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삭막한 도시 골목에 꽃이 피다 ― 커뮤니티 정원의 약속
    • 서울 마포여성동행센터 강의실. 이곳에서는 현재 ‘마포구 마을정원사 양성 프로그램 4주 과정’ 2기 수업이 한창이다. 모집 공고가 뜨자마자 신청은 이미 마감됐고, 이 열기는 오는 4기 과정까지 이어질 예정이다.

      식물에 관한 수업을 하고 있다
      식물의 분류에 관한 수업을 하고 있다.

      참석자들의 이력은 다양하다. 어떤 이는 베란다에서 화분을 키우다 더 큰 세상을 만나고 싶어 왔고, 또 어떤 이는 주말농장에서 텃밭을 일구다 공공 공간으로 눈길을 돌렸다. “집에서만 키우기엔 한계가 있잖아요. 이제는 동네에도 제 손길을 보태고 싶어요.” 한 참가자의 말처럼, 그들의 열망은 개인의 정원을 넘어 마을과 도시의 공간으로 확장되고 있었다.

      겨울정원 저자인 김장훈 전문정원사의 네덜란드 독인 자연정원 엿보기 강연
      겨울정원 저자인 김장훈 전문정원사가 네덜란드 독일 자연 정원 엿보기 강연을 하고 있다.

      공동체를 부르는 흙냄새

      이 과정이 흥미로운 이유는 단순한 원예 강좌가 아니기 때문이다. 주민들이 스스로 기획 단계부터 참여해 함께 설계하고 꾸려가는 커뮤니티 정원의 첫걸음을 배우는 자리다. 정원의 성패는 씨앗이 아니라 사람에게서 시작된다는 사실을 몸소 확인하는 과정이 될 것이다.

      해외에서 온 교훈

      기자는 이번 커뮤니티 정원 조성 과정을 취재하며, 연구진이 정리한 해외 사례 보고서를 함께 살펴봤다. 캐나다는 초보자들을 위해 ‘질문형 안내서’를 제공했고, 호주는 정원의 크기에 따라 필요한 시설과 인원을 제시했다. 런던은 심지어 정원이 범죄 예방과 대기질 개선에 기여한다고 강조했다.

      실제로 현장에서 만난 주민들도 “사람들이 모이니 어두운 골목이 환해졌다”며 달라진 분위기를 전했다.

      한국형 정원의 과제

      그러나 한국의 현실은 아직 갈 길이 멀다. 우리는 ‘텃밭 가꾸기’에는 익숙하지만, 아름답고 공동체적인 정원을 함께 설계·관리한 경험은 부족하다. 생산물이 개인 소유로 귀결되는 구조 때문에 공동체성이 약화되기 쉽다. 현장에서 만난 한 주민은 “작물 수확보다 사람들이 와서 차 한잔하며 얘기 나누는 게 더 중요하다”고 했다. 한국형 가이드라인이 필요하다는 학계의 지적이 현장의 목소리와 맞아 떨어진다

      도시재생의 전략으로

      주민들이 가꾼 이 작은 정원은 도시재생 사업의 핵심 공간으로도 주목받고 있다. 골목길에 불안과 어둠 대신 꽃과 웃음이 자리 잡으면서, 빈집과 화재 위험지대가 안전한 생활공간으로 탈바꿈한다. 연구진은 “5만㎡ 이하 소규모 도시재생 사업에서 커뮤니티 정원은 경제적이고 효율적인 대안”이라고 평가했다.

      꽃이 아닌 사람을 키우다

      해가 기울 무렵, 첫날 수업에서 참석자들은 자신만의 씨앗 화분을 들고 집으로 돌아갔다. 정원에 남은 것은 비닐하우스나 화려한 조형물이 아니라, 마을 사람들이 다시 만나고 싶은 이유였다. 커뮤니티 정원은 결국 꽃과 나무를 키우는 일이 아니라, 사람과 공동체를 키우는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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