기 대응과 탄소 감축이라는 시대적 과제에 부합하는지에 대한 질문도 뒤따른다.
재정 부담과 우선순위, 설명은 충분한가
서울시는 총사업비를 약 3조4천억 원으로 추산했지만, 이는 아직 ‘잠정 수치’다. 향후 교통 수요 전망과 재정 여건에 따라 사업 규모와 방식이 달라질 수 있다고 밝혔지만, 이미 시민들에게는 ‘강북 전성시대’라는 정치적 구호가 먼저 제시됐다.
한강버스 운영비, 노후 인프라 유지·보수, 복지와 주거, 기후 대응 예산까지 고려하면 서울시 재정의 우선순위는 더욱 치열해질 수밖에 없다. 특히 소각장 문제처럼 생활과 직결된 갈등 현안은 해결의 실마리조차 찾지 못한 상태다.
이런 상황에서 또 하나의 대규모 토목사업이 과연 서울시의 가장 시급한 과제인지, 아니면 선거를 앞둔 상징적 프로젝트인지에 대한 판단은 시민 몫으로 남겨져 있다.
‘강북 전성시대’의 조건은 개발이 아닌 신뢰
강북의 경쟁력 회복이 필요하다는 데 이견은 없다. 다만 그 방식이 늘 대형 개발과 도로 건설로 귀결되는 것이 타당한지는 별개의 문제다. 충분한 사회적 논의와 재정 검증, 환경 영향 평가 없이 추진되는 계획은 또 다른 갈등의 씨앗이 될 수 있다.
‘강북 전성시대’를 말하기 전에, 서울시가 먼저 답해야 할 질문은 분명하다. 지금 서울에 필요한 것은 새로운 토목사업인가, 아니면 누적된 현안들에 대한 책임 있는 수습과 신뢰 회복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