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이 마르면 편의점에서 생수 한 병을 사는 것.
서울에서는 너무나 익숙한 풍경이다. 물을 마신 뒤 페트병을 버리고, 또 목이 마르면 새로운 생수병을 사는 일도 자연스럽게 반복된다. 제로웨이스트를 이야기할 때 꾸준히 나오는 질문은 여기서 시작한다.
“물을 마시기 위해 반드시 일회용 페트병을 사용해야 할까?”
그 대안 가운데 하나로 시민사회와 제로웨이스트 현장에서 꾸준히 제기돼 온 것이 공공 음수대 확대다.
서울시가 이번에 내놓은 ‘서울형 음수대’는 이 오래된 요구를 도시의 생활 인프라로 구체화했다는 점에서 눈여겨볼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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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처 - 서울시 홈페이지 |
서울시는 3일 시민 워크숍과 부서 협력 등을 거쳐 ‘서울형 음수대’ 7종을 개발했다고 밝혔다. 핵심은 개인 텀블러에 아리수를 편리하고 위생적으로 채울 수 있도록 해 일회용 플라스틱 사용을 줄이는 것이다.
단순히 기존 음수대를 새롭게 디자인한 사업이 아니라, 물을 마시는 방식 자체를 바꾸기 위한 공공시설로 음수대를 바라보기 시작했다는 의미다.
텀블러를 들고 다니라고만 하지 않는다
제로웨이스트 정책에서 자주 놓치는 부분이 있다.
시민에게 행동의 변화를 요구하는 것과 그 행동이 가능한 환경을 만드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라는 점이다.
“텀블러를 사용하세요.” 이 말은 쉽다.
하지만 텀블러를 가지고 나왔는데 물을 채울 곳이 없다면 시민은 결국 생수를 구매할 가능성이 높다.
반대로 거리와 공원, 학교와 공공청사 등 생활공간 곳곳에서 물을 채울 수 있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텀블러를 사용하는 것이 특별한 환경 실천이 아니라 일상적인 생활 방식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서울형 음수대가 중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서울시는 이번 음수대를 개인 텀블러 리필을 주요 기능으로 설계했다. 전용 급수 노즐을 적용해 텀블러를 안정적으로 거치하고 빠르게 물을 채울 수 있도록 했으며, 물이 기기 외부로 흐르지 않도록 내부 배수 구조도 적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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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처 - 서울시 홈페이지 |
제로웨이스트의 관점에서 보면 결국 ‘일회용품을 사용하지 말라’는 캠페인보다 ‘일회용품을 사용하지 않아도 되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 한 단계 더 나아간 정책이다.
서울은 이미 음수대 도시였다
이번 사업을 계기로 서울에 음수대가 새롭게 등장하는 것은 아니다.
서울시는 기존에도 공원과 산책로 등을 중심으로 아리수 음수대를 운영해 왔다.
지난 3월에는 겨울철 동파 방지를 위해 운영을 중단했던 야외 음수대 1,777대의 운영을 재개하면서 시설과 위생 상태를 3단계로 점검했다고 밝혔다. 당시 서울시는 음수대에 공급되는 아리수가 362개 항목의 수질검사를 거친다고 설명했다.
이후 8월 서울아리수본부는 한강과 공원 등에서 운영되는 야외 아리수 음수대를 1,880대로 소개했다. 음수대가 서울의 일상적인 공공시설로 이미 상당한 규모로 자리 잡고 있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이번 ‘서울형 음수대’의 의미는 음수대의 양적 확대만은 아니다.
기존 음수대에 더해 시민의 이용 방식과 접근성, 텀블러 리필 등을 고려한 새로운 표준을 만드는 데 있다.
서울시는 이번에 실외형 3종과 실내형 4종 등 모두 7종의 음수대를 개발했다. 어린이용과 반려동물용을 별도로 마련하고, 설치 장소에 따라 필요한 형태를 선택할 수 있도록 했다.
‘누구나 마실 수 있는 물’이라는 공공성
이번 음수대에서 제로웨이스트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접근성이다.
서울시는 장애인과 어린이 등 다양한 이용자가 편리하게 사용할 수 있도록 유니버설 디자인을 적용했다.
바닥 단차를 없애고 휠체어가 접근할 수 있는 하부 공간을 확보했으며, 적은 힘으로 누를 수 있는 촉각 조작 버튼 등을 적용했다.
이것은 제로웨이스트 정책에서도 중요한 관점이다.
환경을 위한 시설이 특정한 사람들만 이용하는 시설이어서는 안 된다.
텀블러를 사용하는 청년뿐 아니라 어린이와 노인, 휠체어 이용자, 반려동물과 산책하는 시민까지 누구나 물을 이용할 수 있어야 한다.
서울시가 음수대를 ‘공공 음용 환경’이라고 표현한 것도 이런 맥락이다.
물을 마시는 행위 자체를 개인의 구매 행위에서 공공서비스의 영역으로 가져오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몇 개를 설치했느냐’보다 어디에 설치하느냐다
물론 음수대가 많아진다고 해서 자동으로 제로웨이스트 도시가 되는 것은 아니다.
중요한 것은 시민의 동선 안에 있느냐다.
서울시는 앞으로 공원·학교·관공서 등 신규 조성지와 노후 음수대 교체 대상지를 중심으로 서울형 음수대를 단계적으로 확산할 계획이다. 공공기관뿐 아니라 민간기관도 표준 설계안을 활용해 설치할 수 있도록 지원할 예정이다.
이 방향이 제대로 작동하려면 음수대가 ‘있다’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집을 나와 지하철역으로 가고, 학교에 가고, 직장에 가고, 공원을 산책하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발견하고 이용할 수 있는 위치에 있어야 한다. 그리고 시민들이 음수대 위치를 쉽게 확인할 수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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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리수맵을 활용하여 5호선 마포역 주변의 야외음료수대를 검색해 보았다 |
서울시는 현재 ‘아리수맵’을 통해 야외 음수대 위치를 제공하고 있으며, 수질 관련 정보도 함께 확인할 수 있도록 운영하고 있다.
결국 음수대의 확대는 시설 설치 사업이면서 동시에 도시의 물 접근성을 높이는 사업이어야 한다.
생수를 줄이는 가장 현실적인 방법
제로웨이스트는 때때로 개인의 부지런함에 너무 많은 것을 요구한다.
장바구니를 챙기고, 텀블러를 챙기고, 다회용기를 챙기고, 포장재를 확인해야 한다.
하지만 개인의 실천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도시 자체가 일회용품을 소비하도록 설계돼 있다면 시민에게 아무리 실천을 요구해도 변화에는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음수대는 그래서 단순하지만 강력한 정책이다.
물을 사지 않고 마실 수 있게 하는 것.
그리고 텀블러를 가지고 나온 시민에게 ‘그 텀블러를 실제로 사용할 수 있는 장소’를 제공하는 것.
서울시는 이번 정책의 목적을 명확하게 밝혔다. 텀블러에 아리수를 채워 일회용 플라스틱 사용을 줄이고, 누구나 편리하게 물을 마실 수 있는 공공 음용 환경을 확산하겠다는 것이다.
이것은 제로웨이스트가 오랫동안 이야기해 온 방향과 맞닿아 있다.
음수대에서 시작해 ‘물의 도시’로
서울형 음수대는 아직 시작 단계다.
현재는 시청 본관 1층에 1호 음수대를 시범 설치한 상태이고, 서울시는 9월 중 디자인 가이드라인을 배포할 예정이다. 이후 공원·학교·관공서 등으로 확대한다는 계획이다.
따라서 앞으로 지켜봐야 할 것은 실제 확산 속도와 이용률이다.
시민들이 쉽게 찾을 수 있는 곳에 설치되는지, 텀블러 리필이 실제로 편리한지, 위생과 수질관리가 지속적으로 이루어지는지, 그리고 일회용 생수 소비를 줄이는 데 어느 정도 영향을 미치는지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특히 서울시가 9월 9일 ‘굿바이 플라스틱 서울’ 행사를 열고 텀블러 사용 문화를 알리는 것도 상징적이다.
하지만 진짜 변화는 행사가 끝난 다음부터 시작된다.
텀블러를 들고 다니는 것이 특별한 행동이 아니고, 목이 마르면 생수를 사는 대신 가까운 음수대를 찾는 것이 자연스러운 도시. 그런 도시가 된다면 음수대 하나의 변화가 아니다.
시민의 소비 습관이 바뀌고, 일회용 페트병의 발생 자체를 줄이는 도시 시스템이 만들어지는 것이다.
제로웨이스트가 궁극적으로 지향하는 것도 바로 그것이다.
쓰레기를 잘 버리는 도시가 아니라, 처음부터 쓰레기를 덜 만들어도 되는 도시.
서울형 음수대가 그 변화의 작은 출발점이 될 수 있을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