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철의 마포는 지금 두 개의 시간이 흐르고 있다.
하나는 거리에서 유권자를 만나는 ‘후보자의 시간’이고, 다른 하나는 행정을 유지해야 하는 ‘구청의 시간’이다. 문제는 이 두 시간이 한 사람에게서 동시에 시작되지만, 더 이상 같은 방향으로 흐르지 않는다는 점이다.
최근 마포에서는 현직 구청장이 예비후보 등록을 하면서 직무대행 체제로 전환됐다. 법적으로는 가능한 선택이다. 그러나 여기서 중요한 것은 ‘사임 여부’ 자체가 아니다. 오히려 그 이전 단계, 즉 사임하지 않고 출마할 수 있는 제도 구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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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선거관리위원회 홈페이지 상에 박강수 구청장은 2026년 4월 13일에 예비후보 등록을 했고, 마포구청 홈페이지 상에서도 이 날부터 보도자료에 구청장 이름이 표시되지 않고 있다. 행정 문서 작성 관례상 기관명을 표기할 때는 괄호 안에 기관장 성명을 병기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이는 단순한 형식이 아니라 책임 주체를 명확히 하는 행정 원칙에 해당한다. 따라서 이러한 ‘삭제’는 단순 누락이 아니라, 직위 변동이 내부적으로 반영된 신호로 해석된다.
 | | 마포구청의 경우 홈페이지 메인화면에 여전히 구청장의 사진이 걸려있다. 공정한 선거운동을 위해 직무정지가 가능하다면 적어도 선거출마로 직무정지한다, 누구에게 직무대행을 맡긴다 이런 메세지를 남기는 것이 당연하지 않을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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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행 공직선거법은 지방자치단체장이 같은 직위에 다시 출마할 경우 사퇴 의무를 두지 않는다. 제도 취지는 분명하다. 행정의 연속성을 유지하면서도 유권자의 재신임을 묻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현실은 다르게 작동한다.
형식상 구청장은 그대로 남는다.
하지만 실질적으로는 권한 행사가 제한되고, 행정은 부구청장 중심의 ‘직무대행 체제’로 이동한다. 이때 발생하는 질문은 단순하다.
“지금 이 순간, 마포의 행정을 책임지는 사람은 누구인가.”
이 질문에 대해 제도는 명확한 답을 주지 않는다.
행정은 대행이 맡는다.
그러나 정치적 책임은 여전히 현직 구청장에게 귀속된다.
즉, 결정하는 사람과 책임지는 사람이 분리되는 구조가 만들어진다.
더 큰 문제는 이 변화가 주민에게 명확히 설명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후보 등록 사실은 선거관리위원회를 통해 공고되지만, 실제 행정 권한이 어떻게 이동했는지, 구청장이 어느 수준까지 직무를 수행하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주민을 대상으로 한 명시적 고지 의무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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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시장 출마를 위해 구청장을 사임한 정원오 전 성동구청장의 경우에는 성동구 홈페이지 상에 구청장 권한 대행이 부구청장임을 밝히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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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원오 성동구청장은 12년 구정을 마친다는 보도자료를 남겼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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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의 경우도 4월 3일자 보도자료에서 도지사 권한 대행에 대해 밝혔다.
 | | 제주특별자치도는 도지사 권한대행의 사진도 함께 보도자료에 실어 행정 지속성의 견고함을 알리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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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주민은 ‘현직 구청장’이라는 이름을 보지만, 실제 행정은 다른 손에서 운영되는 상황을 마주하게 된다. 이는 단순한 정보 부족의 문제가 아니다.
책임 구조가 흐려지는 문제다.
이 지점에서 제도의 설계 의도를 다시 보게 된다.
현직 프리미엄을 일정 부분 허용하면서도 권한 남용을 막겠다는 균형. 그러나 그 균형은 현장에서 또 다른 왜곡을 낳는다.
직을 유지하면 선거운동이 제한되고, 사임하면 오히려 자유롭게 선거운동이 가능하다.
그 결과, ‘행정의 연속성’이라는 명분은 약해지고, ‘정치적 유불리’가 선택의 기준이 된다.
마포에서 벌어진 사임 역시 이 구조와 무관하지 않다.
제도가 허용한 선택이지만, 동시에 제도가 만든 압박의 결과이기도 하다.
이제 질문을 바꿔야 한다.
“사임했느냐, 하지 않았느냐”가 아니라 “주민은 자신의 행정을 누가 책임지고 있는지 명확히 알고 있는가.”
민주주의는 절차로 작동하지만, 신뢰는 명확한 책임 구조에서 나온다.
지금의 제도는 그 책임을 설명하는 데 인색하다.
마포의 사례는 단지 한 지역의 문제가 아니다.
전국 모든 지방선거에서 반복되는 구조적 장면이다.
구청장은 남아 있지만, 책임은 분산된다.
권한은 대행에게 가고, 평가는 후보에게 돌아간다.
이 기묘한 분리 속에서 가장 중요한 주체인 주민만이 설명받지 못한 채 남는다.
이제는 묻지 않을 수 없다.
“직을 유지할 자유가 있다면, 그 공백을 설명할 의무는 왜 없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