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 한 잔 마시려던 순간, 다급한 아이의 카톡 한 줄이 날아왔다.
“노트북 좀 학교로 갖다 줘.”
오늘 아침에 집에 있는 건 어찌 알았을까.
부랴부랴 노트북을 챙겨 학교에 갖다 주고 돌아오는 길, 아침 공기가 참 시원했다. 요 며칠 서울은 유례없이 청명한 가을 날씨다. 하늘은 높고, 바람에서는 여름의 끈적함이 조금씩 빠져 있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자주 가는 카페에 들렀다.
그 카페에는 그랜드피아노가 한 대 있다. 늘 클래식 음악이 흐르는 곳이다. 평소에는 그저 카페의 풍경 가운데 하나였던 피아노가 오늘따라 유난히 눈에 들어왔다.
오늘은 여자 주인장 혼자 있었다.
문득 궁금해졌다.
“혹시 피아노 전공하셨어요?”
이 카페를 다닌 지 5년은 넘은 것 같다. 그런데 생각해 보니 지금까지 나눈 대화라고는 음료를 주문하며 주고받은 말이 전부였다.
“피아노 전공했어요.”
그 한마디에 오히려 더 궁금해졌다.
오늘따라 그랜드피아노 위에는 갓 구운 휘낭시에가 가지런히 놓여 식고 있었다.
와우!
보통 우스갯소리로 전공서적을 냄비받침 삼아 라면을 먹는다는 이야기를 하곤 하는데, 피아노 전공자의 그랜드피아노 위에서 휘낭시에가 식고 있다니.
그 장면이 재미있었다.
커피 한 잔을 기분 좋게 들고 카페를 나섰다.
건널목 앞에서 잠시 신호를 기다리는데, 대략 60대 초반쯤으로 보이는 반백의 여성이 한 손에 휴대폰을 들고 영어로 무언가를 말하면서 지나가고 있었다.
영어 학습 앱으로 공부하는 모양이었다.
문득 강경화 전 외교부 장관의 흰머리가 떠올랐다.
한때 그의 흰머리가 화제가 된 적이 있다. 방송에 등장하는 여성들이 흰머리를 감추는 경우가 많은 것과 달리, 강 전 장관의 흰머리 단발은 오히려 당당한 이미지로 기억됐다.
하지만 오늘 건널목에서 마주친 여성에게서는 정치인이나 유명인의 이미지가 아니라, 자신의 삶을 조금씩 넓혀가는 한 사람의 모습이 보였다.
예순을 넘긴 듯한 나이에 영어를 배우는 사람.
무엇이 계기였는지는 알 수 없다. 여행을 위해서인지, 공부가 좋아서인지, 아니면 그저 새로운 것을 배우는 일이 즐거워서인지도 모른다.
그저 신호가 바뀌기를 기다리며 잠시 바라봤다.
그리고 우리 동네에는 시인이 하는 미용실도 있다.
나는 그 미용실의 첫 번째 손님으로 가는 날이 많다.
미용실 한쪽에는 책이 빼곡하게 꽂힌 책장이 있다. 이른 아침 문을 열고 들어가기 전, 그녀는 종종 테이블에 앉아 책을 읽고 있다.
나는 그 시간에 문에 달린 작은 종소리를 울리며 들어간다. 그녀만의 조용한 아침 시간을 방해하는 것 같아 늘 조금 미안한 마음이 든다.
어느 날에는 자신의 시집이 나왔다며 친필 사인을 한 책을 건네주기도 했다. 최근에는 지하철역 공모에 시가 당선돼 게시될 예정이라는 반가운 소식도 들려줬다.
이 시인 미용사의 친구들 모임도 재미있다.
한 번은 문학 모임 지인들이 미용실을 방문한 적이 있었다. 한 사람씩 돌아가며 자신의 시를 낭송했다.
독서모임은 여러 번 참여해봐서 분위기를 잘 아는데, 미용실에서 문학 모임을 열고 시를 낭송하는 모습은 내게 낯선 풍경이었다.
최근 그곳에서 나눈 이야기 가운데 유난히 기억에 남는 것이 있다.
글쓰기였다.
“생각났을 때 바로 한 줄이라도 써둬야 해. 조금이라도 시간이 지나면 그때의 느낌이 희석되잖아.”
어떻게 글을 써야 할까.
생각해 보면 동네 이야기도 결국 사람 이야기인지 모른다.
매일 오가는 길에서 수없이 많은 사람을 만나지만, 우리는 대부분 서로의 이름도, 하는 일도 모른 채 지나친다.
5년 동안 커피를 사 마신 카페의 주인이 피아노를 전공했다는 사실도 오늘에서야 알았다.
건널목에서 마주친 여성은 누구인지조차 모른다.
시인이 미용실을 한다는 사실도 처음에는 그저 조금 특별한 이력처럼 보였다.
그런데 조금씩 이야기를 나누고, 조금 더 오래 바라보니 풍경이 달라진다.
신수동이라는 동네가 조금 더 궁금해진다.
아마 글쓰기도 그런 것 아닐까.
멀리 있는 특별한 이야기를 찾아 헤매는 것이 아니라, 매일 지나치는 풍경 속에서 한 사람을 조금 더 오래 바라보는 것.
그 사람이 왜 그곳에 있는지, 무엇을 좋아하는지, 무엇을 배우고 있는지 귀 기울여 보는 것.
그러다 보면 평범했던 동네가 어느 순간 이야기가 된다.
누군가는 커피 향 가득한 자신의 공간에 피아노를 두고 휘낭시에를 굽고, 또 누군가는 예순이 넘은 나이에 영어를 공부한다. 그리고 누군가는 시인의 마음으로 하루를 살아간다.
이들의 삶이 특별해서 이야기가 되는 것은 아닐 것이다.
어쩌면 우리가 그들을 조금 더 오래 바라보기 때문에 이야기가 되는 것인지도 모른다.
오늘 내가 마신 커피 한 잔도, 건널목에서 마주친 영어 공부하는 여성도, 그랜드피아노 위에서 식고 있던 휘낭시에도 모두 신수동의 풍경이다.
그리고 그 풍경을 이루는 것은 결국 사람이다.
어쩌면 동네란 건물과 도로의 이름이 아니라, 그곳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작은 이야기들이 모여 만들어지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오늘도 나는 신수동의 길을 걷는다.
내일은 또 어떤 사람이, 어떤 이야기가 눈에 들어올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