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이비 투표 독려 현수막, 이대로 좋은가
    • 무책임한 선거법 해석이 낳은 ‘현수막 공해’
    • 6월, 또 한 번의 선거가 지나간다.
      각종 구호와 주장, 비방이 뒤섞인 거리엔 ‘투표하라’는 현수막들이 물결친다. 얼핏 보기엔 시민참여를 독려하는 민주주의의 표상 같지만, 실상을 들여다보면 정치적 진영 싸움의 교묘한 연장선에 불과하다. 더 큰 문제는 이 모든 현상이 법적으로 ‘합법’이라는 점이다. 우리는 지금 법의 사각지대에서 기생하는 사이비 선거 캠페인을 목도하고 있다.

      지난 5월 23일 전후로 마포구 전역에는 투표 독려 현수막들이 일제히 걸렸는데 이것이 현 구청장의 출신 당의 상징색이어서 구청장의 선거개입이 논란이 되었고 주민들의 항의에 따라 현수막은 내려지거나 다른 색으로 변경되었다.
      5월 중순경 마포구 전역에 걸린 현수막

      공직선거법 제58조의2는 누구든지 투표 참여를 권유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그러나 그 문구가 허용한 ‘열린 공간’은 정치적 계산이 발 빠르게 파고든 허점이 되었다. 특정 정당이나 후보의 이름, 사진이 직접 언급되지 않으면 사실상 무엇이든 가능하다. ‘내란 종식에 한 표를’이라든가, ‘진짜에 투표해야 독재권력 막습니다’ 같은 문구는 그저 우연히 현 시국과 연결된 표현일 뿐일까.
      법조문은 중립을 가장했지만, 그 안에서 벌어지는 현실은 전혀 중립적이지 않다.
      이번 조기대선에서 현수막은 여러 논란거리를 만들어 냈다.
        
      마포구 관내에 걸린 현수막들

      제일 논란을 빚은 현수막은 유시민 작가의 김문수 후보 부인 설난영씨에 대한 비판 글이 올라온 다음에 게시된 현수막이었다. 가장 자극적인 문구로 지지자들의 마음을 결집시키고 있다.


      현행 제도의 맹점은 단순한 기술적 결함이 아니라, 공적 책임의 포기다. 투표 독려는 민주주의 사회에서 당연히 국가가 주도해야 할 공공 캠페인이다. 그런데 우리는 이 기본적 기능마저 민간에 넘겨버리고 있다. 그것도 검증되지 않은 시민 단체, 지역 향우회, 익명 조직에 말이다. 결국 선거철마다 전국 도심은 ‘투표하라’는 명분 아래 정쟁의 메시지들로 도배되고, 유권자는 과잉된 정보에 노출된 채 혼란을 겪는다.

      현수막 자체도 문제지만, 더 본질적인 것은 이를 허용하는 제도와 그 해석이다. 선관위는 ‘특정 후보를 명시하지 않았으니 선거운동이 아니다’라는 입장을 고수한다. 하지만 이것은 국민 감각과 괴리된 법 기술주의에 불과하다. 표현이 모호하면 더 엄격히 따져야 할 사안에서, 오히려 해석의 유연성을 자랑하고 있으니 어이없을 뿐이다.

      이런 상황은 선거 문화 전반에 대한 불신으로 이어진다. 정당한 절차로 후보를 알리는 공식 현수막은 수량과 내용이 철저히 제한되는 반면, 익명의 투표 독려 현수막은 무제한으로 허용된다. 유권자는 어떤 현수막이 공식이고, 어떤 것이 비공식인지 분간할 수도 없다. 결국 거리의 소음은 커지고, 민주주의의 질은 그만큼 떨어진다.

      우리는 지금 민주주의의 기초라 할 수 있는 ‘공정한 선거 환경’이 뿌리부터 흔들리는 장면을 보고 있다. 아무나, 아무 내용으로, 무제한으로 내걸 수 있는 현수막. 이런 허술한 제도 속에서 누가 웃고, 누가 표를 얻는가. 법을 만든 이들은 지금 거리의 광경을 보고 무엇을 느끼고 있는가.

      정치적 표현의 자유는 분명 중요하다. 그러나 그것이 익명성과 무책임성의 방패가 되어서는 안 된다. 지금은 ‘선거의 자유’가 아니라 ‘정치적 기만의 자유’가 확장되고 있다. 국민을 정치 피로에 몰아넣는 이 괴상한 현수막 전쟁, 이대로 방치할 수는 없다. 선거제도 전반에 대한 근본적 성찰과 개정이 절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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