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파크골프장 하나가 드러낸 세대, 환경, 정치의 민낯
    • 성남시 파크골프장을 둘러 보고
    • 탄천을 걷는 즐거움은 단순하다.
      고요한 수변, 나무 그늘, 멀리 이어지는 황톳길.
      도시가 잠시 말을 멈추는 공간, 분당 시민들이 사랑해온 소중한 일상이다.
      하지만 그 강가에 최근 펜스가 세워졌다. 그리고 그 안에 들어선 건,
      ‘파크골프장’이라는 이름의 논란 덩어리다.

      처음엔 단순한 여가 공간 확대라고 여겼다.
      하지만 기자가 현장을 몇 차례 찾고, 지역 커뮤니티를 잠입 취재하며 드러난 실상은
      훨씬 무겁고, 깊고, 아프다.

      ‘경치를 가리는 시설’이란 말의 진심

      “왜 하필 경치 좋은 수내·서현에 이걸 만들었냐”는 댓글은 단순한 심술이 아니다.
      그 말에는 “왜 우리가 누리던 자연을 가리느냐”는 박탈감이 들어 있다.
      산책길은 펜스로 막히고, 잔디밭은 인조 코스로 바뀌었다.
      장마철엔 황톳길이 토사에 묻히고, 배수로에는 흙탕물이 흐른다.

      ‘자연을 인공으로 덮는 방식’, 이 낡은 도시계획은 여전히 살아 있다.
      환경을 되살린다고 하며 시민이 사랑하게 만든 탄천이,
      이제는 행정이 밀어붙인 시설물로 다시 가려지는 중이다.

       ‘노인시설’이 문제라고?

      아니다.
      문제는 노인을 위한 시설이라는 점이 아니라, ‘노인만을 위한’ 시설이라는 점이다.

      “노인도 시민이고, 운동할 권리가 있다”는 말은 당연하다.
      하지만 “청년 농구장은 2개인데, 파크골프장은 3배 면적이다”,
      “30대도 골프하고 싶은데 사용 불가능하다”,
      “누구를 위한 공공성이냐”는 외침은 외면할 수 없다.

      도시의 공간이 공정하지 않다는 감각은
      세대 갈등을 넘어 행정 신뢰의 위기다.
      세금을 내는 세대, 미래를 살아갈 세대가 배제된 도시라면
      그 도시의 지속가능성은 이미 깨진 셈이다.

      시민은 없고, 표만 있었다

      현장에서는 “이거, 노인 표 잡으려고 만든 거죠”라는 말을 수십 번 들었다.
      실제 성남시 예산안이나 시의회 회의록을 뒤져봐도
      ‘공청회’도, ‘사전 시민토론’도 없었다.
      정해진 것은 ‘복지시설 확대’, 이름 없는 예산의 묵인이었다.

      그리고 남겨진 건
      “망쳐버린 자연”, “펜스로 둘러싸인 강”,
      그리고 “아무도 묻지 않았다”는 상실감이다.

      탄천을 되돌릴 수 있을까

      파크골프장이 나쁜 건 아니다.
      누구나 쉽게 즐길 수 있는 운동이라는 평가도 있다.
      하지만 탄천에 설치된 방식은 공론 없는 강행, 경관 훼손, 세대 편중,
      그리고 세금 낭비 구조의 전형이었다.

      우리가 지켜야 할 건
      파크골프장이 아니라,
      그 아래 깔린 시민의 권리와 자연의 질서다.

      탄천은 누구의 강인가.
      그 질문에 대한 답을, 행정은 아직 내놓지 않았다.
      하지만 시민은 이미 그 답을 알고 있다.
      자연은 모두의 것이며, 도시 또한 마찬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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