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의 거리가 달라지고 있다.
2018년부터 “스마트 모빌리티 혁신”의 상징으로 등장했던 전동킥보드가, 이제는 일부 구간에서 ‘출입 금지’의 대상이 됐다. 서울시가 2025년 5월부터 마포구 홍대 레드로드와 서초구 반포 학원가 일대에서 운영한 ‘킥보드 없는 거리’ 시범사업은 시민 만족도 98.4%라는 이례적 반응을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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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포구 홍대 레드로드 |
보행환경이 개선됐다는 응답은 69.2%, 충돌 위험이 줄었다는 답변은 77.2%에 달했다.
시민들은 “킥보드 금지하니 살 것 같다”고 했다.
‘혁신’의 출발점 — 2018년 스마트 모빌리티 실험
불과 몇 해 전, 서울시는 전동킥보드를 미래 교통혁신의 대표 주자로 기대했다.
서울연구원이 2019년에 발표한 『서울시 스마트 모빌리티 서비스 도입 방안』은 “ICT와 공유기술을 기반으로 한 개인형 이동수단(PM)은 도심 단거리 이동을 해결할 새로운 교통모델”이라고 평가했다 .
당시 서울시는 “대중교통의 라스트마일(Last Mile) 보완 수단”으로 PM을 육성하고, ‘스마트시티’ 교통체계의 핵심축으로 삼았다. 지하철과 버스망을 잇는 미시적 이동이 스마트폰 하나로 해결되는 도시,
바로 그것이 서울이 꿈꾼 미래 교통이었다.
‘규제 공백’이 낳은 시장 폭발
하지만 정책보다 시장의 속도가 훨씬 빨랐다.
2018년 ‘킥고잉’이 강남·신촌 일대에서 첫 유료 대여를 시작하자, 이듬해 라임·씽씽·지쿠터 등 국내외 업체가 서울 전역으로 확산했다. 당시 도로교통법은 전동킥보드를 원동기장치자전거로 분류했지만,
운전면허·보험·등록의무 등이 현실적으로 적용되지 않았다. 서울 곳곳이 사실상 ‘무규제 실험장’이 됐다.
2019년 말, 서울 시내 공유킥보드는 2만 대를 넘어섰다.
주차 구역이 없던 인도는 킥보드의 방치장으로 변했고, 보행자 충돌사고가 급증했다.
‘스마트 모빌리티’는 순식간에 ‘도시의 위협수단’으로 불리기 시작했다.
‘킥보드 없는 거리’—혁신의 그림자를 지우다
이제 서울시는 방향을 돌렸다.
2025년 시범운영된 ‘킥보드 없는 거리’ 는 그 상징적인 전환점이다.
홍대 레드로드(1.3km)와 반포 학원가(2.3km)는 낮 12시부터 밤 11시까지 전동킥보드·전동평행차 등
모든 개인형 이동장치(PM)의 통행이 금지된다. 위반 시 범칙금 3만 원, 어린이보호구역은 6만 원의 벌금이 부과된다.
서울시는 이 구간의 생활인구 5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에서 무단 방치 80.4% 감소, 킥보드 통행량 76.2% 감소, 보행환경 개선 체감 69.2%라는 결과를 얻었다.
흥미로운 점은, 시범사업을 몰랐던 시민 중 61%조차 “보행이 편해졌다”고 답했다는 것이다.
시민들은 변화보다 “정리된 거리”를 체감했다.
서울의 교훈 — 기술보다 질서
‘킥보드 없는 거리’는 단순한 통행금지 정책이 아니다.
이는 스마트 모빌리티 도입 6년의 실험에 대한 회고이자 수정선언이다.
서울시는 교통의 혁신을 기술에서 찾았지만, 시민은 질서에서 안정을 느꼈다.
서울연구원 보고서가 제안했던 원래의 방향— “민관 협력체계 구축, 제도 정비, 인프라 기반 확충” —이 결국 뒤늦게 현실화된 셈이다. 서울시는 이제 경찰과 함께 ‘킥보드 없는 거리’ 확대와 단속강화,
PM 전용주차구역 재정비 등 제도권 회복 프로그램을 준비하고 있다.
스마트 모빌리티는 도시를 바꿨다. 하지만 그 변화는 언제나 양날의 검이었다.
시민의 보행권과 교통혁신의 공존은 여전히 숙제다.
서울시는 이번 실험을 통해 ‘스마트’보다 ‘안전’을 앞세운 교통정책으로 회귀했다.
“기술은 편리함을 주지만, 질서는 안전을 지킨다.”
스마트 모빌리티 시대의 서울이 이제 새겨야 할 문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