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도자의 자세란, 불편하더라도 국민 앞에서 책임 있는 입장을 밝히는 것”이라던 그의 말은 이번만큼은 자신에게 먼저 적용되어야 하지 않았을까.
대통령을 뽑기 위한 마지막 대선 토론이 열린 날, 전국에 생중계된 그 무대는 유권자에게 비전을 제시하기보다는 혐오와 조롱, 왜곡된 성 인식이 뒤섞인 ‘말의 난장’으로 기억될 가능성이 커졌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이준석 개혁신당 후보가 있다.
“팩트 정치”의 붕괴, 여성혐오의 공적 재현
이준석 후보는 논리와 수치를 앞세워 정치에 새 흐름을 만들겠다고 공언해온 인물이다. 그러나 이날 토론에서 그는 자신의 정체성을 스스로 뒤흔들었다. 문제는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의 가족을 언급하는 과정에서 발생했다. 이 후보의 아들이 과거 커뮤니티에 남겼다고 추정되는 게시글 속 문장을, 맥락과 의미 설명 없이 토론회에서 그대로 재현한 것이다. 질문 형식을 빌렸지만, 이는 사실상 명백한 여성혐오 표현의 대중 확산이었다.
이 표현은 단순히 ‘저속한 말’의 문제가 아니다. 여성의 신체를 대상화하고 모욕하는 발화는, 그 자체로 성차별적 권력관계를 재생산한다. 더욱이 그것이 전국민이 시청하는 생방송을 통해 전달되었을 때, 사회적으로 부여하는 상징적 의미는 배가된다.
이 발언이 갖는 문제의식은 "누가 처음 했느냐"가 아니라 "공적인 장에서 그것을 반복한 책임이 누구에게 있는가"다. 그런 점에서 이 후보의 행위는 단순한 ‘인용’이 아니라 여성혐오의 재유포였다.
그 누구도 책임지지 않는 혐오
당시 질문을 받은 권영국 민주노동당 후보조차 표현의 맥락을 알지 못했다고 밝혔다. 시청자 다수는 더욱 그랬을 것이다. 그럼에도 이준석 후보는 토론 직후 SNS를 통해 “왜곡된 성의식에 대한 추상같은 판단”을 하지 않는 정치권의 이중잣대를 비판하며, 되레 피해자 코스프레를 했다.
하지만 그 “왜곡된 성의식”을 바로 공론장으로 끌고 들어온 사람은 다름 아닌 본인이다. 정치적 공격의 수단으로 여성혐오 발화를 활용하는 것 자체가, 정치인의 젠더 감수성 부재를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이재명 후보가 과거 가족 간 갈등 속 녹음된 욕설로 비판받았던 것과 이 사건을 동일 선상에 놓을 수 있을까. 이 후보의 발언은 사적인 영역에서 발생했고, 그 공개조차 제3자의 유출이었다. 반면 이준석 후보는 이를 의도적으로 공적인 언어로 선택했다. 사회는 두 사례를 결코 똑같이 평가하지 않는다. 공적 책임은 그 무게가 다르기 때문이다.
젠더 감수성은 정치의 ‘기본값’이다
최근 몇 년간 정치권에서는 ‘젠더 갈등’이라는 표현 아래 성인지 감수성을 소모적인 논쟁거리로 취급하는 흐름이 이어져 왔다. 그러나 성평등은 특정 진영의 전유물이 아니다. 그것은 민주주의를 구성하는 ‘기본값’이다. 특히 여성에 대한 차별과 폭력은, 진영 논리로 정당화될 수 없는 인권의 문제다.
이준석 후보는 보수의 젊은 리더로 주목받아 왔다. 그러나 보수의 혁신은 오직 말의 수위나 전략이 아니라, 말을 향한 책임에서 비롯되어야 한다. 더 많은 이들이 발언권을 갖는 사회일수록, 정치인의 언어는 더 무거워져야 한다.
이날 그가 스스로 꺼낸 말처럼, 지도자는 가깝든 멀든 간에 부정의에 단호해야 한다. 그렇다면 오늘 그 단호함은, 자신에게 먼저 적용되었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