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또 대통령이 갔다… 그다음은 누가 책임지나
    • 대통령의 진심을 제도와 구조로 번역하지 못하면 반복은 멈추지 않는다
    • “대통령이 또 현장에 갔다.”

      한때는 정치적 이벤트로 여겨지던 장면이 이제는 일상이 됐다. 노동자의 죽음이 반복된 SPC 시화공장을 직접 찾은 이재명 대통령. 고장 난 기계처럼 반복되는 산재 사고 앞에서 “죽지 않는 사회”를 만들겠다는 의지를 재확인했다. 대통령의 움직임은 분명 메시지를 던진다. 그러나 동시에 질문도 남긴다. 대통령이 이렇게까지 ‘현장’에 나서야 하는가?

      진정성, 그리고 상징의 힘

      이재명 대통령은 과거 산재 피해자다. 그가 프레스에 팔이 끼었던 기억을 꺼냈을 때, 그 말은 그저 정치적 수사로 들리지 않았다. 직접 겪은 노동의 고통은 행정부 수반으로서 그의 언어에 무게를 실어준다. 그가 SPC공장을 찾아 경영진과 공장장, 노동자 앞에서 직접 사고의 구조적 원인을 지적한 장면은, 대통령이라는 자리가 어떻게 사회의 부조리를 조명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상징적 장면이었다.

      실제로 방문 이후 SPC는 “8시간 초과 야근 금지”라는 개혁안을 내놓았다. 대통령 한 마디가 하나의 기업 시스템을 바꿔냈다는 점에서, ‘현장 정치’의 실효성을 증명한 셈이다.

      그러나, 대통령은 CEO가 아니다

      하지만 묻고 싶다. 이런 식의 개별 공장 방문이 대한민국 대통령의 일상 업무가 되어도 괜찮은가?

      산재 사고가 난 사업장은 SPC만이 아니다. 화물연대 파업, 구의역 스크린도어, 건설현장의 추락사, 쿠팡 물류센터 화재… 어느 현장인들 ‘가보지 않으면 모르는’ 곳이 없었을 것이다. 대통령이 매번 현장으로 향하는 모습을 반복한다면, 정부는 시스템으로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현장 쇼'로만 대응한다는 비판에 직면할 수 있다.

      대통령이 문제를 ‘직접’ 해결하는 리더십은 강력해 보이지만, 동시에 그것은 시스템의 부재를 드러낸다. 대통령의 시간이 제한된 만큼, 선택적으로 방문하는 현장은 더 큰 정치적 해석을 낳을 수밖에 없다. 누군가에겐 공정하지 않은 선택처럼 느껴질 수도 있다.

      실질 개혁은 현장 방문 이후 시작된다

      이번 SPC 방문이 가치 있는 이유는 단순히 “찾아갔다”는 데 있는 것이 아니다. 문제 제기 후 실제 변화가 뒤따랐기 때문이다. SPC의 장시간 노동 개선안은 과연 제대로 시행될 수 있을까? 정부는 이 같은 민간 기업의 변화가 실효를 거두도록 지속적인 감시와 제도적 뒷받침을 해야 한다.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의 실효성 제고, 근로감독관 인력 확충, 작업중지권 실효성 강화 등으로 이어지지 않는다면, 대통령의 발걸음은 또 하나의 “현장 이벤트”로 잊혀질 위험이 있다.

      대통령의 현장 방문, ‘정책의 시작점’이어야

      이재명 대통령의 ‘현장 정치’는 지금까지 어떤 대통령보다 뚜렷한 방향성을 보여준다. ‘국가의 최고 책임자가 우리를 본다’는 경험은 무력감에 빠진 노동자들에게 위로이자 경고가 된다. 그러나 이제는 더 나아가야 한다. 대통령의 발걸음이 정책의 종점이 아니라, 구조 개혁의 시작점이 되어야 한다.

      정치는 현장에서 시작할 수 있지만, 그 해답은 제도에서 찾아야 한다. 대한민국은 ‘사람이 일하다 죽지 않는 나라’가 되어야 한다. 그리고 그것은 대통령 혼자 방문한다고 가능한 일이 아니다.

      진정한 변화는 현장 방문 그 이후, 제도화와 구조개혁에서 나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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