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형모듈원자로(SMR) 지원을 위한 입법 논의가 국회에서 급물살을 타고 있다. 여당 주도의 법안 발의에 야당 의원까지 힘을 보태면서, '탈원전'을 둘러싼 오랜 논쟁에 균열이 가는 모습이다. 그러나 환경단체를 중심으로 SMR의 안전성과 경제성에 대한 우려도 거세지면서, 기술의 미래 가능성과 사회적 리스크를 두고 찬반이 첨예하게 갈리고 있다.
국회, SMR 입법 본격 착수…與·野 모두 ‘추진’
SMR 기술개발을 위한 법안은 황정아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포문을 열었다. 지난달 대표 발의된 ‘SMR 기술개발 촉진 및 지원에 관한 특별법안’은 연구개발, 실증, 부지·비용 지원, 전문 인력 양성 등 체계적 지원 기반을 명시했다.
이어 허성무 의원도 ‘SMR 상용화 및 지원에 관한 특별법안’을 발의해 기술 개발을 넘어 산업화와 수출 전략으로 이어지는 전주기 지원 체계를 법제화하겠다는 구상을 밝혔다.
두 의원 모두 민주당 소속이라는 점에서 “탈원전 기조와는 결이 다른 실용주의 행보”로 해석되며, 산업계와 원자력계는 환영의 뜻을 밝혔다.
환경단체 “경제성·안전성 검증 안 된 위험 기술”
반면 환경단체들은 즉각 반발하고 있다. 이들은 “SMR은 아직 상용화되지 않은 실험적 기술로, 경제성과 안전성이 충분히 검증되지 않았다”고 지적한다. 또한 “RE100(재생에너지 100% 전환)이라는 국제적 기조에도 정면으로 반한다”며 SMR 확대가 오히려 에너지 전환을 지연시킬 수 있다는 입장이다.
특히 일부 SMR 설계가 고농축 우라늄을 사용할 수 있어 핵확산 우려를 키우고, 대형 원전보다 단위 발전량당 폐기물이 많을 수 있다는 주장도 나온다.
한 시민단체 관계자는 “작다고 덜 위험한 것이 아니다”며 “기후위기를 빌미로 원전 기술을 다시 전면에 내세우는 것은 퇴행적 발상”이라고 말했다.
학계와 산업계 “SMR은 안전하고 필수적인 기술”
한국원자력학회는 이 같은 비판에 대해 “편향된 시각”이라고 반박했다. 이기복 학회장은 “SMR은 기존 원전에 비해 1000배 이상 향상된 수동안전성을 갖췄고, 피동형 안전계통을 통해 외부 전원 없이도 사고를 차단할 수 있다”고 밝혔다.
또한 방사성 폐기물 문제와 관련해 “감용과 재활용 기술 개발이 병행되고 있으며, 핵연료 효율을 극대화해 폐기물 발생을 줄이는 연구가 활발하다”고 덧붙였다.
‘작지만 위험할 수도’…기술적 불확실성 경계해야
SMR은 미국, 영국, 캐나다 등 주요국이 정부 차원에서 개발·지원에 나서고 있을 만큼 차세대 원전 기술로 주목받고 있다. 그러나 아직까지는 대부분 실증 단계에 머물러 있고, 상용화된 경험이 부족하다는 점은 부인할 수 없다.
특히 분산형 설치가 장점인 만큼, 보안·테러 위협, 자연재해 대응 한계, 지역별 관리 부담 증가 등 현실적인 리스크도 함께 제기되고 있다. 이 때문에 일부 전문가들은 “SMR은 작지만 결코 단순한 기술이 아니며, 섣부른 상용화는 도리어 사고 시 피해 통제를 어렵게 만들 수 있다”고 경고한다.
탄소중립 해법인가, 재생에너지 전환 저해인가
정부는 인공지능 산업, 수소 경제, 스마트그리드 등 차세대 산업의 기반 전력으로 SMR을 전략화하고 있다. 그러나 에너지 전환의 핵심으로 재생에너지를 강조하는 시민사회는 SMR 투자가 태양광·풍력 등 청정 에너지 확대를 지연시킬 수 있다고 우려한다.
기후위기 대응을 위해서라도 기술 의존형 대안보다는 에너지 구조 개편이 우선이라는 점에서, SMR은 장기적 해법이 아닌 위험한 기술적 회귀일 수 있다는 주장이다.
입법 속도는 빨라지지만…공론화는 여전히 필요
SMR 특별법은 여야의 공조로 국회 통과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하지만 법적 기반이 마련되기 전, 사회적 논의와 기술적 검증 과정이 충분히 이뤄지지 않으면, 향후 막대한 재정 낭비와 국민 불신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도 크다.
‘탄소중립’을 위한 급한 선택이 ‘안전’을 희생시켜선 안 된다는 점에서, SMR 특별법안이 국회에서 통과되기 전 공청회, 타당성 검토, 사회적 합의 기구 구성 등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