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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비효과] 도시 건축의 미학은 어디서 오는가

2026-04-20 17:27 | 입력 : 마포저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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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워두지 못하는 권력, 채워야만 안심하는 행정

도시의 미학은 무엇으로 완성되는가. 화려한 조형물일까, 아니면 정교한 설계일까. 역설적이게도 많은 경우 그 답은 ‘비어 있음’에 가깝다.

그러나 공공은 이 ‘빈 공간’을 견디지 못한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반복되는 광장 재설계 논쟁이 이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광장은 늘 새롭게 꾸며져야 하는 대상이었고, 그 위에는 언제나 ‘무언가’가 올라갔다. 비워둔 채 시민에게 맡겨진 시간은 길지 않았다.

이 충동은 지역 행정에서도 그대로 재현된다.

마포구 홍대 앞 ‘레드로드’는 그 전형적인 사례다. 이름부터 강한 상징성을 띠지만, 실제 공간은 오히려 과잉으로 채워져 있다. 붉게 칠해진 도로, 전자 게시판, 각종 구조물과 화단, 이동을 방해하는 시설물들. 길은 더 이상 ‘흐르는 공간’이 아니라 ‘설치된 공간’이 되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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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광판이 주는 압도적인 크기도 위압감을 주고 주변은 따릉이 주차장이 되어가고 있다. 오히려 전신주를 지중화작업하는 것이 더 거리를 유용하게 하는 것이 아닐지 행정담당자에게 묻고 싶다.

경의선 홍대입구역에서 출발해 걸어보면 이 과잉은 더욱 명확해진다. 담배꽁초 수거함, 동선을 가로막는 구조물형 화장실, 곳곳에 박힌 전자 게시판 기둥. 여기에 자전거와 차량이 점유하는 주변부까지 더해지면, 보행 동선은 자연스럽게 흐르지 못하고 끊기며 뒤엉킨다.

레드로드 상수동 시작점엔 양쪽에 아스팔트를 걷어내고 소나무를 심었다 레드로드의 빨간 페인트가 녹아져 저 흙에 흡수된다면 소나무는 자랄 수 있을까
레드로드 상수동 시작점엔 양쪽에 아스팔트를 걷어내고 소나무를 심었다. 레드로드의 빨간 페인트가 지워져 저 흙에 흡수된다면 소나무는 자랄 수 있을까?

문제는 단순한 미관이 아니다.
이 공간은 이미 높은 밀도의 유동인구를 감당하는 곳이다. 축제나 주말 인파가 몰릴 경우, 시야를 가리는 구조물과 돌출된 시설물은 물리적 충돌 위험을 높인다. ‘디자인된 도시’가 ‘위험한 도시’로 전환되는 순간이다.

그렇다면 질문을 바꿔야 한다.

빈 공간으로 남겨두면 무엇이 문제인가.

오히려 그 반대일 가능성이 크다.
비워진 거리는 자생적으로 채워진다. 거리 공연이 들어서고, 카페의 외부 좌석이 확장되며, 이동형 상점과 포장마차가 자연스럽게 스며든다. 계획되지 않은 활동이 도시의 표정을 만든다. 이는 행정이 설계한 ‘완성된 공간’이 아니라, 시민이 끊임없이 갱신하는 ‘열린 공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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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예술인들이 이런 배너를 설치하고 서명을 받고 있는지 마포구청 담당자는 그들의 얘기를 들어야 한다

도시 미학의 핵심은 완성도가 아니라 가변성에 있다.
비워진 공간은 해석의 여지를 남기고, 그 여지가 도시를 살아 움직이게 한다.

그럼에도 공공이 채우기를 반복하는 이유는 분명하다.
가시적 성과 때문이다. 구조물은 예산과 사업의 결과를 눈에 보이게 만든다. 반면, 비워둔 공간은 성과로 측정되기 어렵다. ‘아무것도 하지 않음’은 행정에서 가장 설명하기 어려운 선택이다.

하지만 도시의 품질은 종종 그 ‘아무것도 하지 않음’에서 결정된다.

홍대 앞 레드로드가 보여주는 것은 단순한 거리 디자인의 실패가 아니다.
그것은 공공이 공간을 대하는 방식, 그리고 권력이 흔적을 남기고자 하는 욕망의 결과다.

이제는 질문해야 한다.
우리는 더 많은 것을 세워야 하는가, 아니면 일부를 지워야 하는가.

도시는 채워질 때가 아니라, 비워질 때 비로소 완성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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