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 원두는 골라 먹는다. 산미가 있는지 고소한지, 어느 나라 어느 농장 것인지, 로스팅 정도는 어떤지까지 취향이 확실하다. 카페에 가서도 원두 이름을 척척 말하고, 집에서 내려 먹는 분들은 종종 원산지와 품종까지 따진다. 그런데 정작 매일 세 끼를 함께하는 주식, 밥의 재료인 쌀 앞에서는 태도가 달라진다. "어떤 품종 드세요?"라고 물으면 열에 아홉은 머뭇거린다.
먹거리 이야기를 해오면서 가장 많이 받은 질문 중 하나가 "어떤 쌀을 사야 하나요?"였다. 커피는 그렇게 까다롭게 고르면서, 김치는 브랜드를 꼼꼼히 따지고 고기는 등급을 확인하면서도, 정작 밥의 재료인 쌀 앞에서는 대부분 "그냥 이 정도면 되겠지" 하고 지나친다. 마트 쌀 코너에 서서 포장지 뒷면을 한 번이라도 유심히 들여다본 적 있는 분이라면 아실 것이다. 작은 글씨로 빼곡히 적힌 '품질표시사항' 앞에서 결국 브랜드나 가격만 보고 집어 드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는 것을.
사실 그 작은 표에는 커피 원두 라벨 못지않게, 밥맛을 좌우하는 정보가 거의 다 들어 있다. 오늘은 마포 주민들과 나누고 싶은 마음으로, 쌀 고르는 법을 조금 풀어보려 한다.
품질표시사항, 다섯 가지만 보면 된다
쌀 포장지 뒷면의 품질표시사항에는 품목, 품종, 원산지, 중량, 등급, 단백질함량이 순서대로 적혀 있다.
품종은 삼광, 신동진, 오대처럼 단일 품종으로 표기된 것과, 두 품종 이상을 섞은 '혼합미'로 나뉜다. 단일 품종은 순도가 80% 이상으로, 밥을 지었을 때 찰기와 식감이 일정하다. 반면 혼합미는 품종 등록 전이거나 품종을 정확히 알 수 없는 경우에 표기되는 방식이라, 밥맛이 고르지 않을 수 있다.
원산지는 국산·국내산 또는 시·도 단위 행정구역으로 표기된다. 등급은 특·상·보통·등외로 나뉘는데, 이는 손상되지 않은 쌀알인 '완전미'의 함유율로 결정된다. 특은 90% 이상, 상은 85% 이상, 보통은 80% 이상이 기준이다. 등급이 낮을수록 부서진 쌀알인 '싸라기'가 많아 밥을 지었을 때 식감이 고르지 않다.
단백질함량은 낮을수록 좋다. 6.0% 미만이면 '수', 6.1~7.0%는 '우', 7.1% 이상은 '미'로 표시되는데, 단백질함량이 낮을수록 밥이 훨씬 부드럽고 쫀득하다.
밥맛을 좌우하는 또 하나의 기준, 도정 연월일
여기까지는 그래도 많이 알려진 편이다. 그런데 정작 밥맛에 결정적인 영향을 주는 정보는 따로 있다. 바로 생산년도와 도정 연월일이다.
쌀은 도정하는 순간부터 산화가 시작된다. 아무리 좋은 품종이라도 도정한 지 오래된 쌀은 지방 성분이 산화되면서 밥맛이 눈에 띄게 떨어진다. 그래서 나는 항상 구매 시점을 기준으로 최소한 전년도에 생산되고, 가능한 한 최근에 도정된 쌀을 고르라고 권한다. 마트 진열대에서 같은 품종이라도 도정일이 다른 두 제품이 있다면, 망설이지 말고 더 최근 것을 집어야 한다.
여기에 더해 도정도도 살펴볼 만하다. 왕겨만 벗긴 현미부터 씨눈과 겨층까지 깎아낸 백미까지, 깎아낼수록 소화는 편해지지만 식이섬유와 미네랄 손실은 커진다. 가족 구성원의 소화 상태나 식감 취향에 따라 선택하면 된다.
결국 소비자가 확인해야 할 것은 세 가지다
바쁜 장보기 시간에 표 전체를 다 뜯어볼 여유는 없다는 것을 안다. 그렇다면 아래 세 가지만이라도 기억해두시길 권한다.
▶품종 확인하기 — '혼합'보다는 삼광, 신동진, 오대 등 단일 품종을 고른다.
▶등급 확인하기 — 특 또는 상 등급을 고르면 싸라기가 적고 밥 식감이 훨씬 좋다.
▶도정 연월일 체크하기 — 구매일 기준으로 가장 최근에 도정된 쌀을 선택한다.
밥 한 공기에도 농업과 소비의 정책이 담겨 있다
오는 8월 18일은 '쌀의 날'이다. 한자로 쌀 미(米)를 풀어보면 여덟 팔(八), 열 십(十), 여덟 팔(八)이 되는데, 벼가 자라 밥상에 쌀 한 톨로 오르기까지 농부의 손길이 여든여덟 번이나 필요하다는 뜻을 담고 있다. 2015년 농림축산식품부와 농협이 우리 쌀의 소중함을 알리고 소비를 촉진하고자 제정한 날이다.
여든여덟 번의 손길을 거쳐 온 쌀 앞에서, 우리는 정작 그 쌀이 어떤 품종인지, 언제 도정된 것인지조차 모르고 지나쳐 왔다. 커피 원두 하나를 고를 때는 산지와 로스팅 정도까지 따지면서 말이다. 쌀의 날을 맞아 오늘만큼은 밥 한 공기를 짓기 전, 쌀 포장지 뒷면을 한 번 들여다보며 그 여든여덟 번의 수고에 마음을 보태보면 어떨까.
좋은 쌀을 골랐다면, 이제 밥상을 생각하자
쌀을 잘 골랐다면 절반은 성공이다. 나머지 절반은 밥 짓는 방식에 달려 있다. 나는 세 가지를 꼭 지킨다. 첫째, 한꺼번에 많이 사지 않고 2~3주 안에 먹을 만큼만 소량으로 구입한다. 둘째, 쌀을 씻은 뒤 30분에서 1시간 정도 충분히 불려서 밥을 짓는다. 셋째, 밥물은 일반 물 대신 얼음물을 사용한다. 별것 아닌 것 같지만 얼음물로 밥을 지으면 찰기와 윤기가 확연히 살아난다.
바르고 안전한 먹거리의 가치를 전하는 일, 마음의식탁을 운영하며 지켜온 원칙이다. 오늘 저녁 밥을 짓기 전, 잠시 쌀 포장지 뒷면을 한번 들여다보시길 권한다. 작은 습관 하나가 매일의 밥상을 조금 더 건강하고 맛있게 바꿔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