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정부가 작년 말 단행한 비상계엄 조치를 유엔에 뒤늦게 통보한 사실이 드러나며, 국제 인권 규약 위반 논란이 커지고 있다. 23일 한겨레 신문에 따르면 1990년 가입한 ‘시민적·정치적 권리에 관한 국제규약(자유권규약)’에 따라, 국민의 자유권을 제약하는 비상사태 발생 시 유엔 사무총장에게 ‘즉시’ 통보해야 함에도, 한국 정부는 5개월이 지나서야 통보 서한을 제출했다. 주무부처는 법무부다.
유엔 통보는 ‘즉시’가 원칙인데…계엄 선포는 작년 12월, 통보는 올해 5월
한겨레가 유엔 국제조약 홈페이지를 통해 확인한 바에 따르면, 대한민국 대표부는 지난 5월 19일 유엔에 공식 서한을 보내 2024년 12월 3일 밤 10시27분 대통령의 계엄 선포, 그리고 4일 새벽 국회 결의 후 해제된 계엄령의 사실을 보고했다.
그러나 국제인권법상 자유권규약 제4조는 비상사태 선포 시 즉각적 통보를 명시하고 있으며, 그 사유 및 제한된 권리 내역을 정확히 밝혀야 한다. 해당 규정은 국제사회에 비상사태의 남용을 견제하고 인권을 보호하기 위한 안전장치다. 한국은 1990년 가입국이다.
법무부 해명, “관계부처 협의 필요”…인권위 “5개월 직무유기”
법무부는 “통지 준비는 12월 4일부터 시작했으나 국방부·외교부·국무조정실 등 관계부처 협의가 필요했고, 12월 중순에는 법무부장관 탄핵소추도 있었다”며 지연 이유를 밝혔다.
하지만 국가인권위원회 관계자는 “계엄이 짧게 끝났다고 해서 계엄 사실이 사라지는 것이 아니며, 의무 불이행에 해당하고 국제적으로도 심각한 신뢰 훼손”이라고 지적했다. 인권위 위원 일부는 앞서 2월에도 정부의 ‘자유권규약 통보 의무 불이행’을 공식 문제삼았다.
유엔 인권이사국의 책임감 실종…국제사회서 신뢰 타격 우려
문제는 단순히 통보 지연의 기술적 문제가 아니라, 한국이 현재 유엔 인권이사회(2025~2027) 이사국이라는 점이다. 이사국으로서 국제인권규약 이행은 최소한의 책무인데, 이를 스스로 위반하면서 향후 유엔의 정기적 인권심사(UPR)와 국가보고서 심의 과정에서 불이익을 자초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정부는 계엄령 하에서 자유권이 “제한됐다고 단정하기는 어렵고 제한될 가능성이 있었다”고 해명했지만, 그 표현이야말로 인권 침해 우려가 실제로 존재했음을 자인한 셈이라는 비판도 제기된다.
‘3시간 계엄’이라도 국제사회는 진지하게 본다
이번 사안은 비단 계엄의 지속 시간만을 문제 삼는 것이 아니다. 국제사회는 절차적 투명성과 신속성을 중요하게 본다. 특히 유엔 자유권위원회는 전 세계적으로 비상사태 남용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내부적 판단으로 통보 지연’이라는 해명은 국제 인권 규약 체계 내에서 설득력이 떨어진다.
5개월간의 침묵은 결과적으로 한국 정부의 인권 감수성, 국제 인권 체계에 대한 존중 태도에 대한 의문을 남겼다. 윤석열 정부는 향후 국제사회와의 신뢰 회복을 위해 더욱 명확하고 신속한 후속조치를 마련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