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업은 끝났지만, 현장은 여전히 돌봄의 손길을 필요로 합니다.”
지난 6일 서울시청 관계자는 외국인 가사관리사 시범사업 중단 이후의 혼란을 이렇게 전했다.
법무부가 “사업 폐기”를 공식화한 뒤, 고용노동부와 서울시가 서로 다른 방향의 입장을 내놓으면서
정작 일터를 잃은 외국인 근로자와 돌봄 공백에 놓인 가정은 방치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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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법무부 “시범 사업 폐기… 지속 가능하지 않다”
외국인 가사관리사 시범사업은 2023년 6월, 필리핀 등 특정국 출신 여성이 합법적으로 가정 내 가사·돌봄 업무를 수행할 수 있도록 법무부가 한시적으로 허가한 제도였다.
그러나 사업은 1년여 만에 막을 내렸다.
법무부는 지난달 말, “참여 저조와 최저임금 논란, 여성계·노동계의 비판을 고려해 현행 방식의 시범사업은 지속 가능하지 않다”며 폐기 방침을 공식화했다.
정책의 출발은 ‘맞벌이 가정의 돌봄 부담 완화’였지만, 결과는 ‘외국인 저임금 노동’ 논란과 제도적 불신으로 귀결됐다. 법무부는 후속 대책으로 “국내 인력 중심의 가사·돌봄 시장 활성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 고용노동부 “연장은 하되, 본 사업 전환은 없다”
법무부가 손을 떼는 사이, 고용노동부는 조용한 연장 카드를 꺼냈다.
올 초 시범 사업 참여자들의 취업 활동 허가 기간을 1년 추가 연장하고, 최대 3년까지 체류할 수 있도록 제도를 수정한 것이다.
하지만 고용부 역시 본 사업 전환에는 선을 그었다.
고용부 관계자는 “현재로서는 추가 사업 계획이 없다”며 “사업 종료 후 돌봄 공백이 생기지 않도록 조치하겠다”고 밝혔다.
결국 법무부의 사업 폐기 결정에 따른 정책적 후속책을 내놓기보다는 ‘기존 참여자 관리’에 초점을 맞춘 셈이다. 시범 사업의 제도적 뒷받침은 사실상 멈춰 섰다.
◆ 서울시 “법무부 주관 사업이지만, 현장 혼란 막겠다”
서울시는 이번 사태에서 법무부와의 선긋기와 현장 보호를 동시에 선택했다.
서울시는 공식 입장문(서울시 미디어허브, 10월 8일)을 통해 “이번 시범 사업은 법무부 주관으로 진행된 별도 사업”이라며 “서울시가 운영한 ‘가사·돌봄 교육 프로그램’과는 구분된다”고 밝혔다.
그러나 서울시는 동시에 “사업 종료로 피해가 발생하지 않도록 법무부와 협의해 교육 이수자 지원방안을 마련하겠다”고 덧붙였다.
또 “인권 보호, 근로시간 확대 등 제도 개선을 포함한 ‘서울형 가사관리 서비스 모델’을 검토 중”이라고 설명했다.
결국 중앙정부의 정책 혼선 속에서, 서울시가 ‘현장 정리자’ 역할을 맡은 모양새다.
◆ ‘돌봄의 사각지대’로 내몰린 사람들
이번 사업 종료로 가장 큰 피해를 입은 것은 현장의 외국인 노동자들이다.
사업 폐기 통보 이후 다수의 외국인 근로자가 일자리를 잃거나, 비자 갱신과 체류 문제로 불안정한 처지에 놓였다.
가정 내 돌봄 서비스를 이용하던 일부 시민들도 “대체 인력 구하기가 더 어려워졌다”며 불만을 토로하고 있다.
또한 이번 사태는 단순히 외국인 노동자 문제를 넘어, 여성의 사회진출과 출산율 문제와도 맞닿아 있다. 연구에 따르면, 여성의 경제활동 참여는 출산율 저하와 상충하지 않고, 제도적 뒷받침이 있을 때 오히려 긍정적 영향을 줄 수 있다.
즉, 여성의 경력 유지와 출산을 위해서는 돌봄 인프라 강화, 근무 유연성, 돌봄 노동 안정화가 필수적이다.
전문가들은 “돌봄 정책이 부처별로 따로 움직이는 구조가 문제”라며, 중앙과 지자체가 통합해 돌봄과 여성 노동, 출산율을 함께 고려한 통합적 정책 설계를 촉구한다.
이번 시범사업 종료는 제도 실패만이 아니라, 누구도 책임지지 않는 돌봄 공백의 현실을 보여준 사건이다.
전문가들은 “정책 설계가 부처별로 나뉘면서 노동권·복지·이민 정책이 따로 움직이는 구조가 문제”라고 지적한다. 또한 “시범사업을 통해 드러난 것은 제도 실패가 아니라 ‘조정 시스템의 부재’였다”며 “중앙-지자체 간 통합 관리체계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 외국인 돌봄노동의 제도적 재설계
이번 외국인 가사관리사 시범사업은 한국 사회가 ‘돌봄노동의 공공성’을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를 묻는 실험이었다. 하지만 실험은 갈등 속에 중단됐고, 이제는 외국인 노동자 보호와 국내 돌봄 인력의 처우 개선을 함께 고민해야 할 시점이다.
서울시가 독자적인 모델을 내놓을지, 혹은 중앙정부가 새로운 돌봄정책을 재설계할지는 아직 미지수다. 다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정책의 실패보다 더 큰 문제는 누구도 그 후유증을 책임지지 않는 현실이라는 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