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8년 여의도 개발 사업으로 삶의 터전을 잃은 밤섬 원주민들이 국가에 의한 강제 이주와 부실한 보상 실태에 대한 진상 규명을 요구하고 나섰다. 주민들은 개발이라는 이름 아래 국가가 주민들을 두 차례나 삶의 터전에서 내몰았다며 진실 규명과 피해 보상을 촉구했다.
밤섬 원주민들과 시민단체는 지난 23일 서울 중구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 앞에서 '밤섬 강제이주 피해 진상규명을 위한 기자회견'을 열고 진실화해위원회에 진실규명을 신청했다고 밝혔다.
이날 기자회견에는 고령의 밤섬 원주민들이 직접 참석해 58년 전 강제 이주 당시의 기억과 이후 겪어야 했던 고통을 증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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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밤섬 강제이주 피해자들과 시민단체 관계자들이 23일 서울 중구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1968년 여의도 개발 과정에서 발생한 강제이주 피해의 진상규명과 국가 책임 인정을 촉구하고 있다. |
"엄동설한에 고향에서 쫓겨났다"
주민들에 따르면 정부는 1968년 여의도 개발 계획을 추진하면서 밤섬 주민들을 강제로 이주시켰다. 당시 밤섬은 한강 한가운데 위치한 섬으로 수십 가구가 대를 이어 살아온 삶의 터전이었다.
그러나 개발 계획이 추진되면서 주민들은 충분한 협의나 이주 대책 없이 고향을 떠나야 했다.
주민들은 상수동 일대 임시 거처로 옮겨졌지만 정착 과정은 혹독했다. 상수역 인근 호박밭과 강변 천막촌에서 생활해야 했으며, 초기 2~3년 동안 수도조차 없는 환경에서 여러 가구가 한 공간을 나눠 쓰며 살아야 했다.
기자회견 참가자들은 "최후통첩을 받은 지 보름 만에 엄동설한의 한강 얼음판을 건너야 했다"며 "강제 이주였지만 국가가 마련한 생존 대책은 사실상 없었다"고 주장했다.
또 "62가구 전체에 지급된 보상금은 고작 천여만 원 수준이었고, 식량 배급과 난방 지원도 일주일 정도에 그쳤다"고 말했다.
와우산 기슭에서 맨손으로 집 지어
밤섬을 떠난 주민들은 이후 밤섬이 내려다보이는 와우산 기슭에 정착하기를 희망했다. 하지만 제공된 부지는 나무만 무성한 황무지였다는 것이 주민들의 증언이다.
집을 지을 자재 지원도 거의 없었다. 주민들은 포크레인 등 건설장비 없이 직접 땅을 파고 흙을 다져 집을 지어야 했다.
한 원주민은 "벽돌 하나하나를 주워가며 집을 지었다"며 "먹을 것도 부족한 상황에서 어르신들은 허리가 굽을 정도로 고생했다"고 회상했다.
또 다른 참석자는 "초등학교 2학년 때 밤섬을 떠났는데 당시에는 몰랐지만 지금 생각하면 부모님 세대의 희생이 얼마나 컸는지 알게 됐다"고 말했다.
재개발로 또 한 번 고향 잃어
주민들의 고통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어렵게 정착한 거주지가 이후 재개발 사업 대상이 되면서 또다시 삶의 터전을 잃게 됐다는 것이다.
주민들은 "밤섬에서 쫓겨난 것도 억울한데 자력으로 일군 집마저 재개발로 사라졌다"며 "결국 고향을 두 번 잃는 비참한 경험을 해야 했다"고 토로했다.
일부 주민들은 당시 국가가 개인 소유 토지를 제공하지 않고 시유지를 배정하는 과정에서 주민 간 갈등이 발생하기도 했다고 주장했다.
"단순한 개발 역사가 아닌 국가폭력"
주민들이 진실화해위원회에 신청한 핵심 내용은 ▲1968년 강제 퇴거의 적법성 여부 ▲보상금 산정 과정의 타당성 ▲국가와 지방자치단체의 생존권 보호 의무 방기 여부 등이다.
이들은 당시 적법한 절차와 이주 대책이 왜 마련되지 않았는지, 터무니없이 적은 보상금이 어떤 기준으로 책정됐는지 밝혀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 천막촌 생활과 자력 정착 과정에서 국가와 지자체가 최소한의 구호 조치조차 제공하지 않은 것은 행정적 직무유기에 해당한다고 지적했다.
기자회견 참가자들은 "밤섬 강제 이주는 단순한 과거 개발사업의 문제가 아니라 국가가 힘없는 국민에게 가한 폭력의 역사"라며 "58년 동안 이어진 억울함을 풀고 남은 생애 동안이라도 진실을 확인받고 싶다"고 밝혔다.
이어 "피해자 대부분이 고령이 된 만큼 더 늦기 전에 진실 규명과 명예 회복이 이뤄져야 한다"며 정부와 진실화해위원회의 적극적인 조사를 촉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