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정부가 대통령실 정책실 산하에 ‘AI 미래기획수석’직을 신설하고, 초대 수석으로 하정우 네이버클라우드 AI 혁신센터장을 임명했다. 청와대 혹은 대통령실 직제에 ‘AI’가 직접 들어간 직함이 생긴 것은 사상 처음이다. 기술적, 정치적으로 모두 중대한 이정표다.
하정우 수석은 거대언어모델(LLM) ‘하이퍼클로바X’의 개발을 주도한 국내 대표적 실무형 AI 전문가다. 서울대 전기컴퓨터공학부 박사 출신으로, 삼성SDS와 네이버에서 연구와 개발, 조직 운영까지 모두 경험했다. 학계와 산업계를 넘나들며 50편 이상의 논문을 주요 국제 AI 학회에 발표했고, 윤석열 정부 시절에도 대통령 직속 디지털플랫폼정부위원회에서 AI·데이터분과위원장을 맡아 정부와 꾸준히 소통해왔다.
이번 인선은 정무적 인사보다는 실무 중심의 기술 관료를 기용한 사례로, 정부가 AI를 어떻게 다루고자 하는지 단적으로 보여준다. 특히 하 수석이 그동안 일관되게 강조해온 ‘소버린(Sovereign) AI’ 개념은 이재명 대통령의 ‘모두의 AI’ 공약과 궤를 같이한다. 글로벌 빅테크가 장악한 AI 시장에서 각국이 자국 언어·문화·가치관을 반영한 AI를 독자적으로 구축해야 한다는 주장은, 단순히 기술 문제가 아니라 디지털 시대의 국가 정체성과 주권의 문제로까지 확장된다.
AI 수석이 다룰 주요 과제도 만만치 않다. 인공지능 기본법 시행령 정비, AI 인프라 확보, 민관 협력형 컴퓨팅 센터 구축, 병역특례를 통한 인재 확보 등이 시급한 현안으로 떠올랐다. 특히 하 수석은 “2030년까지 50만 장의 GPU·NPU 확보가 필요하다”며 기존 정부 계획을 훨씬 뛰어넘는 수준의 인프라 투자를 주장해왔다. 이는 이재명 대통령이 후보 시절 내세운 ‘100조 민관 AI 투자’ 구상의 정책 실현을 위한 사전 조건이기도 하다.
또한, 하 수석은 병역특례 확대를 가장 현실적인 AI 인재 확보 전략으로 꼽은 바 있다. 과학기술인 시민단체인 ‘과실연’ 공동대표로 활동하며 지속적으로 정책을 제안한 경험도 있어, 현장에서 체감하는 제도개선의 필요성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인물로 평가된다.
하지만 기술만으로 정책을 설계할 수는 없다. 최근 두 차례나 유찰된 ‘국가AI컴퓨팅센터’ 사업은 공공성과 수익성 간의 균형이 얼마나 어려운지를 보여준다. 수석이라는 직책의 상징성은 강하지만, 법률적 권한이 부족한 만큼 다른 부처와의 조율, 민간과의 이해관계 조정 등은 하 수석 개인의 역량에 크게 의존하게 된다. 기술 관료가 처음부터 끝까지 조율자이자 전략가로서 성공적인 역할을 해낼 수 있을지, 이례적인 실험이 시작된 셈이다.
결국 AI 수석제의 성패는 ‘공공성과 투명성’ 확보에 달려 있다. AI는 이제 특정 산업을 넘어서 정보, 정치, 교육, 보건, 국방까지 국가의 모든 영역에 영향을 미친다. 그만큼 이 권한이 기술 엘리트나 일부 기업의 전유물이 되지 않도록 민주적 거버넌스를 구축하는 것도 매우 중요하다.
하정우 수석의 임명은 한국 정부가 AI를 전략적 자산으로 간주하고, 기술 독립과 사회적 확장을 동시에 추진하겠다는 선언이다. 이 실험이 성공한다면 한국은 글로벌 AI 거버넌스의 새로운 모델을 제시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실패한다면, 기술이 권력과 결탁하는 ‘기술관료주의’의 위험을 먼저 보여주는 사례로 기록될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