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직자의 이해충돌 방지를 위해 마련된 ‘백지신탁 제도’ 앞에서 두 명의 서울 구청장이 상반된 선택을 했다.
문헌일 전 구로구청장은 법원의 판단을 받아들이고 구청장직에서 물러났고, 박강수 마포구청장은 끝내 대법원까지 가겠다며 직을 유지하고 있다.
같은 제도, 같은 판결, 그러나 전혀 다른 태도는 공직자의 윤리의식과 정치적 책임감이 어디까지 허용되는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법원 판결은 같았지만, 책임 태도는 달랐다
문헌일 구청장은 정보통신기업 ‘문엔지니어링’의 최대주주로서 약 170억 원대의 비상장 주식을 보유하고 있었고, 인사혁신처는 해당 주식이 구청장 직무와 관련이 있다며 백지신탁을 요구했다. 그는 소송으로 맞섰지만 1심과 2심 모두 패소했고, 이에 스스로 구청장직을 내려놓았다. 그는 퇴임식에서 “법원의 판단은 아쉽지만 받아들인다”고 했고, “공직자로서 구민과의 약속을 지키지 못해 송구하다”고 밝혔다.
반면 박강수 마포구청장도 비슷한 상황에 처했다. 본인과 배우자가 보유했던 언론사(땡큐미디어그룹·일간시사신문)의 주식을 자녀에게 넘긴 후, 자녀의 주식은 백지신탁 대상이 아니라고 주장하며 소송을 제기했다. 그러나 1심과 항소심 재판부는 모두 “구청장으로서 해당 언론사 경영에 영향을 줄 수 있다”고 판단하며 패소 판결을 내렸다. 그럼에도 박 구청장은 즉각 대법원에 상고하고, “자녀는 독립된 경제 주체”라는 논리를 반복하고 있다.
공직을 지킬 것인가, 사적 재산을 지킬 것인가
문헌일 구청장은 결과적으로 자신의 고액 주식을 지키기 위해 직을 내려놓았다는 비판을 받았지만, 적어도 법적 판단 이후 정치적 책임을 인정하고 사퇴하는 결단을 내렸다.
반면 박강수 구청장은 법원의 판단을 두 차례나 받고도 끝내 물러나지 않으며, 법적 책임은 부정하고 정치적 책임도 회피하고 있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문 전 구청장의 사퇴는 행정공백과 수십억 원에 이르는 보궐선거 비용이라는 후폭풍을 낳았지만, 그 책임은 온전히 본인과 그를 공천한 정당이 감수하겠다는 정치적 수습으로 이어졌다.
그러나 박 구청장의 경우, 구의회와의 정면충돌과 지역사회의 신뢰 상실이 지속되고 있음에도 이를 공직 유지의 명분으로 버티고 있어 갈등만 장기화되고 있다.
두 사례가 말해주는 것: 백지신탁 제도의 한계와 공직윤리의 후퇴
이 두 사건은 공직자 백지신탁 제도가 실질적인 이해충돌을 막기 위해 존재하지만, 그 이행 여부는 전적으로 공직자의 윤리의식과 정치적 책임감에 달려 있다는 구조적 한계를 드러낸다.
법원의 판단은 실질적 영향력을 기준으로 삼았고, 자녀 명의든 본인 명의든 관계없이 직무 관련성이 인정되면 백지신탁 대상이라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그럼에도 어떤 공직자는 이를 ‘개인 재산의 침해’로 받아들이고 법적 다툼을 반복하며 자리를 고수하고 있다.
지방자치단체장은 한 지역의 최고 행정 책임자로서, 사익과 공익 사이의 경계를 누구보다 철저히 지켜야 한다.
그 권한이 막강한 만큼 법적 판단뿐 아니라 정치적·도덕적 책임도 뒤따라야 한다. 그러나 지금의 현실은 정반대로 흘러가고 있다.
정치권과 시민사회의 감시가 필요한 때
구청장은 사유재산이 아니라 구민 전체를 위한 공직이다.
법이 강제하지 않아도, 최소한의 윤리 기준을 지키기 위해 스스로 물러나는 리더십이 요구된다.
문헌일의 선택이 ‘뒤늦은 책임’이라면, 박강수의 선택은 ‘책임 회피’로 기억될 수 있다.
마포구민은 지금 묻고 있다.
“직무보다 주식을 우선하는 구청장에게, 이 도시를 맡겨도 되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